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한의사 초음파기기 사용 판결에 '의료계 반발' 확산
한의사 초음파기기 사용 판결에 '의료계 반발' 확산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2.12.26 17: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맥통증학회·대개협·신경외과의·비뇨의학과의·피부과의사회 등 성명발표
앞으로 발생할 부작용과 오진 등 의료사고···"법원이 책임져야"
"의협은 파업까지 불사하는 강력한 투쟁 즉각 실행 옮겨라"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에 의료계의 반발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의료계는 의학은 물론, 의료라는 과학을 이해하지 못한 대법원이 한의사들에게 초음파 기기 사용을 허가해 결국 의료체계 붕괴와 함께 국민 건강에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앞서 지난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현행법상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의사가 진단 보조 수단으로 쓰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에 대해 대한정맥통증학회는 26일 성명서를 통해 “(A씨는) 환자에게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것처럼 시늉만 하다가 끝내 환자의 암 진단을 놓치고 진단과 치료를 지연시켰다”며 “그런데도 한의사에게 무죄 판결을 내림으로써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면죄부를 부여한 대법원의 판결은 사기꾼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다름 없는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국민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린 대단히 부당하고 위험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사법부 최고법원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며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책임은 대법원에 있고, 대법원은 반드시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이번 판결로 향후 발생할 환자들의 피해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대법원에 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오히려 큰 위험에 빠뜨린 대법원 판결은 그 어떤 범죄보다 무거운 범죄 행위와 다름없다"며 "대법원은 잘못된 판결을 되돌릴 수 있는 모든 수단의 강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대한개원의협회(대개협)도 초음파 진단기기는 비교적 안전하고 사용이 용이하지만, 오진하게 되면 환자를 위험에 처하게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우려했다. 

대개협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하는 규정은 없다. 그렇다고 초음파 진단기기를 진단과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규정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음파 진단기기 자체는 비교적 안전하고 사용이 용이하지만, 오진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며 "한의학적 진단에 부가적으로 사용돼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그저 한의사들의 아전인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시대적 변화에 따라 한의학적으로 초음파 진단기기의 활용이 국민 건강에 이바지한다면 구체적인 실험과 근거가 전제돼야 한다"며 "이는 적어도 근거중심의학의 관점에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고 했다. 

아울러 "한의사협회장이 현대 의료기기 사용 시범을 보이다 의료계의 웃음거리가 된 일이 불과 수년전인데, 도대체 그 사이에 한의계에 어떤 중대한 발전이 있었기에 한의사들의 초음파 진단기기의 사용이 허가돼야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대개협은 "‘개발에 편자’를 달아주고,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쥐여준 대법원의 황당한 판결로 피해는 국민들의 몫이 될 것이 뻔하다"며 "서울중앙지법은 부디 현명한 판단으로 상급심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는 이번 판결이 '진보'가 아닌 과거로의 '퇴행'으로 법이 우리나라 의료를 격하시켰다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대법원은 아픈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방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 예는 너무 많다"며 "한방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 결과를 이용해 본말을 전도해 잘못된 처방을 내리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로 범죄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이어 "끊임없이 고민하는 환자들의 불안감을 사회적 통념이라는 논리를 적용해 전통의학과 한방을 하나의 틀로 묶어 동일시해버린 법원의 결정은 우리나라 의료를 지옥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태운 것"이라며 "이번 판결로 앞으로 발생할 부작용과 오진으로 인한 의료사고는 판례를 만든 법원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도 의학과 한의학이 공존하는 ‘이원적 의료체계'에서는 각각의 전문 영역을 인정하되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는 엄격히 다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의사회는 "의사와 한의사는 각자의 영역에서 체계적인 교육과 수련을 받고 국가로부터 해당 의료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검증받아야 비로소 의료인으로서 정당한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며 "전문영역을 이탈한 의료행위는 의료체계의 혼란과 국민 건강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의료행위의 개발 및 적용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했는지, 해당 의료행위에 한의학의 전문성이 내재되어 있는지 논리적으로 따져본 이후 법리적 판단을 해야 한다"며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법의 가장 큰 목적을 망각한 사법부의 민낯"이라고 혹평했다. 

이와 함께 의료계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는 물론, 국회와 보건복지부가 초음파 진단기기의 한의사 사용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중대한 사안임을 깨닫고 즉각적인 대처에 나서달라고 주문도 나왔다. 

대한피부과의사회는 "초음파 장비 자체의 위험도는 낮으니 누가 쓰든 상관없다는 식의 결과만 남긴 이번 판결은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어 무면허 의료행위가 만연하게 돼 국민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것이 불 보듯 자명하다"고 우려했다. 

의사회는 "의료인의 면허 범위가 구체화되지 않아 발생한 지금의 사태에 대해 국회와 보건복지부는 즉시 더 큰 의료체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의료법령 개정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모든 사안을 법률 규정에 명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법령에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 전문적으로 교육받지 않거나 관련 진단기기에 대한 자격이 부여되지 않은 사람이 허가된 면허 범위를 넘어선 의료행위를 해도 된다는 판결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연구소는 "이런 최악의 결과를 막기 위해 재판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해왔던 의협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한의사의 초음파를 비롯한 의과 의료기기 사용은 회원들의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지는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의협은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하지 말고 대책 마련을 위해 국회와 정부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도록 파업까지 불사하는 강력한 투쟁을 즉각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라고 강력 촉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