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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질식 처방 그만 하고 필수의료 살릴 관련법 제정 필요
땜질식 처방 그만 하고 필수의료 살릴 관련법 제정 필요
  • 의사신문
  • 승인 2022.11.2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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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회 창립 107주년 특집] 정부 차원 필수의료 강화 대책 논의, 올바른 방행은? ②
김태빈 대한내과의사회 부회장(보험정책단장)
우리나라 현행 지불보상체계에서 단순 수가 인상만으론 문제 해결 힘들어
내과의사 소신진료 힘든 환경...의료분쟁조정 신청 사망 건수 중 36.6% 차지

<서론>
‘필수의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분야로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의료서비스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필수의료의 범위에는 응급의료.외상.암.심뇌혈관질환.중환자.중증감염병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 관한 의료서비스나 임산부.신생아.소아 질환 등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리적 문제 또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하여 의료공백이 발생하는 의료서비스가 해당한다.

필수의료의 가장 큰 특성이라면 복잡성과 응급성이 높아 업무 강도가 세고 의료사고의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숙련된 인력을 구하기도 어렵고, 해당 분야의 전공의 지원도 미달되어 전문의를 양성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의 지불보상체계 하에서는 수익을 내기 어렵고, 보건의료체계의 혁신 없이 단순히 수가를 올려준다고 해결될 분야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해결 방안

첫째,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과감한 보상과 국가 책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의료수가는 항목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흔히 OECD 평균의 1/3, 미국의 1/10 수준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보험없이 수술하고도 본국으로 돌아가면 항공료를 제외해도 남는 장사’라고 하니 말 다 했다. 고도로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고 업무 강도가 높은 필수의료 분야는 저수가가 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다. 저수가 속에 의료진의 사명감과 희생으로 필수의료가 지탱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대적인 저수가 이외에도 우리나라 주요 보상체계인 행위별 수가제의 필수의료 측면에서의 큰 단점은 행위가 발생해야 보상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응급환자, 중증환자 등에 대한 진료가 언제든지 가능한 시스템이 되려면 대기 인력과 대기 기간에 대한 보상이 필수이다. 병원 처지에서 보면 적정한 수의 환자가 있고 적정한 정도의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의사를 고용할 수 있다. 

민간의료가 주축인 우리나라의 현실, 그리고 개선될 기미가 없는 저수가 틀에서 민간이 이 모든 비용을 떠안고 갈 수가 없다. 수가를 약간 인상해서 해결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보장성 강화정책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는 만큼 이제 필수의료 분야는 공적 영역에서 보장해야 하는 의료서비스임을 깨닫고 국가가 나서 책임져야 한다. 

둘째,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으로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법률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내과를 비롯한 필수의료 분야 진료과 의사들의 가장 큰 부담은 소신진료가 어렵다는 것이다. 선의의 의료행위를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도 크지만 담당의사의 정신적 고통도 크다. 특히 병원에 내원할 때부터 위중한 복합질환을 앓는 환자는 열심히 진료해도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그 결과가 소송으로 이어진다면 소신진료가 더욱 어렵다. 

의료정책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2018년 우리나라에서 검사가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한 건수는 연평균 754.8건이다. 이는 일본 경찰 신고 건수(연평균 82.5건) 대비 9.1배이고, 영국 의료과실 의심 관련 과실치사 경찰 접수 건수(연평균 24건) 대비 31.5배 높은 수치이다. 의사들이 방어진료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며 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의사가 방어진료 없이도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다면 의료서비스 시스템의 효율과 안정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의료분쟁특례법(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이 필수의료의 해법으로 꼽히는 이유이다. 

셋째, 의료기관 기능별 역할 정립과 협력의료체계 구축으로 필수의료 인력의 기능을 극대화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은 경증 및 만성질환 환자의 외래 쏠림현상으로 인적, 물적 자원을 외래진료에 소모하게 되고 이로 인해 중증.입원환자 중심의 진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중증.입원환자 치료에 대한 수가가 낮다 보니 부족한 수익을 외래 수입으로 보충하도록 내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십 년째 지속된 의료전달체계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도 답보상태에 있다.

