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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현장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자···” 복지부의 공허한 약속
[기자수첩] “현장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자···” 복지부의 공허한 약속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2.12.27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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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건복지부가 의료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고시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복지부는 공개 대상 항목을 내년에는 672개, 2024년까지는 전체 비급여 규모의 약 90%에 해당하는 1212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라면서, 이에 대한 행정예고를 오는 1월 25일까지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복지부는 그러면서 "의료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현장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자 법령 개정에 준하는 행정예고 기간을 뒀다"고 생색 아닌 생색을 냈다. 또 의료기관의 행정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특수한 정보통신망을 구축했다고도 광고했다.

그러나 정말 복지부가 현장 의견을 반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고자 했다면 비급여 진료비 공개 제도는 진작에 폐기되어야 하는 정책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비급여 공개 제도가 시작된 2013년도부터 강력하게 반발 의사를 표해왔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4개 보건의료단체는 지난 2021년 7월 비급여 진료비용의 보고 및 공개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제45조의2 제1항 등’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고, 소송은 아직 진행 중에 있다.

의료계가 이 제도에 반발하는 이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수행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보아서다. 의료행위는 명백한 환자와 의사 간의, 개인 간의 사적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에 대해 과도하게 개입하고자 한다는 비판이다. 정부는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의료선택권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이 제도를 시행했지만, 역으로 의료공급자들의 권리는 침해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의료공급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비급여 의료행위 가격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민들의 이익으로 돌아갈까? 결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의료행위를 가격에 따라 선택하는 것은 절대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이다. 의료행위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의료행위더라도 의사의 경력과 실력, 의료기관의 시설과 장비, 직원들의 인건비 등등 수많은 요소들이 품질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같은 특징이 있는 비급여 의료행위를 가격 경쟁에 몰아넣는 것은 의료 질의 저하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또 비급여는 의료기관이 저수가 상황에서도 그나마 운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정부는 비급여 항목이 마치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만을 올리는 악의 축이라도 되는 양 과도한 통제 정책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비급여 공개 제도는 필수의료 정책과 배치되기도 한다. 대한의사협회는 복지부 발표가 있었던 지난 16일 성명을 통해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민이 공평하게 중증질환 치료와 필수의료를 지원받게 해야 하고, 환자에게 제공하는 진료 및 고가 처치 등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사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발언했으나 당일 복지부는 비급여 보고제도 고시를 강행했다”며 “의사의 판단보다는 건보 재정관리와 통제에만 치중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속에서 의료계와 정부는 수차례 위기를 함께 거쳐왔다. 이제는 정부가 의료계를 단순한 정책 대상이 아닌 국민 건강을 지켜나가는 진정한 파트너로서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의료정책은 당사자인 의료계와의 명확한 합의에 근거해 정책을 펼쳐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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