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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은 다시 태어나도 마취의가 되겠다고 하셨어요.”
“어머님은 다시 태어나도 마취의가 되겠다고 하셨어요.”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2.12.2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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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최초 마취과 의사인 어머니 '신정순' 평전 낸 김애리 고려의대 교수
“스승으로선 매우 엄격했던 분···딸조차도 학교에선 피할 정도, 막중한 책임감 때문”

“어머님은 다시 태어나도 마취과 전문의가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평생 환자만을 생각한 분이셨습니다.”

김애리 고려대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주임교수<사진>는 최근 의사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마취과 전문의이자 자신의 모친인 故 신정순 교수를 추억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대한마취과학회 첫 여성회장을 역임한 의사 신정순의 삶을 되돌아보는 ‘신정순 평전’을 최근 출간했다. 신정순 평전은 한국에서 생소했던 ‘마취과 의사’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평생 마취과 의사를 천직으로 알며 한국 의학발전에 헌신했던 의사 신정순의 삶을 재조명했다. 김 교수가 지난 3년 동안 역사연구자들과 협업해 신정순 교수가 생전에 남긴 기념사진, 주고받은 서신, 개인 소장 자료, 문서 등을 정리해 책을 펴냈다.

고 신정순 교수는 고려의대의 전신인 서울여의전을 졸업한 후 1950년대에 미군병원과 스웨덴적십ㅡ자병원에서 근무하며 마취과 전문의가 됐고 이후 국립의료원 개원 멤버로 일하다가 다시 모교로 적을 옮겨 1993년 은퇴할 때까지 마취과학교실에서 후진 양성 및 고려대의료원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정년퇴임 이후에도 후학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 등을 이어가다 2010년 8월 영면했다.

고 신정순 교수는 역시 고려의대를 졸업한 그의 딸 김애리 교수에게는 어머니이자 선배, 그리고 스승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교수는 신 교수를 어머니로서 바라보는 관점과 스승으로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스승으로서 학생들에게 신 교수는 꽤나 엄격했던 모양이다. 이는 그의 딸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사실 저뿐만 아니라 의대 동기나 선후배들은 어머니를 무척 괴팍하신 분 또는 잔소리가 많은 분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심지어 스웨덴병원에선 ‘마귀’라는 별명까지 있으셨죠.”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우리나라 의료의 기반이 매우 취약했고 특히 수술실이라는 고위험 환자를 다루는 환경에서 대한민국 마취과 전문의 1호로서 모든 시스템을 정립하는 선구자 역할을 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신정순 교수의 어깨를 무겁게 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김애리 교수는 “한국 전쟁 직후 마취라는 생소한 분야를 미국과 유럽 등에서 들여오고 감염과 호흡, 바이탈 관리 등을 다루며 환자를 수술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어머님이 예민해지셔서 잔소리도 많아질 수밖에 없으셨을 것”이라며 “심지어 저도 학교에선 어머니를 피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고 신정순 교수 같은 선각자들이 있었던 덕분에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근대사와 함께 의사생활을 하며 일구어 내신 역사 속 많은 선배님들 중 한 분이 제 어머님”이라며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그냥 지나치는 것보단 우리나라 마취과의 역사를 돌아보고 또 우리 학교의 선배로서 남기신 업적을 후대에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머님은 평생 마취와 환자만을 생각하셨어요. 모든 생활 패턴도 환자 중심으로 맞춰서 돌아갔죠. 다시 태어나도 마취를 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런 열정을 보이신 덕분에 고려대병원은 물론 우리나라 마취 의학의 초석도 제대로 세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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