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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3] 불확실성 다루기
[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3] 불확실성 다루기
  • 의사신문
  • 승인 2022.12.1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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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규 교수(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질환의 본성은 복합적이고 의료와 환자 돌봄은 그래서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많은 신규 의사들은 이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동료의 도움과 지지 과정을 통해서 이러한 상황을 확실하게 다루고, 변화에 응답할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라고 영국 제너럴메디칼카운슬(General Medical Council)에서 발간한 ‘의과대학 졸업생의 성과(Outcome for Graduates)’는 말한다. 근대 의학의 여러 특성들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간과하고 있는 것이 이 불확실성이다.

수입된 의학으로서 서양근대의학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이렇게 인식된다. 의학은 곧 과학이다. 과학에는 불확실성이란 없다. 그러므로 의학에도 불확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의학에서 무언가가 불확실하다면 그것은 이를 행하는 의사의 능력 부족이나 부주의에 기인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의학의 본성(nature of medicine)은 절대 그렇지 않다. 히포크라테스부터 이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유명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히포크라테스의 격언은 결코 무슨 예술에 대한 것이 아니다. 사실은 “인생은 짧고 의술(기예)은 길다. 기회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경험은 불확실하며, 판단은 어렵다”가 원래의 격언이다. 여기서 기회란 적절한 중재(intervention)을 하기에 최적의 순간을, 경험은 의사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의미한다. 그리고 모든 의사는 판단은 어렵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과학이 더 발전하면 불확실성은 사라지게 될까?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불확실성도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근본적인 불확실성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주지하다시피 같은 약을 처방해도 효과는 다른 경우가 왕왕 있다. COVID-19 백신을 맞아도 누군가는 면역력이 생기지만 누군가는 생기지 않고, 다른 누군가는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켜 심지어 사망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을 미리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불행히도 그런 방법은 없다. 근대의학은 물리학과 같은 인과법칙이 아니라 통계학에 그 과학성을 뿌리내리고 있다. 대부분의 의학 지식은 개연적인 것이며,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지 타당도 100%, 신뢰도 100%와 같은 검사법이나 치료법은 없다.

과학이 더 발전할수록 의사들은 불확실성을 더 느끼게 되고, 자연과 인체 앞에 더 겸손해질 것이다. 역설적으로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 의사들은 몇 가지 지식을 가지고 더 확실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예컨대 19세기 중반 미국의 대표적 의사였던 벤자민 러시(1746~1813)는 모든 병의 원인을 ‘기관계의 불규칙한 경련’으로 환원하고는 사혈을 최고의 치료법으로 모든 질병에 적용하였다. 그 자신부터 황열병에 걸리자 무리하게 사혈을 하여 사망하였지만, 이런 모습이 근대 과학 이전에는 흔했다. 즉 모든 질병의 원인을 한 가지로 본다거나, 하나의 ‘만병특효약’이 모든 병을 치료한다거나 하는 주장들이 흔했다. 우리는 요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돌팔이’라 부른다. 
필자가 의과대학을 다니던 당시 모든 교수님들은 너무나 훌륭하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교과서를 아무리 읽어도 환자 앞에만 가면 얼어버리고 아무 추측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의학교육을 공부한 한참 후에야 이런 일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즉 의대생이, 그리고 수련의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이 ‘불확실성 다루기’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불확실성은 지식과 경험의 부족뿐 아니라 의학의 본질적 측면이기도 하다는 것, 경험이 풍부한 의사는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현명하게 다루는 방법을 알 뿐, 불확실성 자체를 제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GMC의 졸업성과가 제시하듯 불확실성을 다루는 최선의 방법은 경험이 풍부한 선배, 교수, 혹은 다른 직역의 동료, 환자 본인 및 보호자 등과 협력하는 것이다.

이 불확실성의 문제로 인해 선진국의 사법 당국은 의료에서 혹 나쁜 결과가 초래되어도 의사의 고의, 또는 확실한 주의태만이 입증되지 않는 한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려는 노력을 할 뿐 의사를 형사범으로 취급하거나 처벌을 능사로 여기지 않는다. 원인규명과 재발방지 또한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무도 원하지 않은 나쁜 결과가 발생했을 때 마치 의사를 처벌하는 것이 정의의 구현인 양 생각하는 풍토가 없지 않다. 심지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자 재난 현장에 출동했던 재난의료지원팀에 대한 경찰 조사까지 했다. 아니 이 사태의 원인을 무슨 의료지원팀이 제공하였는가? 만약 의사가 ‘매뉴얼’대로 안 했다면 그건 형사처벌감인가? 의학에서 매뉴얼, 혹은 어떤 임상지침은 특정 상황 속에서 의사라면 대체로 그렇게 하는 것이 권장된다는 것일 뿐 법률이 아니며, 의사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필요하면 그러한 지침을 변용할 수 있다. 그것이 적합한지 아닌지 여부는 다른 의사의 판단에 달린 것이지 사법제도가 판단할 차원의 것이 아니다.       

의료는 애초에 불확실성을 개연성으로 다루는 기예이고 의사들이 그러한 일들을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해 줄 것이라는 사회적 신뢰가 없으면 존립이 불가능한 활동이다. 소위 필수의료의 추락을 모두가 염려하고 있는데, 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재고해 보아야 한다. 의료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 사회는 비로소 성숙한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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