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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취미
독서가 취미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2.11.0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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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73)

몇 달 전 배우자상(喪)을 당하신 의료계 원로 선생님 한 분과 저녁 모임에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이 저마다 조의를 표하는데 의외로 당사자는 담담하셨다. 사모님이 신장 질환으로 무려 20여 년 동안 투석 치료를 받으시며 온갖 고생을 다 하셨기에, 이제는 고통 없는 곳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으리란 믿음이 그런 차분한 태도를 가능하게 한 것 같았다. 이후 집 정리를 하시다가 그 선생님은 본인이 젊은 날부터 애정을 가지고 모아 온 우표들이 한쪽 장을 가득 메우고 있음을 아셨고 이참에 그걸 다 정리하기로 마음먹으셨다고 한다.
  
우표수집 이야기를 모처럼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담임 선생님들은 반 아이들에게 얼마나 관심이 많았던지, 매년 학기 초마다 애들 집에 어떤 가전제품이 있는지 체크리스트에 일일이 표시해서 제출하도록 했고, 어디다 쓸 요량인지는 모르지만, 취미와 특기 같은 사적인 정보도 반드시 적어 내도록 했다. 그때 취미란에 ‘우표수집’이라고 적어 내는 소수의 아이들이 내 눈엔 상당히 멋있어 보였다. 집에 TV, 전화기, 냉장고는 물론이고 자가용까지 있다고 으스대는 경박한 녀석들보다, 그렇게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고 써내는 세련된 아이들과 훨씬 더 친구가 되고 싶었다.
  
고민하다가 매번 써내던 나의 취미는 ‘독서’였다. 특기 난의 내용이 달리기, 탁구, 축구 등등 주로 운동 종목으로 걸핏하면 바뀌던 것과 달리, 독서는 나의 일관된 취미였다. 솔직히 그때는 ‘취미’란 게 도대체 뭘 말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가정환경 조사서에 보기로 열거된 취미 중 독서가 앞쪽에 있는 게 눈에 띄었고, 만화책이든 교과서든 내가 뭔가를 자주 읽으니 거짓말은 아니며, 무엇보다 일단 독서가 취미라고 하니까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끄덕 긍정적 반응을 보이시는 게 서류상이나마 독서가 내 취미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게 된 까닭이다.
  
인터넷 사전에는 ‘취미(趣味)’가 ‘인간이 금전이 아닌, 기쁨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이라고 되어 있다. 영어 ‘hobby’의 어원도 아이들이 놀이 삼아 타던 양철이나 나무 모양의 말을 ‘hobby horse’라 지칭했던 것과 연관이 있다니, 최소한 어떤 활동을 취미라 지칭하려면 ‘놀이’나 ‘기쁨’의 요소가 잔뜩 들어 있어야 하는가 보다. 똑같은 활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허탈감이나 분노의 원천이 된다면 아주 권장할 만한 취미는 아닐 것이다.
  
인생의 상당 기간을 우표수집에 바치셨던 그 원로 선생님은 최근에 모았던 우표를 다 내다 팔려고 가격을 알아보다가 충격을 받으셨다고 한다. 수집품 중에는 희귀하고 오래된 것들도 많아서 적어도 ‘앤티크’ 프리미엄은 좀 있을 걸로 기대하셨는데 어디에도 액면가 이상으로 값을 쳐서 사겠다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액면가는 고사하고 대략 그 30% 정도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말에 크게 허탈했다고 하신다. 사모님을 떠나보내신 상실감이 혹시나 우표 때문에 가중되는 게 아닐까 살짝 염려됐다. 
  
얼떨결에 어린 시절부터 ‘독서가 취미’란 걸 스스로 세뇌해 왔기 때문일까. 난 차츰 책방에 가는 게 놀이터에 가는 느낌이 들었고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큰 즐거움을 느끼는 경지에 이르렀다. 잡다하게 온갖 분야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사서 읽으니 적어도 독서라는 취미가 내게 싫증을 느낄 겨를을 주지는 않았다. 독서는 껍데기인 책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중요한 것이고, 내용에 깃든 지혜가, 읽는 행위를 통해 책에서 내 머릿속으로 옮겨올 때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 지혜를 삶에 잘 적용할 수 있다면 그 가치를 어떤 보석에 비하겠는가. 우표처럼 실물의 가치가 아닌 지혜의 가치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법이다.
  
일찌감치 어쭙잖은 ‘독서가(讀書家)’ 행세를 해 온 덕에 예전에 한 의료계 신문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라는 연속기획물에 내 인터뷰 기사가 났던 적이 있다. 독서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책을 몇 권 추천하는 코너였다. 내용은 진솔하고 평범했는데 기자가 큼직한 활자로 이렇게 뽑은 헤드라인이 문제가 됐다. “제가 열심히 사다 나르면, 아내는 열심히 버려요.”
  
책이 책꽂이에 세로로 가지런히 놓이다가 마침내 서가 용량을 초과하면 이곳저곳에 드러눕게 된다. 그중에 낡고 내용이 딱딱해서 다시는 들춰볼 것 같지 않은 책 몇 권을 집에서 치웠을 뿐인데 공개적으로 ‘이해심 없는 와이프’ 혐의를 받게 되었다면서 아내는 한동안 도끼눈을 하고 날 핍박했다. ‘독서가 취미’인 사람이 겪는 유일한 괴로움은 이처럼 넘쳐나는 책의 부피를 어떻게 하면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전자책 구매를 크게 늘린 이유다. 물론 ‘정리하는 법’에 대한 책들도 여러 권 또 샀지만.
  
어쨌든 살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항상 먼저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을 뒤진다. 책 속에서 머릿속으로, 다시 삶의 현장으로 지혜가 차분하게 이동하길 바라면서. 뉴스를 들을 때마다 괴로워 참을 수 없었던 올해 핼러윈 이후도 마찬가지다. 그냥 외면하면서 다 잊고 싶은데, 외국인 시신 4구가 방부처리를 위해 우리 병원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나는 책장에서 소설가 박완서의 수필집 <한 말씀만 하소서>를 다시 꺼내 읽고 또 읽었다. 88 올림픽이 열리던 해 요절한 그의 아들, 그러니까 내 의대 선배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주변에서 ‘세월이 약’이라며 위로하려는 사람들에게 박완서는 외친다. 자신의 고통은 극복되지 않았고 다만 고통과 더불어 살 수 있게 되었을 뿐이라고.
  
“곤궁했을 때 받은 얼마 안 되는 금전적인 도움이나, 우울한 날 말동무해준 친구의 우정도 잊지 않고 오래 기억하는 게 사람의 도리이거늘 어떻게 25년 5개월 동안이나 나를 그렇게 기쁘게 해준 아들을 잊는 게 수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나에게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까닭이 남아 있다면 그 애를 기억하며 그 애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로 인하여 고통받는 일뿐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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