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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의료원은 왜 정부에 반기를 들었나?”
“국립중앙의료원은 왜 정부에 반기를 들었나?”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3.01.30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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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수도권 병상 과잉’ 논리로 NMC 신축 계획 감축
야당 “공공의료 폐기 선언”···노조 “상급종병 수준 신축하라”
NMC전문의협 “3월 설계 시작되면 되돌릴 길 없다” 투쟁

국립중앙의료원(이하 의료원) 의료진들이 기약 없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상대는 놀랍게도 정부다. 국가 산하 공공의료기관이 정부에 반기를 들게 된 것은 기획재정부가 의료원 신축 규모를 대폭 줄이겠다고 통보하면서부터다.

기재부는 지난 4일 의료원 측에 신축이전 사업 계획을 통보했다. 본원 526병상, 중앙감염병병원 134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 총 760병상 규모로 의료원의 요구는 물론 기존 병상보다 적은 규모다.

의료원은 당초 본원 800병상, 중앙감염병병원 150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 총 1050병상을 요구했으며, 현재 보유하고 있는 병상은 본원 600병상, 중앙감염병병원 100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 총 800병상이다.

기재부는 수도권 진료권에 병상이 과잉 공급된 상태이며, 의료원 병상 이용률 또한 저조하다는 것을 신축 규모 감축 근거로 제시했다.

기재부의 결정에 각계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국가 공공의료 중추기관를 새로 짓는데 본원 526병상은 터무니 없는 규모라는 것이다.

12일 남인순 의원 등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개최해 “의료원 신축이전 사업 축소는 공공의료 폐기 선언”이라며 정부의 사업 축소 계획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들은 기재부의 결정이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의료원에 7000억원을 지정 기부하면서 맺었던 약정사항의 핵심인 ‘중앙감염병병원 150병상 규모 건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보건복지부 소관 예산안 수정의결 당시, ‘의료원 본원 800병상, 중앙감염병병원 150병상 규모를 확보하도록 노력한다’라는 부대의견을 여야 합의로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재부 등 예산 당국이 이를 무시한 채 신축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것은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노조)은 17일 의료원 노동자 70여명과 기재부 규탄 선전전을 펼치고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혔다.

노조는 “의료원 신축 이전을 통해 상급종합병원 규모로의 확충 등을 포함한 임상역량을 제고하고, 각종 국가중앙센터 설치 및 운영 등을 적극 지원한다는 9.2 노정합의와 전면 배치되는 내용”이라며 “의료원을 상급종병 수준으로 신축해 국가 감염병 컨트롤 타워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공의료체계를 튼튼히 구축하는 것만이 또 다시 찾아올 신종 감염병 위협에서 국민들을 지켜내고 막대한 재정 낭비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인정하라”며 “1000병상 이상 신축 이전을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의료원 의료진들은 “제대로 짓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안 짓는 게 낫다”며 강경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기재부의 이번 결정은 정부가 근시안적인 경제성 논리로 의료원의 역할과 가치를 폄훼한 결과라는 비판이다. 또 총사업비 적정성 재검토 당시, 의료원은 코로나19 대응에 전체 병상을 소개한 상태였기 떄문에 병상 이용률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도 해명했다.

의료원 전문의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지난 16일 긴급 임시총회를 열고 기재부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결정했다. 이은 17일에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19일부터는 피켓 시위, 25일부터는 범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협의회는 기재부가 신축 감축 결정을 철회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판을 뒤집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기재부가 응답하지 않으면 당장 오는 3월부터 설계 용역이 시작될 예정이다.

이소희 협의회장은 지난 20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설계 용역이 시작되면 더 이상 되돌릴 방법이 없다”며 “그저 참담하다”는 심경을 전했다.

이 회장은 “의료원 신축 이전에 돈을 아끼면 향후 국가적 보건의료 위기 시에 또 민간병상을 사들여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분명 더 큰 돈이 들 것”이라며 “중앙감염병병원과 중앙외상센터를 정상 운영하려면 본원 병상 규모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의료원은 민간병원과 경쟁 구도에 있는 기관이 아니라 오히려 민간에서 할 수 없는 부분을 서포트하며, 전국의 환자를 수용한다”며 기재부의 병상 과잉 공급 논리가 부적절하다고 짚었다.

최안나 협의회 대변인 또한 “이번 신축 규모 감축은 정부가 의료원의 발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감염병 사태를 겪으면서 국가 중심 병원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병상이 너무 많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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