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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1] 의사(醫師)의 정의는?
[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1] 의사(醫師)의 정의는?
  • 의사신문
  • 승인 2022.11.1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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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규 교수(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국어사전을 보면 ‘의사’의 정의는 “의술과 약으로 병을 고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한 마디로 의술이 직업인 사람, 그가 의사다. 이 자명한 말을 굳이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직업인이라는 사실을 일반 국민은 물론, 때로는 의사들 일부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직업이란 무엇인가? 직업이란 한마디로 생계, 즉 밥벌이다. 표현을 좀 거칠게 하자면 의사는 의업(醫業)으로 밥을 벌어 먹는 사람이다. 의술을 무슨 취미나 봉사활동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히포크라테스가 의사의 시조인 이유는 그가 무슨 ‘선서’를 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의사상을 확립했기 때문에 의사의 시조가 된 것이다. 그 유명한 ‘선서’ 역시 다른 돌팔이들과는 스스로를 구별해야 할, 요새 식으로 말하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하게 된 것이고, 이는 또한 19세기 이래 미국 의사회(AMA)가 각종 돌팔이들과의 경쟁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의사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의료윤리에 큰 관심을 두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이 새삼스러운 말을 21세기에 왜 해야 하는가? 직업이란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고 그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는 일이다. 모든 직업인은 다 그렇게 한다. 빵을 구워 파는 이도 각종 재료비에 점포 임대료 등의 비용, 세금, 그리고 거기에 본인의 인건비를 붙여 가격을 책정한다. 버스 기사도 일정 시간을 운행하면 그에 따른 임금을 받는다. 이 세상 모든 직업이 다 그러하다. 그리고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무슨 이타적인 동기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근대 경제학의 기초를 닦은 아담 스미스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저녁밥상을 차릴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업자, 제빵업자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의사도 사실은 그러하다. 물론 의사 중에는 평생을 오지에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한 슈바이처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의 직업이 “의사”였을까? 그는 오히려 선교사, 또는 사회복지사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그리고 물론 모든 의사에게 그렇게 살도록 강제할 수도 없다. 그렇게 사는 의사는 물론 훌륭한 삶을 살았다는 칭송을 듣겠지만, 의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대부분의 의사는 그렇게 살 수도 없고, 또 그렇게 살 이유도 없다.

모든 직업인은 자기가 제공하는 재화나 용역에 대해 적절한 보수를 받는다. 그것이 특별한 재능이나 훈련을 요한다면 그 보수는 당연히 시장 경쟁에 따라 올라간다. 어떤 일을 전적으로 직업인으로서 한다면 요즘은 그런 이들을 ‘프로(페셔널)’라고 부른다. 손흥민은 우리 동네 조기축구회원처럼 재미로 축구를 하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는 ‘프로 축구선수’라고 하고, 그의 능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흉내도 낼 수 없기에 어마어마한 보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부정의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을까? 왜 손흥민과 K-리그의 축구선수들은 임금이 달라야 하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나? 손흥민의 축구공과 K-리그 선수들의 축구공은 다 같은데 말이다. 

헌데 의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보수를 제한해야 한다고 믿는다. 심지어는 어떤 경우에는 ‘공짜로’ 의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다. 마치 의사는 직업인이 아닌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고, 심지어 의사 중에서도 그렇게 믿는 사람도 있다. 의업에 종사하고 여력이 남아 사회에 봉사하면 좋은 일이다. 전적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면 그건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사의 정체성은 아니다.

이러한 혼란은 조선시대 유의(儒醫)의 개념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의서를 읽을 줄 알았던 선비들은 환자가 생기면 공짜로 처방을 써 주거나 침을 놓아주거나 했다. 이들은 애초 의업을 직업으로 생각했던 이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조선에는 의술을 직업으로 삼을 만큼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도시도 별로 없었다. 선비는 치료 행위에 대해 돈을 받으면 안 되었다. 조선시대에 선비의 위치란 지금의 신부나 목사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렇다. 그러니 그들은 직업이, 혹은 정체성이 선비이지 의사가 아니다.

의료는 특수한 서비스라서 프로 축구선수처럼 경쟁에 따라 보수가 무한정으로 올라가는 서비스가 아니라는 데는 일부 동의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의 의사는 직업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조선의 유의처럼 공짜로 의료서비스를 베푸는 게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건전한 직업인으로 산다는 게 더 자랑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적어도 직업인으로 살게끔 공정한 거래는 보장해 주어야 할 것 아니겠나. 공무원이나 정치인도 아닌 의사가 왜 사회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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