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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울시의사회 황규석 부회장의 쉽게 쓰는 건보 이야기(10)
[칼럼] 서울시의사회 황규석 부회장의 쉽게 쓰는 건보 이야기(10)
  • 의사신문
  • 승인 2022.11.0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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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석 서울시의사회 총무·법제부회장(옴므앤팜므 성형외과의원 원장)
‘응급의료체계’의 현황과 개선 방안

※ 우리나라 공보험 제도의 역사는 한 마디로 규제의 강화라는 도전과 자율성을 지키려는 의료계 응전의 역사이다.

얼마 전 너무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고로 156명(2022년 11월 4일 기준)의 젊은이들이 희생됐습니다.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깊은 애도의 마음으로 그분들을 추모하며, 본인이 지난 2년여 동안 매달 강남소방서에서 119 봉사 활동을 하며 체험한 경험과 이번 사고 이후의 과정들을 되돌아보고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의 현황과 개선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역사는 1960년대 이후 국가적으로 별도의 조직을 운영한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보다 20여 년 늦은 1980년대에 비로소 시작됐습니다. 1979년 대한의학협회(의협 전신) 주관으로 야간구급 환자 신고센터 운영을 시작으로, 1989년 대한응급의학회 창립 및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 1996년 제1회 응급의학전문의 자격시험 시행 및 51명의 전문의 배출 등의 역사가 있습니다. 또한, 1990년대 성수대교붕괴(94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95년) 등 다양한 대형 사고를 겪으면서 효율적인 응급의료수행을 위한 조직체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1994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며, 국가 차원의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응급의료체계(EMSS:emergency medical services system)의 구축은 의학적인 측면에서 응급의료를 병원 밖으로 확대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사회보장 및 복지제도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사회안전보장 및 복지정책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응급의료체계는 응급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장소에 따라 크게 ‘병원 전 단계’와 ‘병원 단계’로 구분될 수 있으며, 그 활동단계를 세분화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병원 전 단계 (Pre-hospital phase)>는 1. 환자 발생의 신고와 구급차출동 2.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전화상담원(dispatcher)에 의해 이루어지는 응급처치요령의 지도 3. 구급대(응급구조사, 구급대원)에 의한 현장 응급처치 4. 정보ㆍ통신체계를 이용한 구급차-병원 간의 정보교환으로 이송병원 결정 및 현장에서 병원까지 이송 중에 이루어지는 이송 처치로 이루어집니다. <병원 단계 (In-hospital phase)>는 1. 현장 처치의 검토 및 연속적인 응급처치 2. 진단을 위한 적절한 검사 3. 입원치료(중환자실, 일반병실) 혹은 응급수술 결정 4. 환자의 응급처치에 필수적인 의료진이나 시설, 장비가 준비된 전문응급센터(외상, 화상, 독극물, 심혈관센터 등)나 응급의료기관으로 전원 여부의 결정과 전원병원 결정 등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표1 :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

현재 우리나라의 응급의료기관은 전국의 응급의료 업무를 총괄하는 중앙응급의료센터가 국립의료원에 설치되어 있으며, 36개의 권역 응급의료센터, 외상환자, 화상 환자 및 독극물중독 환자 등에 대한 응급의료를 위한 4개의 전문 응급의료센터, 117개의 지역 응급의료센터, 258개의 지역 응급의료기관이 존재합니다. 또한, 119구급대의 구급활동 중 의료 행위가 필요한 상황 발생 시 16개 광역시도의 소방재난본부에서 근무 중인 의사에 의한 의료지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상적인 응급의료시스템 이외에 대규모 재난 등의 발생 시 의료지원을 위한 ‘재난의료지원팀’(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 : 이하'DMAT')이 구성되어 있으며, 전국 41개 재난거점병원(권역 응급의료센터) 권역 DMAT과 국가 단위의 중앙 DMAT(국립중앙의료원)으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또한 권역 DMAT은 보통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행정 요원의 3~4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재난거점병원에는 해당 권역에서 발생한 다수사상자 사고 시 권역 DMAT이 10분 이내에 출동할 수 있도록 상시 편성하고 있으며, DMAT의 주요 기능은 재난 상황에서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서 빨강, 노랑, 초록색, 검정색 표를 붙여 4단계로 분류하는 ‘트리아지(triage)’에 의해 처치 우선순위를 정하고, 현장에서 꼭 시행해야 하는 응급처치 및 인근 응급의료기관의 실시간 병상 정보를 확인하여 가장 최적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분산 치료하고, 생명이 위급한 중증 환자를 골라 수술과 치료가 가능한 상급병원으로 보내 전체 사망률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표2 : 환자의 중증도에 따른 '트리아지(Triage)' 4단계>

