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4]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
[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4]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
  • 의사신문
  • 승인 2022.12.27 09:05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복규 교수(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몇 년 전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가 밀려 정지해 있는데 뒤에 오던 차가 내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그쪽은 에어백도 터지고 난리가 났지만 내 차는 SUV여서 그런지 충격만 심하게 받았다. 그래도 목 뒤가 한동안 뻐근하기는 했다. 견인차가 오고 그쪽 보험사 사원이 나타났는데 이건 100% 뒤차 과실이라 렌트카 비용이며 치료비며 모두 그쪽이 부담하게 되었다. 

견인차 기사는 내 차를 끌고 가면서 꼭 한방병원에 가라고 팁을 주었다. 한방병원? 이 정도는 예전에 당직할 때 진단서 숱하게 끊어주었지만 경추부 염좌로 2주 이상 나올 게 아니었다. 어쨌든 한방병원에 가보라 하니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반쯤 호기심에서 교통사고를 전문으로 한다는 집 앞 한의원을 찾아가 보았다. 

이러저러해서 왔다고 하니 도수치료 같은 거 마사지 좀 해 주고, 침 놓겠다 해서 침은 거부했다. 그러니까 탕약을 한보따리 싸 주고, 앞으로 6개월 동안 다니라고 하였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그제서야 깨달음이 왔다. 기본 진단이 6개월이다. 집에 와서 탕약은 다 버렸고 다시 가지 않았다. 

곧 가해자 쪽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적절한 비용으로 합의 보자는 것이다. 6개월을 한의원에 다니게 되면 그 치료비는 온통 보험회사 몫이 된다. 그러니 이건 내 쪽에 유리하게 합의 보기에 좋은 카드였다. 하지만 어디 그럴 수가 있나. 이런저런 불편함 등등을 고려해서 최소 비용으로 합의 보고 더 따지지 않기로 하였다. 

대법원이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게 문명국가가 맞는가 하는 의심이 드는 판결이다. 초음파는 모두 알다시피 형태의 이상을 판별하는 기기이다. 심장초음파 같은 경우는 기능의 이상을 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심장과 판막의 운동 형태라는 형태의 차이로 판별한다. 

형태(morphology)가 왜 중요한가? 그것은 근대의학은 기본적으로 형태의 정상-이상으로 건강-질병현상을 파악하는 의학이기 때문이다. 생전의 증상을 사후 부검을 통해 관련 장기의 이상과 연결시키는 것, 그것이 근대의 병리학이고 이걸 현미경 수준에서 본 것이 세포병리학이다. 어떤 장기의 이상을 인식하려면 우선 정상형태와 구조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이걸 가능하게 한 것이 근대 해부학이다. 

해부학이 없으면 병리학이 없고, 병리학이 없으면 의학도 없다. 덧붙여 질병이 어떤 증상의 모음이 아니라 일련의 자연사(natural history)가 있는 일종의 실체라는 인식도 근대 의학의 핵심이다. 즉 일련의 잠복기를 거쳐 발열, 오한, 발진 등등의 증세를 나타내다가 어떠어떠한 합병증이 발생하며 치료하지 않는 경우 예후는 어떻게 된다 등등 내과 교과서에 서술된 질병의 자연사는 그 질병이 환자 개인과 독립되어 존재한다는 실체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즉, 우리는 결핵, 맹장염, 홍역, COVID-19 등등을 독립된 실체로 여기며 환자에게서 특징적인 증상과 증후를 읽어 그에 대응시키는 것을 진단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환자가 사망해야 부검을 통해 인식할 수 있었던 이상을 엑스선이 발견되면서, 이후 CT와 MRI, 초음파와 같은 영상기기들이 발전하면서 살아있는 몸에서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영상진단기기와 근대(현대)의학은 본질상 불가분의 관계이다.

