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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의견 경청하고 장기적 계획 마련해야
전문가 의견 경청하고 장기적 계획 마련해야
  • 의사신문
  • 승인 2022.11.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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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회 창립 107주년 특집] 정부 차원 필수의료 강화 대책 논의, 올바른 방향은? ⑦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

정부에서 약속한 필수의료 강화대책 발표가 목전에 있지만, 이번 이태원 사태의 여파로 정책당국의 부담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이번에 발표될 필수의료 대책에 대한 현장의 기대감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서 아예 없는 상태이다.

아마도 정치권에서 처음에 필수의료가 이야기 될 당시에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여야가 이견이 없으며 모든 국민들이 원하는 이른바 박수 받는 발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 논의가 시작될 당시만 하더라도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이른바 메이저 전문과들의 위기가 필수의료의 대책인 것처럼 이야기되다가, 여기에 의사협회 필수의료 논의체 소속인 흉부외과와 비뇨기과가 가세하였고, 중간에 아산병원 간호사 사건이 터지면서 신경외과와 수술파트 전문과들이 한자리씩 차지하였으며, 또다시 확산된 코로나를 기점으로 감염파트와 예방파트까지도 필수의료 논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필수의료와 비필수의료의 프레임이 형성되면서, 의사협회와 단체들에서는 이번 논의에서 배제되면 마치 단체의 미래가 없는 것처럼 모두가 필수의료에 편입되려 애쓰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편입되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배제되었을 때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메이저과의 위기가 이른바 배제되어 망한 케이스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수의료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필수의료가 있다면 그와 반대인 비필수의료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환자나 의사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나누는 기준은 너무나도 애매하다. 넓게 본다면 모두가 필수의료이고 좁게 본다면 대부분이 비필수 의료가 될 것이다. 한정적인 보험재정으로 필수의료라고 선정된 부분에 더 지원한다면 반대로 비필수의료에 해당된 부분은 지금에서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 뻔하다.

최소 범위의 필수의료가 필요한 정부의 입장과 넓은 범위의 필수의료를 주장하는 의료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정작 당사자인 국민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 상태이다.

이것은 마치 응급실에서 응급이냐 비응급이냐를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 과거 응급의료관리료를 만들 때 응급환자에는 보험 적용이, 비응급환자에는 본인 부담이 결정됐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응급환자임을 판단하는가’였다. 결과적으로는 복지부에서 응급증상을 정하고 이것이 아니면 비응급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가령 37.9도는 비응급, 38도는 응급 이런 식이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정말 깨알만큼 출혈이 있어도 응급, 배가 아픈 환자는 무조건 외과적 질환 감별 필요로 응급에 해당한다. 현장의 의료진은 ‘당신이 비응급이며 본인부담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환자들에게 설명해야 했고, 환자들은 ‘내가 왜 비응급이냐’며 언성을 높이는 식의 싸움이 거의 매일 끊이지 않았다. 애매한 기준과 적용으로 현장의 선택권을 넓혀 놓으니 어느 병원은 내원환자가 모두 다 응급환자이고, 어느 병원은 모두 다 비응급인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지며 감사원 감사에 걸리기도 했다.

이후 한국형응급환자 분류도구,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이라고 하는 새로운 방식의 중등도 분류체계가 시행되었는데, 원래 이러한 분류는 환자의 치료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도구로 이미 미국, 캐나다 등에서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응급의학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건정심을 거치면서 수가와 연계되어 아예 다른 제도가 되어 버렸다.

어떠한 정책이든 정확한 현재 문제점의 분석을 통하여 확실한 정책 목표를 가지고 시행되어야 한다. 이번 필수의료에 대한 논의는 필수의료가 부족하다는 문제점에 대한 올바른 분석이 과연 이루어졌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필수의료가 과연 왜 부족해졌으며, 무엇이 문제이기 때문에 필수의료를 확충해야 하는지 먼저 그 지점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거기서 이야기하는 필수의료가 과연 무엇인지 정의가 필요하다. 우리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지난 8월 필수의료 논의가 혼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자회견과 성명서를 통해 “필수의료가 무엇인지 정의된 바 없는 상황에서의 필수의료 논의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며,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명확한 최종목표에 대한 공감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의료인의 최종목표는 양질의 의료를 제공함으로써 환자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신념이다. 지금의 필수의료에 대한 모든 논의와 대책들은 단순히 급한 부분에 먼저 투자하는 개념이 아니라 향후 5~10년, 길게는 50~100년 앞을 내다본 장기적인 계획과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책당국과 각 부처의 역할은 과감한 투자와 지원으로 기본적인 인프라의 확충을 기획하는 것이다. 의사단체와 전문가 집단의 역할은 직역의 유불리를 떠난 환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들에 대한 전문가적 의견을 제시하고 방법을 도출하는 일일 것이다.

의료인이 제공하는 모든 의료행위는 필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고, 그 가치의 평가는 심평원이나 정부가 아닌 의료인 자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기에 필수의료라는 정의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다. 지금 이야기되는 필수의료가 정말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아랫돌로 윗돌을 괴는 일인지 정책담당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제라도 정책당국은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열린 마음으로 단기적 계획이 아닌 장기적 계획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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