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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도 없는데”···83억 적자 강북공공어린이병원 필요한가?
“환자도 없는데”···83억 적자 강북공공어린이병원 필요한가?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2.10.20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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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타당성도 ‘부적합’ 연간 83억 적자 예상···“어린이재활병원이 더 필요”
인근 소청과들도 환자 없어 적자···“공공병원은 민간병원이 못하는 역할해야”

서울시가 애초 추진 계획을 발표한 ‘강북시립어린이전문병원’ 건립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전문가들은 공공어린이병원 추진 계획 자체가 불필요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다른 기존의 소아청소년과 병의원들도 환자가 부족해 적자 운영을 하고 있는 마당에 이들과 똑같이 일반 어린이 환자 진료를 하는 공공병원이 무슨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가 실시한 사업 타당성 조사에서도 부적합한 것으로 나타나 연간 약 83억 원의 적자가 예상돼 서울시도 사업 추진을 망설이는 것으로 보인다. 

◆고 박원순 시장 시절 추진된 사업 계획···야당서 꾸준히 필요성 제기

앞서 지난 12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서울시가 지난 5월 발표한 ‘공공의료 확충 계획’에 “동북권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을 위해 (전임 시장 시절) 추진된 강북시립어린이전문병원이 제외됐다”고 지적했다. 

강북시립어린이전문병원 건립 계획은 앞서 서울시가 지난 2020년 10월 18일 확정한 ‘강북 어린이전문병원·공공청사 복합개발 추진계획’에 포함된 것으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생전에 추진해 박 전 시장의 유산이라고도 불린다.

앞서 박 전 시장은 지난 2018년 강북구 삼양동에서 한 달간 ‘옥탑방 살이’를 마친 후 ‘동고동락 성과보고회’를 열고 강북 지역에 공공어린이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총 245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현재 북부수도사업소, 북부도로사업소, 강북소방서 등이 들어서 있는 부지인 강북구 번동 365-1번지 일대에 노후화된 공공청사를 철거하고, 어린이병원 및 공공청사를 복합 개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 2019년 6월에 부지선정과 개발구상 용역을 마쳤고, 2020년 8월부터 사업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시는 사업 추진 당시 기대 효과로 어린이 특수질환 및 급성기질환 등에 대한 전문의료시설 확충, 서울시 어린이 전문 진료영역 공백 해소 및 지역격차 해소 등을 들었다. 즉, 서울 동북권에 어린이 환자 수요가 많지만 의료 인프라가 부족해 확충이 시급하기 때문에 새로운 공공어린이병원 건립이 필요하다는 것.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강북시립어린이전문병원 건립 계획을 발표한 이후 현 야당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서울 강북권에 공공어린이병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거듭 제기됐다. 현재 야당 출신 구청장이 재직 중인 강북구는 시립어린이병원건립지원TF팀까지 신설한 상황. 

◆실제로 사업 타당성 ‘부적합’···연간 83억 적자 예상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과연 서울 동북권의 아동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게 맞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서울 동북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들이 환자가 부족해 경영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강북공공어린이병원 건립 부지인 강북구 번동 365-1번지 인근에서 운영 중인 어린이병원과 소아청소년과를 운영 중인 대학병원들
서울시 강북공공어린이병원 건립 부지인 강북구 번동 365-1번지 인근에서 운영 중인 어린이병원과 소아청소년과를 운영 중인 대학병원들

강북공공어린이병원 건립이 추진됐던 번동 부지 인근만 해도 현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과 고려대병원·경희대병원·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등이 운영 중이고 소아청소년과 병원으로서 최초로 보건복지부 전문병원 인증을 받은 어린이전문병원도 운영 중이며 이외에 다수의 의원급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들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이들 의료기관들도 저출산으로 인한 소아청소년 인구 감소로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다가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환자 감소까지 더해져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처럼 소아청소년과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매년 전공의 지원율도 바닥권을 면치 못해하다가 급기야 올해는 28.1%의 역대 최저 지원율을 기록했다. 

현 추세대로라면 강북공공어린이병원이 건립된다고 해도 기존 어린이병원이나 소청과 의원과 진료 기능 면에서 다를 게 없기 때문에 똑같이 환자가 부족해 적자 운영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공공병원의 설립 근거로 자주 언급되는 '착한 적자'와도 거리가 먼 셈이다. 이같은 문제점은 서울시가 실시한 ‘강북공공어린이병원’ 사업 타당성 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20일 기자와 통화에서 “(사업 타당성 조사에서) BC값이 너무 낮게 나와 병원이 건립되면 추후 연간 83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인근에 다른 소아청소년과 병의원들도 환자가 없어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서울시가 어린이병원 건립 추진에 앞서 충분한 수요 검토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심지어는 “그저 표를 위해 추진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현재 번동 일대 부동산들은 이 지역에 공공어린이병원 건립이 예정된 것이 호재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껏 나타내고 있다.

◆의료계, 진짜 필요한 건 ‘공공어린이재활병원’···민간이 못하는 역할해야

의료계는 기존의 의료기관들이 제공하는 똑같은 일반 급성기 질환 진료를 하는 공공병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공공병원은 민간영역에서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을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강북시립어린이병원을 건립한다는 것 자체가 실제 수요와 의료 인프라, 필요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면서 “서울권에 정작 필요한 것은 지금도 이미 넘쳐나는 일반 진료를 하는 어린이병원이 아닌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저출산이 오랫동안 심화돼 아동청소년 인구의 감소로 소아청소년과 환자는 부족한 상황이지만 자폐나 뇌병변 등 꾸준한 재활이 필요한 어린이 환자를 위한 어린이재활병원은 정반대 상황으로 공급이 수요에 턱없이 못 미치는 상황이다. 

특히 정부는 이러한 '어린이 재활 난민' 문제를 해결한다며 지난 2018년부터 공공어린이재활전문병원을 올해까지 10곳 운영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오픈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현재 서울권에서 어린이 재활치료를 하는 곳은 서울특별시어린이병원과 고 김정주 넥슨 회장이 출연해 건립한 넥슨푸르메병원 두 곳뿐이다.

임현택 회장은 “수도권에 어린이 재활치료를 하는 의료기관이 단 두 곳밖에 없어 지금도 여기서 진료를 받으려면 1년 이상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공공병원은 민간병원과 똑같은 역할을 하며 경쟁을 할 게 아니라 이렇게 민간의료영역이 커버하지 못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소아청소년과 관계자 A 씨는 “현재처럼 소아청소년 환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서울시가 뻔히 적자가 예상되고 의료 인력을 구하기조차 어려운 공공어린이병원 건립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할 게 아니라 차라리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민간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들을 지원하거나 당장 필요한 공공 감염병, 노인, 재활, 치매 전문병원 등을 신설하는 게 훨씬 더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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