지금부터는 너무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지난 2022년 10월 29일의 이태원의 상황을 중심으로 현재 대한민국 응급의료시스템의 작동 상황을 되돌아보고 개선점을 제안해 보고자 합니다. 사고 당일 이태원의 상황을 시간대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0월 29일 밤 10시 15분 : 서울종합방재센터에 이태원 일대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처음으로 접수됨. 2. 최초 신고 접수 이후 5분 사이에 압사 사고 관련한 수십 건의 신고가 쏟아짐, 구급 차량 4대 출동. 3. 10시 43분 : 심각한 상황으로 판단되어 소방대응 1단계(1개 소방서의 전 소방력으로 대응) 발령으로 용산구 관내 모든 구급차출동. 4. 10시 45분 : 119 구급상황관리센터로 DMAT 출동 요청이 됨. 5. 11시 : 서울대병원 DMAT을 비롯해 한양대병원, 강동경희대병원, 고려대학교병원, 아주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9개 재난거점병원에서 DMAT 출동. 6. 이후 워낙 많은 사상자로 인한 소방대응 2.3단계 확대로 서울 시내의 모든 구급차뿐만 아니라 주변 광역시·도의 모든 구급차까지 동원됨. 10월 30일 오전 2시40분 기준으로 서울·경기 내 모든 119구급대와 14개 재난거점병원 전체 14개 병원에서 총 15개 DMAT이 출동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구급차와 DMAT 팀들이 동시에 출동하다 보니 현장으로 구급차와 의료진의 접근이 어려워 실제로 골든 타임 내에 도착한 구급대와 의료진의 수는 적을 수밖에 없어서, 부득이하게 사고현장 주변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 등의 의료인뿐만이 아니라 CPR이 가능한 일반인들까지도 CPR을 하여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시민들이 환자에게 CPR을 하고 있다. 뉴스1 제공>

그날의 상황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당시 DMAT은 적절한 시간에 출동했고 응급의료체계 가동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한림대 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응급의료체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난 상황에 제대로 대처했다고 내부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적절한 시간에 DMAT이 출동하여 어수선했던 환자 분류와 이송 절차에 대한 정리가 이뤄졌다”라며 “중앙응급의료센터 재난상황실에서도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주변 병원에 환자를 이송할 수 있도록 준비했고, 병원들도 빠르게 대응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참사 직후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향대 서울병원 응급실에 이송된 82명 중 79명은 도착 시 이미 사망한 상태로 실질적 의료적 처치가 필요한 환자는 단지 3명만이 이송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대형 재난 상황에서 환자의 상태에 따른 의료기관 배분 및 이송 등을 결정하는 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사례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응급의학회 등의 전문가 단체에서는 앞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1. DMAT 출동부터 현장 대응까지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 2. 광역 차원의 재난 대응 모의훈련, 3. 국내 현실에 맞는 재난 대응 매뉴얼 제정, 4. 민간의료인 신분인 DMAT에 대한 법적 보장 및 유관 기관과의 업무협조 개선 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가 지난 2년여 동안 매달 강남소방서 119구급대에서 구급 출동 봉사를 하며 체험한 경험과 이번 사고 발생 이후 일련의 상황을 종합하여 볼 때, 향후 테러나, 대형 화재, 지진, 건물 붕괴 등, 새로운 형태의 대형 재난이 발생하였을 경우 빠르고 효과적으로 의료인력을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긴급 의료인력 지원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어서 이 글을 통해서 제안해 보고자 합니다.

현재 서울시에는 약 3만 5천 명의 의사들이 있으며, 25개의 각 구에 골고루 나뉘어서 의료 현장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의사밀도이며, 유사시 의료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의사들이 충분하다는 방증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지역과 상관없이 모든 소방서의 시설은 동일하며, 비록 119구급차에 비치된 약품(구강용 NTG, epinephrine, amiodarone, NSAID, Anti-histamine, lidocaine 및 소독약, 수액 등)의 종류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시설과 장비에 있어서 현재 우리나라 119구급대가 보유하고 있는 의료장비는 거의 작은 응급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최첨단 시설과 장비(분만 세트, 자동 CPR장비, 비디오 후두경, 등)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즉, 대형 재난사고 발생 시 재난 현장에 구급차와 함께 빠른 시간 내에 의사가 현장에 출동할 수만 있다면, 119 구급대원 들과 함께 대부분의 응급처치 및 의료 활동이 가능합니다. 즉, 지금 대한민국의 응급의료 현장은 시설은 최상급이지만, 그것을 운용할 의료인력 및 법적·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DMAT팀 이외에 그 지역에서 언제든지 자발적으로 지원이 가능한 의사들의 인력풀을 확보하여 주기적으로 간단한 훈련과 119구급차의 장비만 숙지하고 있다면, 이태원 사태와 유사한 대형 재난사고 발생 시 소방재난 본부에서 준비된 긴급 연락망을 이용하여 사고 내용과 위치 정보 등을 공지하고 가까운 지역에 있는 의사들이 현장에 출동하여 도착한 119구급차의 장비를 이용한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응급처치로 더 많은 국민의 생명을 살릴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러한 ‘긴급 의료인력 지원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리 의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겠지만, 이번 사고와 같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재난의 현장에서 이러한 ‘긴급 의료인력 지원시스템’은 새로운 국민의 안전판으로서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향후 서울시의사회와 서울시청이 함께 노력하여 언젠가 이러한 ‘긴급 의료인력 지원시스템’이 현실이 되어 단 1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려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이태원 희생자들을 마음속 깊이 애도하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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