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기자수첩] 성분명 처방 도입 주장, 환자안전 고려 없어
[기자수첩] 성분명 처방 도입 주장, 환자안전 고려 없어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2.11.15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분명 처방을 놓고 의약계 간 갈등이 재점화되고 있다.

이번 논란은 지난 10월 20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약사 출신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발생했던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감기약 품절사태를 상기시키며 성분명 처방 도입을 적극 제안한 것에 대해, 역시 같은 약사 출신인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적극 동의한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약계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잊을 만하면 성분명 처방의 도입을 주장해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논리를 들고 나왔다. 성분명 처방을 도입해 의사가 처방한 약을 약사가 임의대로 성분명만 같다면 다른 약으로 변경할 수 있게 한다면 국민의 약제비 부담을 완화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러한 약사회의 주장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상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의사라면 과연 어떤 의사가 단지 성분명이 같다고 환자에게 똑같은 약효가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까?

이는 의사들의 단순한 반대를 위한 주장이 아니다. 실제로 오리지널 약의 100% 약효를 기준으로 복제약이 80%에서 125%까지 생물학적으로 유사하다고 인정되면 생동성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이를 다시 말하면,  무려 20%나 생물학적으로 일치하지 않고 단지 유사한 효과를 내는 약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동성시험의 본질은 인체 내 혈중 약물 농도에 불과한 것이며 복제약끼리만 비교하면 생동성시험을 통과해도 완전히 다른 약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끊임없이 약 성분과 관련해 약화 사고를 겪어 왔다. 당장 최근에 발사르탄, 메트포르민 제제에서 발암물질이 함유된 것으로 드러나 큰 파장이 일었고 지난 2006년에는 제약계의 생물학적 동등성(이하 생동성)시험 자료 조작 파문까지 발생했다. 

심지어 지난 2017년에는 한국 노바티스의 항암제 ‘글리벡’이 불법 리베이트 제공에 따른 행정처분으로 급여정지돼 ‘성분명’이 같은 다른 대체 신약으로 교체하게 하자 환자단체가 직접 나서 “글리벡이 아닌 다른 신약으로 교체될 경우 새로운 부작용이나 돌연변이 유전자 발생으로 인한 내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즉, 성분명 처방이라는 제도 도입에 앞서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우려까지 불식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약 처방은 의사 고유의 영역이다. 그러나 만약에 성분명 처방이 허용되면 의약품의 선택권은 의사에서 약사로 넘어가게 된다. 이는 의사는 환자가 정확히 어떤 약을 복용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처방만 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령이나 성별, 나이, 인종, 체질, 생활습관 등에 따라 환자마다 다른 최적의 치료방법을 제공하는 ‘정밀의료’가 떠오르는 시대다.

이런 지금 시대에 의사가 진단한 결과에 따라 처방한 약이라도 생동성시험을 통과해 '성분명'이 같은 복제약이라면 약사가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작금의 행태는 최첨단을 달리는 미래 의학과 거꾸로 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