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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2] 의사의 윤리는 무엇인가
[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2] 의사의 윤리는 무엇인가
  • 의사신문
  • 승인 2022.11.2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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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규 교수(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우리나라에서 윤리(倫理)라는 말은 너무나 고상한 함의를 갖는다. 초등학교 때는 ‘도덕’ 과목을 들어야 하고, 중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같은 과목들이 있다. 심지어 예전에는 대학에서 ‘국민윤리’를 교양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많은 윤리 과목을 배우는 우리 국민은 이론대로라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덕과 윤리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현실은 윤리 과목을 배우면 배울수록 실제 현실에서는 윤리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잡다하게 ‘좋은’ 이야기를 가르치거나, 아니면 우리 문화와는 별 상관도 없는 외국 현대 사상가들의 주장을 가르치는 것이 도덕과 윤리의 함양에 무슨 도움이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필자는 의과대학에서 의료윤리를 가르치는 것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사실 의료계 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은 의료윤리 교육에 회의적이다. 몇 시간 교육을 한다고 해서 ‘사람을 사랑하는’, 혹은 ‘공감능력이 넘치는’, 혹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혹은 ‘국민 건강과 사회 발전에 헌신하는’ 그런 의사를 만들 수 있을까?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 대답은 ‘아니오’다. 절대 그럴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 사회는 의료계에서 무슨 문제가 벌어지면 ‘의사에 대한 윤리교육 강화’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든다. 아니, 이미 성인이 된 의사에게 일년에 몇 시간 그런 교육을 하면 의료계의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인가?

사실 필자가 가르치는 의료윤리란 ‘지식’이 필요한 내용들이다. 예컨대 환자에게 동의를 구할 때는 어떠어떠한 내용을 설명해 주어야 하는지, 연명의료의 중단을 원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삶의 질을 증진하지만 수명을 줄일 수 있는 치료와, 반대로 삶의 질은 떨어뜨려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치료 사이의 선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럴 때 유념해야 할 요인들은 무엇인지 등이 필자가 교육하는 의료윤리이다. 이는 실천 혹은 실무(practice) 의료의 매우 중요한 요인이며, 의사가 제대로 된 프랙티스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윤리가 인성, 혹은 인격과 동일시되었으며 이를 함양하기 위해 ‘교육’을 하면 된다는 사고가 팽배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물론 조선을 지배한 유교의 압도적인 영향 때문이다. 

유교란 무엇인가? 조선을 지배했던 유교 성리학은 인간의 성품(性)은 원래 천지의 가장 영명한 이치(理)의 구현인데, 일반인들은 여러 욕망과 감정으로 인해 그 순수한 성품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깔고 있다. 그 순수한 성품은 바로 인간의 덕(德)이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성인(聖人)의 말씀을 듣고 이를 실천하는 교육(敎化)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성리학의 요체이다. 이를 현대식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즉 의사가 어떤 잘못을 하였다 -> 이는 그의 도덕성, 또는 인격이 부족한 데 기인한다 -> 이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해야 한다 -> 그러니 윤리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한국에서 의사에 대한 불신, 그리고 불만은 대체로 불친절하다, 설명을 제대로 해 주지 않는다,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돈만 밝힌다’ 등등이다. 이러한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생존하려면 3분 진료를 일상화해야 하며, 의료전달체계가 모두 붕괴한 현실에서 모든 환자가 원하는 대형 병원의 권위자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그러한 3분 진료에도 불구하고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또한 모든 의료행위가 보험 수가로 통제되는 상황에서 의사가 돈을 밝힌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의료기관의 90% 이상이 민간의 자본으로 세워지고 운영되고 있는데 “불친절하고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3분 진료를 하지 않아 그 의료기관이 부도가 나고 문을 닫게 되면 그 피해는 누가 입는지에 대한 생각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 국민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인이나 언론인, 지식인 등 사회지도층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도 않다. 그들의 관점에서 어쨌든간에 ‘생명은 소중’하며, 의사는 ‘공감능력’을 갖춘 사회 봉사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교에서 중시하는 인(仁), 즉 공감이나 연민과 같은 가치는 소규모 가족공동체, 즉 가문이나 동성집단으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조선의 유물이다. 그 가치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수백만의 인구가 모여 도시를 이루고 사는 현대에는 그 이상의 다른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공감이나 연민은 사적(private)인 가치인 반면, 공적(public) 가치는 정직과 성실이어야 한다. 친절, 공감, 연민은 의사가 가지면 바람직한 태도이지만, 정직과 성실은 의사로서 가져야 할 필수적 가치다. 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의사는 정직하고 성실한데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의사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대의 의사에게 어떤 윤리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직업윤리일 것이고, 그 직업윤리의 요체는 정직과 성실이라는 것이다. 또한 의사로서 제대로 프랙티스를 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 판단과 의사결정의 능력일 것이다. 이를 제발 조선의 낡아빠진 윤리나 인성 주장과 혼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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