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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분원 설립 러시···“연구와 중증진료 외면 우려”
대학병원 분원 설립 러시···“연구와 중증진료 외면 우려”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2.11.09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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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면 수도권에만 6000병상 이상 증가···지역 병의원 경영난 심화 우려
상급종병 관리감독 권한은 복지부에 있지만 분원은 지자체장에 있어 부채질

최근 많은 대학병원들이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도 분원 설립을 가속화하고 있어 지역 중소 병의원의 경영난을 부채질하며 결국엔 국민의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만 늘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일 고려대학교의료원은 경기도 과천시와 남양주시에 오는 2028년 개원을 목표로 안암, 구로, 안산병원을 잇는 4차 병원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애초 고대의료원은 새 병원 건립 후보지로 과천과 남양주 중 한 곳을 택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두 지역 모두 환자 수요가 높다는 판단에 따라 2개 분원을 모두 건립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중앙대광명병원은 700병상 규모로 건립돼 지난 3월부터 이미 진료를 시작했으며 서울대병원은 경기도 시흥시에 800병상 규모의 ‘배곧서울대병원’을 내년 상반기 중 착공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인천에서는 일명 ‘빅5’ 병원 중 2곳이 뛰어들어 분원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송도국제도시에 세브란스병원 분원이 오는 12월 착공할 것이라고 최근 발표한 바 있고, 청라국제도시에는 아산병원이 800병상 규모의 분원을 설립할 예정이다. 인근 김포에는 인천의 인하대병원이 700병상 규모의 분원 설립 계획을 밝힌 바 있고, 배곧서울대병원도 여기서 5킬로미터 내외의 인접 지역이다.

이 외에 경희대의료원이 하남시에, 한양대의료원이 안산시에, 아주대병원이 평택시와 파주시에 분원 설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수도권에만 총 8개 대학병원이 분원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에 분원 설립을 추진 중인 대학병원들
수도권에 분원 설립을 추진 중인 대학병원들

대학병원이 수도권에만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길병원의 경우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성남시·하남시에 걸쳐 형성된 위례신도시에 분원 건립 계획을 갖고 있다. 또 대학병원 분원은 아니지만 서울 금천구에도 부영그룹이 810병상 규모의 금천·우정병원(가칭)을 건립할 계획을 밝히고 이미 기공식까지 마친 상태다. 

이렇게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수도권에만 총 6000병상 이상이 증가하게 된다. 또 기존의 서울에 위치한 대학병원들도 상당수가 증축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최근까지도 대학병원 수도권 분원 설립은 꾸준히 이뤄져 왔다. 지난 2021년 3월에 1000병상 이상의 대규모로 의정부을지대병원이 개원했고, 이 외에 지난 2020년 3월 개원한 용인 동백세브란스병원(705병상), 2019년 개원한 은평성모병원(808병상), 2012년에 개원한 동탄성심병원(800병상) 등도 있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대학병원 유치전의 열기가 뜨겁다. 분원 설립을 추진 중인 경찰병원에 이미 전국의 여러 지자체가 ‘러브콜’을 보내고 있고, 이밖에 충북대병원과 동국대병원, 경상대병원, 충남대병원, 전북대병원 등도 분원 설립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공공의료기관들도 가세해 국립암센터도 분원 설립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국민건강보험공단도 일산병원에 이어 제2보험자병원 확충을 모색한다는 이야기가 잊을만 하면 수시로 나오고 있다.  

사실 상급종합병원은 보건복지부에 관리·감독 권한이 있어 병상수를 늘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분원의 경우 사실상 지자체장에 권한이 있어 병상수 늘리기가 어렵지 않다. 그렇기에 ‘박리다매 진료’로 끝없이 확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병원계와 지역민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대학병원 유치에 사활을 거는 지자체장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상급종합병원의 분원 설립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병원의 무분별한 확장은 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군다나 현재도 의원급의료기관과 중소병원들의 경영난이 가속화돼 폐업하는 의료기관이 속출하고 있는 마당에 대학병원 분원이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설립되면 이로 인해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져 각종 ‘의료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8일 기자와 통화에서 “현재 지방의 대학병원들조차 교통 발달과 서울권 대학병원 선호 현상 등으로 인해 환자 이탈이 점점 심화돼 병원 운영과 교육에 큰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 마당에 대학병원 분원이 앞으로 더 많아지면 이런 부작용이 더 심해져 결국 국민들은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도 의료비 부담은 더욱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대학병원이 이렇게 무분별하게 분원 설립을 가속화하는 것은 결국 외래환자를 더 많이 받아들이겠다는 것과 다름없어 이는 연구와 중증환자 진료에 전념해야 하는 대학병원 본연의 역할과 목적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며 “대개협 내에서도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앞으로 구체적으로 대응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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