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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규제에 발목 잡힌 TAVI···환자도, 의사도 힘들다
지나친 규제에 발목 잡힌 TAVI···환자도, 의사도 힘들다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3.01.16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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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위험 적어 '판막수술' 대체 수술법으로 각광받지만···의료진 만장일치 결정 문제
심혈관중재학회, "환자 선택권·의사 치료 결정권 가로막혀"
"의료기관 손해보는 구조···비현실적 수가·규제 개선해야"

'경피적 대동맥판막삽입술(TAVI)'이 기존 판막수술을 대체하는 수술법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정작 규제에 발목을 잡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의료계에서 높아지고 있다. 

환자 본인 부담율이 지나치게 높을 뿐만 아니라, 시술 여부를 심장통합진료팀이 논의해 만장일치로 결정하도록 규제하다보니 환자나 보호자의 선택권은 물론, 의사의 치료 결정권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심혈관중재학회는 지난 14일 중구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TAVI 시술의 현실과 문제점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대동맥판막협착증은 통상 전신마취 후 가슴을 열고 체외 순환기를 삽입해 심장을 멈춘 뒤 심장을 열어 협착된 대동맥판막을 제거하고 인조판막을 삽입하는 수술이 기본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70대 이상의 고령이라 수술의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개심술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 

이에 판막수술을 대체하는 수술법으로 ‘TAVI’이 떠올랐다. TAVI는 저위험도(수술사망 예측률 4% 미만) 환자군에서도 대동맥판막치환술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임상결과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흉술을 못하는 환자에게만 실시하는 차선책이 아닌 수술과 동등한 치료법으로 이미 자리잡았다는 게 학회 측의 설명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11년 TAVI가 도입된 이래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엄격한 규제 아래 시행된다는 점이다.

학회에 따르면, 3000만원에 가까운 TAVI 시술도구 비용의 80%를 본인부담으로 맡겨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의 경우 수술의 위험이 높더라도 TAVI를 하지 못하고 수술을 해야만 하는 환경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8월 조건부 선별급여 항목인 TAVI의 급여기준을 세분화해 80세 이상 환자나 수술에 의한 사망이 8% 이상으로 예상되는 수술 고위험군에 대해서는 (본인부담 5%의 완전 급여화 했다)된 상태다.  

반면 수술연관 사망 예측률 4~8%의 중간 위험도군의 경우 본인부담 50%의 선별급여, 수술 사망 예측률 4% 미만인 저위험도군은 본인부담 80%의 선별급여를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TAVI를 보험급여로 실시하기 전 ‘심장통합진료’를 대면으로 시행해 TAVI 실시 여부를 의료진의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복지부는 TAVI 시술 대상 환자에 대해 심장내과 2명, 흉부외과 2명, 마취통증의학과 1명, 영상의학과 1명 이상의 전문의가 모여 TAVI 시술의 가능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배장환 보험이사는 “언뜻 보기에 이상적인 다학제 진료처럼 보이나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환자나 보호자의 치료선택권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TAVI 실시 여부를 심장통합진료팀에서 결정하는 과정에서 환자나 보호자의 의견은 반영되지 못한다는 게 배 이사의 지적이다.

특히 그는 “심장통합진료에 참여한 모든 전문의의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TAVI 시술이 가능하다”며 “심장통합진료팀의 의사 중 한 명이라도 TAVI를 반대하면 환자에게 TAVI는 비급여로도 시행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내놨다.

즉, 심부전이나 심인성 쇼크로 인공호흡기나 에크모를 삽입해야 하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이더라도 의료진의 만장일치 합의 없이는 TAVI를 시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배 이사는 “환자의 상태가 매우 중하고, 전문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완전합의체의 결정을 이룬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단 한 명의 반대만 있어도 TAVI를 실시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납득이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심장통합진료는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의 치료방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TAVI 시술의 가능여부만 결정하고 있다”며 “모든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들이 TAVI라는 치료방법이 있음을 공지받은 뒤 순환기내과, 흉부외과 등의 의사들이 협의해 최선의 치료방침을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학회는 TAVI 시술에 대한 ‘비현실적인 수가’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 이사는 "작년부터 TAVI의 보험급여 사정이 나아졌다고 해도 모두 재료대에 대한 보상"이라며 "시술행위에 대해서는 48만원으로 근거 없는 저수가를 고수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심평원에서도 수술적 접근방법과 비교해 TAVI의 시술시간은 72%, 업무량은 97%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TAVI와 비슷한 경피적 폐동맥판막삽입술 수가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게 배 이사의 설명이다. 

그는 "전문의가 여섯 명 이상이 모이는 심장통합진료에 대한 보상은 물론, TAVI 시술 동안 흉부외과 전문의가 개흉수술이 가능하도록 대기하도록 강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수가는 아예 책정되지 않았다"며 "TAVI를 실시하는 의료기관은 시술을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를 정부가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재 심장내과를 전공하겠다는 전문의 수는 꾸준히 감소해 작년 전국 전임의 숫자는 49명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며 “환자의 권리뿐만 아니라 심장내과 의사의 권리 또한 비현실적인 형식과 수가에 의해 빼앗기고 있는 만큼, 정부가 중증심혈관시술에 대한 비현실적인 수가 개선과 함께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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