그동안 상급종합병원에 대한 규제를 통하여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외래 환자를 이동시키려고 하였으나 지난 10년간 외래 요양급여 비용과 외래 내원일수 비중에서 상급종합병원은 각각 1.7%와 1.1% 증가했지만, 의원은 각각 3.7%와 4.9% 감소했다. 

만성질환의 경우, 지역사회에서 포괄적이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나 대형병원에서 장기처방 중심으로 진료하게 되면 치료 효과는 오히려 저하될 수 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일차의료기관의 역량과 역할을 충분하게 확인하였다. 이제는 하향식 정책 방향을 상향식으로 과감하게 변경할 필요성이 있다. 

만성질환관리제도 시범사업의 확대 그리고 초고령사회의 복합만성질환을 가진 지역사회 노인환자에 대한 커뮤니티케어 사업에서 일차의료기관의 역할을 활성화하여 상급종합병원이 외래 의존도를 탈피하고 응급, 중증.입원환자 등 필수의료 분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과 관련 필수의료

한국에 힘들지 않은 의료분야는 없다. 의료는 기본적으로 필수적인 것이고 어떤 진료과에서도 조금의 실수로 또는 최선을 다했다 하더라도 심각한 장애나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의료분야이다.

따라서 특정 전문과만이 필수의료 분야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내과 분야와 필수의료에 관해 잠깐 말해보고자 한다. 흔히 내과가 의학의 중심이라고 하고, 병원의 모든 환자는 내과로 통한다고 한다. 내과가 흔들리면 의료시스템 전체의 위기가 커진다.

내과의 경우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에 비하여 그나마 전공의 기피 현상이 덜하지만, 우려는 비슷하다. 세부 전공이 다양한 내과에서 2020년 전임의 과정에서 내시경 시술로 개업하기 좋은 소화기내과에 전체의 33%(139명)가 몰렸지만 암 치료를 하는 혈액종양내과에는 30명,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을 진료하는 감염내과는 29명에 그쳤다. 내과 안에서도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 

내과 전공의 수련이 3년으로 줄고 주 80시간 근무로 전환되면서 전공의 부족이 심해지고 덩달아 전임의 부족 현상이 심해지면서 내과 시니어 스텝이 되어도 응급실 당직, 입원환자 온콜을 받아야 한다. 응급실 내원 환자 중 내과 환자가 가장 많고, 위중한 중환자실 환자 관리도 내과 의사가 거의 대부분 맡고 있다. 

이러한 과중한 업무부담도 문제이지만 중환자와 응급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내과 의사들이 소신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되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의료정책연구소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12~2020년 동안 의료분쟁조정.중재 신청 건 중 사망 신청 건은 내과가 전체건수의 36.6%를 차지하여 단연 압도적이다. 의료과실로 인하여 민.형사책임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진료과목이 내과인 셈이다. 복잡성과 응급성이 높은 환자를 진료하는 내과가 의사들의 기피 과목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의 대형 대학병원도 예외는 아니지만 지방 대학병원의 경우 내과 전공의 지원이 매년 미달되고 그마저도 중도 포기자가 많아 내과 진료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수도권 외 지역에서 내과 진료 체계의 공백이 심히 우려되는 시점이다. 

◆결론

저수가를 바탕으로 의료기관 간 과당경쟁을 방치한 채 지속되어 온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 필수의료의 미래는 더 암울하다. 필수의료는 충분한 보상과 더불어 보건의료자원의 효율적인 배분, 의료기관 기능별 역할 정립, 협력의료체계 강화 그리고 환자와 의료인 간의 신뢰가 중요한 분야이다. 

우리는 모두 필수의료의 보살핌을 받고 살 수밖에 없다. 의사조차도 미래에 자신의 몸을 맡길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불안하기는 매 한 가지이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백가쟁명식으로 나오는 땜질식 처방은 이제 그만 하고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는 실질적이고 확실한 관련법 제정이 필요하다. 수가 개선, 필수의료 의료진의 처우 개선, 의료전달체계의 개선 그리고 소신진료를 위한 법적인 뒷받침을 위한 가칭 ‘의료분쟁특례법’의 입법 등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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