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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놓치면 응급외과수술 멈춘다”···수가만 올려서는 해결 안 돼
“지금 놓치면 응급외과수술 멈춘다”···수가만 올려서는 해결 안 돼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2.11.25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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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중환자외과학회·보건의료연구원, 24일 외과응급의료체계 공청회
국내 ACS ‘수술실·병실·인력’ 모두 부족···로봇수술에 수술실 뺏기기도
수술 건수보다 품질에 대한 수가 체계, 의료진 직접 보상 등 필요

“우리나라 응급 수술의 8~90%가 외과 수술이다. 그런데 대장항문외과, 간담췌장외과 등 중증을 보는 전문의들 씨가 마르고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응급수술은 물론이고 외과 수술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큰 위기가 닥치기 전에 개선에 나서야 한다.”

대한외과학회 이우용 부회장은 24일 오후 대한외상·중환자외과학회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한국형 외과응급의료체계 공청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금 당장 외과응급의료체계를 재건하지 않으면 곧 응급을 비롯한 모든 외과수술이 멈출 것이라는 위기감이 의료계에 번지고 있는 것이다.

외과응급질환으로는 복막염, 장천공, 장마비, 장허혈·장괴사, 복강내출혈, 중증외상 등이 있다. 적시에 수술을 받지 못하면 합병증이 증가하고 사망에까지 이르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외과 전공의 감소, 대형병원 쏠림 현상, 지역별 의료 불균형 등 문제로 인해 수술이 지연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그 일례다.

이에 ACS(Acute care surgery)를 자체적으로 도입하며 자생적 노력을 기울이는 병원이 늘어나고 있다. ACS는 응급수술, 중환자 집중치료, 외상 3개 분야의 외과 중증, 응급환자들을 진료하는 응급수술전담팀으로 해외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되어있는 체계다.

연구진은 국내외 ACS제도 효과의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한국형 외과응급의료체계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연구를 진행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연구 책임을 맡은 홍석경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교수가 국내 ACS 운영 병원의 성과를 분석하고,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모델을 제안했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영남대병원의 ACS 도입 전후 의무기록을 분석한 결과, 응급 수술을 시작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단축되는 효과가 있었다. 응급 수술 시간 자체와 응급 내원부터 외과 입원 결정까지 걸린 시간도 짧아졌다.

홍 교수는 “응급환자를 위한 수술실과 중환자실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한계를 안고서도 시간이 단축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ACS가 있는 경우 전문의 위주의 진료가 이루어져 전공의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응급 환자를 타병원에 전원하는 사유 중 중환자실 부족, 수술실 부재와 더불어 집도의 부재 또한 주요한 것으로 조사 결과 나타났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병원 재정상 ACS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조사에 참여한 현직 ACS 의료진들은 “병원 입장에서는 ACS에 투자하는 게 오히려 손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의료진은 조사에서 “응급수술은 혼자 20건을 하다가 팀 인력이 5명으로 늘어난다고 해서 100건이 되지 않는다”며 “혼자 해도 적자가 나는데 다섯이 하면 적자 폭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인력과 시설에 대한 투자도 부족하다. 인력이 부족해 주말 당직, 밤 근무가 일상인 것은 물론이고 모 병원은 겨우 하나 있던 응급수술실을 로봇수술실로 변경하기도 했다.

만성적인 인프라 부족에 홍 교수는 가장 현실적인 국내 ACS 모델로 의료기관 단위가 아닌 지역 단위의 순환근무 체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수가를 대폭 인상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의료진들은 고개를 저었다.

조사에 참여한 의료진은 “수가가 올랐다고 병원에서 다시 그 돈을 응급수술에 투자한다는 보장이 없다”며 “차라리 매출이나 수익이 아니라 응급수술 질 상승을 인정해주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답변했다.

대한응급의학회 김현 기획이사는 “수가 시스템이 의료 패러다임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외래 9명, 응급 1명 비율로 의사를 배정했다면 지금은 외래 6명, 응급 4명 정도의 비율을 맞춰야 응급의료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과 전공의 정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 “지금 대학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요양병원에서 온 노인 환자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어 정말 응급한 환자를 응급실에서 볼 수가 없다”며 “저변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충기 정책이사는 “고위험 응급환자, 야간 응급수술을 맡는 인력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부족하다”며 “수가를 올려도 실제 일선 인력에게 인센티브 등 격려책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의료진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 결과에 대한 형사 책임 부담도 덜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는 “훨씬 더 힘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응급의료진에게 형사 책임을 물으면 어떤 전공의들이 하려고 하겠나”라며 “의사들이 일선에서 부담을 덜 느낄 수 있도록 국가의 개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김은영 응급의료과장은 “지금까지 나온 문제점에 대해서는 정부도 공감한다”며 “그러나 ACS의 제도화는 별도 지정체계를 또 하나 구성한다는 측면에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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