하지만 한의학은 인체를 이런 식으로 보지 않는다. 구조와 기능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증상, 혹은 증상 콤플렉스로 진단(그들 용어로는 ‘변증’)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마다 ‘체질’이 다 다르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공통 구조로서의 정상해부학이나 이상으로서의 육안/현미경 병리학 같은 건 의미도 없는 것이다. 같은 증상을 보이더라도 체질이 다 달라서 변증이 달라진다고 하면 해부학은 연구해서 무얼 하겠나? 심지어 형태가 없는 장부라는 것도 있는데 삼초(三焦)가 그것이다. 살아있건 죽었건 삼초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다만 살아있을 때 그런 기능(?)이 있음을 대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즉 한의학이 바라보는 인체의 구조란 객관적인 구조물이나 형태, 실체가 아니라 일종의 구조-기능 콤플렉스이며 이는 시시때때로 변화하는(易) 것이고, 이 모두는 결국은 기(氣)로 환원된다. 이기론(理氣論)이라는 동아시아의 전통 자연철학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의학이 과학화, 현대화 하겠다는 데야 말릴 방법은 없지만, 예컨대 무슨 기를 측정하는 무슨 의료기기를 만들어 쓴다면 그들의 패러다임 속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니까 가타부타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지만 영상기기는 그들의 패러다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한의사가 영상기기를 사용해야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순간, 그들의 패러다임은 의미 없는 것임이 입증되어 버린다. 삼초는 눈에 보이는 장부가 아니며, 심포락은 우리가 말하는 pericardium이 아니라는데, 그러면 영상기기는 왜 필요하다는 것일까?

혹자는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저런 판결이 유의미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것을 걱정하고 정원을 늘리느니 마느니 논쟁을 해야 할까? 11개 한의대에서 매년 7백여 명의 한의사가 배출되고 있는데? 소아청소년과가 붕괴한다 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소아백혈병 환자는 위험한 항암화학요법보다는 ‘청심개규 청영투열(淸心開竅 淸營透熱)’로 치료하면 된다(한의사 국가시험 문항이다).

21세기에 우리는 “달구지도 우리 민족 고유의 교통수단이니 달구지를 현대화하기 위해 네비게이션을 붙여달라”는 주장을 보고 있다. 달구지도 나름 쓸모도 있고, 운치도 있는 친환경 교통수단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 있는 나라라면 어디에도 공공 교통수단으로 쓰지는 않을 것이다. 현대화 하겠다고 달구지에 엔진도 달고, 모터도 달면? 그때는 더 이상 달구지도 아닌,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자동차가 될 것이다. 

사족: 얼마 전 저 차를 중고로 팔았는데 사고 경력 있다고 딜러가 시세에서 2백만 원을 제하고 가져갔다. 그때 너무 저렴하게 합의를 해 주었나! 하는 후회가 살짝 들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참고하시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모마모 2023-02-16 16:28:34
"하지만 한의학은 인체를 이런 식으로 보지 않는다. 구조와 기능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증상, 혹은 증상 콤플렉스로 진단(그들 용어로는 ‘변증’)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마다 ‘체질’이 다 다르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공통 구조로서의 정상해부학이나 이상으로서의 육안/현미경 병리학 같은 건 의미도 없는 것이다. 같은 증상을 보이더라도 체질이 다 달라서 변증이 달라진다고 하면 해부학은 연구해서 무얼 하겠나? 심지어 형태가 없는 장부라는 것도 있는데 삼초(三焦)가 그것이다. 살아있건 죽었건 삼초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다만 살아있을 때 그런 기능(?)이 있음을 대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한의사신가요?

2022-12-27 11:28:01
기본 의사학을 공부했다는 의사학 교수 수준이 이것 밖에 안되다니 ㅎㄷㄷ
고작 개인의 경험을 일부 한의사의 치료를 전체 한의사가 그러는 것처럼 호도 그럼 서양의학은
실비의학???

의사학을 공부하려면 한의학은 기본이며 한의학이 해부학에 치중하지 않았다는것은
공부를 헛 한것임 애초에 의료기기는 과학기술의 산물이며 서양의학만 현대의료기기를 써야 한다는 오만함은 일종의 의사들의 가스라이팅임

전통의학이 해부학을 중요시 않았다는건 기본 상식조차 없는 것임 이미 세부 장기에 대해 설명해둠

의과대학 의사학 교수의 수준이 이정도면 정말 한 숨만 나오는구나

그냥 무조건 한의사는 싫다고 말하는게 차라리 논리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