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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공의료기관의 무리한 전문의 채용 과연 필요한가?
[기자수첩] 공공의료기관의 무리한 전문의 채용 과연 필요한가?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3.01.31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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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기자의 지인이 경기도 모처에 있는 골프장에 갔다가 있었던 일이다. 오랜만에 해외에서 온 친구도 함께 해서 들뜬 마음으로 라운딩을 하다 보니 안전관리에 소홀했던 모양이다. 친구가 친 공이 바운드로 날아오면서 눈 위를 맞아 피를 흘리게 됐다. 매우 당황했던 일행은 그대로 게임을 중단하고 근처의 병원을 찾아 나섰다. 첩첩산중이라 ‘과연 이런 곳에 병원이 있을까’하는 마음도 들었는데 다행히 20분 내 거리의 읍내에 많은 ‘동네의원’들이 운영 중이었다. 가정의학과나 내과는 물론이고 외과 전문의가 2명이나 근무하며 다른 일차 진료도 병행하는 의원도 있었다. 다행히 찟어지지는 않아서 그 의원을 방문해 응급처치를 받고 항생제도 처방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의료접근성은 가히 세계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21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0년도 국토모니터링보고서’에 따르면 응급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평균 11.8㎞, 표준편차 8.62㎞, 최대거리 48.63㎞로 나타났다. 특히 민간 의원급 의료기관은 평균 4.97㎞, 표준편차 3.49㎞, 최대거리 14.94㎞로 나타났다.

기자의 지인에게 사고가 났던 골프장이 있는 군(郡) 단위 기초지방자치단체도 면적이 워낙 넓기는 하지만 인구는 단 6만2000여 명에 불과함에도 무려 40여 곳의 의원급, 병원급, 치과의원에 더해 한의원도 운영 중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의료취약지로 분류돼 전국 15곳의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보건의료원 인근에도 적잖은 민간의료기관들이 운영 중이다. 최근 고연봉에도 불구하고 내과 전문의 채용이 어렵다고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일었던 산청군보건의료원 관내에도 인구는 3만4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인근에 의원급 의료기관 13곳, 치과의원 6곳에 더해 한의원 15곳까지 운영 중이다.

즉, 공공의료기관 주변에는 의사들이 근무하고 있는 민간의료기관들이 많아도 정작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할 의사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의사 채용이 어려워도 각 지자체는 어떻게든 공공의료원에서 일할 의사를 구하고 싶어 한다. 만약 지자체에 공공의료기관이 없다면 그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공공의료기관이 들어서길 염원한다. 

지인에게 사고가 났던 골프장이 있는 지자체도 그곳에 현재 종합병원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은 공공병원을 유치해 달라는 청원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공공병원이 건립된다고 해도 최근 산청군보건의료원, 울릉군보건의료원 사태와 마찬가지로 그곳에서 일할 의료진은 어떻게 구할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쯤에서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의료 접근성이 뛰어난 우리나라에서 지역의 민간의료자원을 활용하지 않고, 공공의료기관에서 일차 진료를 할 전문의를 무리하게 불합리한 채용 조건을 내세우면서까지 채용하여 결국엔 민간의료기관과 경쟁하게 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차라리 환자들이 인근의 민간의료기관을 더 쉽게 방문해 진료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아니면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민·관 의료 협력 모델을 개발해 지역의 의료공백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특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방의료기관들이 의료진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우리나라에 의사가 부족해서도, 의사들이 배가 불러서도 아니라 의사가 실제로 지방에서 근무하기에 환경과 여건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선택하더라도 충분한 보상과 삶의 질이 보장되고 부당한 법적 분쟁 등에 대한 부담만 줄어든다면 의사들이 먼저 필수의료·지역의료에 자발적으로 진출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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