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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재정 상황과 환자에 치명적 결과 고려해 필수의료 지원해야
건보재정 상황과 환자에 치명적 결과 고려해 필수의료 지원해야
  • 의사신문
  • 승인 2022.11.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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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회 창립 107주년 특집] 정부 차원 필수의료 강화 대책 논의, 올바른 방향은? ⑤
정성관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보험위원 및 미래발전위원

요즘 의료계에서는 ‘필수 의료’ 논쟁이 한창이다. 무엇보다 어느 진료과의 어느 분야가 필수 의료인지가 뜨거운 감자인데, 이는 아마도 정부의 지원책과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논의가 있을 때마다 맡아 놓고 거론되는 필수 의료의 한 분야이다. 

이 두 과는 저출산의 심화로 인해 가장 소외된 동시에 또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아이러니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저출산의 분위기로 인해 임상과 중에서 인기 최하위 그룹에 속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개원 이후 일반 외래진료만 담당할 수도 있지만 2차 의료기관이나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이상 야간, 주말 진료는 물론이고 응급상황에 대비하여 당직까지 서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소위 환자의 바이탈을 다루는 메이저 진료과이기 때문이다.  

‘필수’라는 말은 누가 보아도 꼭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부 차원의 필수 의료에 대한 논의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쉽게도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전체 중에서 우선적으로 지원해야할 꼭 필요한 분야를 선별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논의되고 있는 필수 의료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에서 꼭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것보다는 환자의 개인적 상황에 필요하거나 진료를 하는 의사에게 있어 중요하다는 뜻에 더 가깝게 해석되고 있는 것 같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부터 시작된 뇌혈관 질환 논의처럼 한 개인의 상황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크게 이슈가 되는지에 따라 논의의 흐름이 급변하고, 이제는 성형외과의 재건성형수술과 영상의학과의 영상검사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의료까지 필수의료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의료에 있어서 어느 과가 더 중요하고 어느 과는 덜 중요하다고 순위 매김 할 수는 없다. 모든 의료 행위 자체는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며 심지어는 의료의 모든 행위가 필수가 아닌 것이 있냐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흑자였던 건강보험 재정은 당장 내년인 2023년부터는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28년 정도에 이르면 건보재정이 아예 고갈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투입할 수 있는 재정은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에 모든 의료가 필수적이라고 정의됨에도 불구하고 이 중에서도 어쩔 수 없이 우선순위를 정하여 지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령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과 자체가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고 전공을 하려는 의사 자체가 없어서 아예 대한민국에서 소아청소년과라는 진료 과목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같은 의사들도 우선적으로 지원책을 마련해주어야 하는 필수 진료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건강보험의의 재정상황을 고려하여 굳이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증상이 심하지 않아 잘 놀고 있는 아이의 콧물약을 처방받기 위해서 의료기관을 방문한다면 이는 환자에게 어느정도 ‘필요’한 의료일 수는 있겠지만 의료체계 내에서 ‘필수’인 의료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반면에, 한밤 중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고열이 나고 기침이 심하여 입원 여부가 필요한 아이나 고열이 나는 아이가 갑자기 열성 경련을 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는 응급상황으로 이어지기 전 신속하게 검사와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의사의 진료가 필수적이다. 또한, 신생아 중환자실 케어나 소아 암환자 치료와 같은 다른 인력으로 대체될 수 없고 전문성을 더욱 기하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두 말할 것도 없다.  

즉, 의료에 있어 필수 의료 여부를 단순히 진료과목에 따라 결정하기보다는 어떠한 특정 의료행위가 적절한 시기에 적정한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 특히 야간이나 주말, 휴일 등 의료공백이 발생하기 쉬운 시간대에 - 환자에게 어느 정도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필수의료가 야간, 휴일, 응급 의료와 개념적으로 동일시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필수의료를 논의할 때에는 해당 의료행위가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환자 수가 몇 명인지 ‘수요’와 해당 의료 행위를 담당할 수 있는 수준의 의료진이 어느정도 충족되어 있는지 ‘공급’ 의 균형도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은 단순히 수가 지원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소아청소년과처럼 출산율 자체가 줄어들어 절대적인 환자수가 감소하였는데 수가만 올려준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보다 전폭적인 정책가산과 함께 소아청소년에 대한 진료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시설 및 인건비 지원. 그리고 학생과 전공의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등의 다방면의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필수의료라는 논제는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서 소외되어 있었지만 의사들의 사명감으로써 버티고 있었던 문제들이 드러나며 주목받게 된 것이다. 어느 한 분야의 진료과에 대한 수가와 같은 단순 지원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의료행위에 대한 수요와 공급 부분을 잘 고려하여 그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기이다. 앞으로 필수 의료에 대한 발전적인 의견교환을 통해 의료체계가 보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정립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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