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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 선동, 그리고 보험사기
일반화, 선동, 그리고 보험사기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2.10.05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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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56)

‘너무 일반화하지 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곧잘 쓰는 말이다. 곧잘 쓰면서도, ‘일반화’라는 말의 뜻은 알 듯 말 듯 하여,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화는 ‘구체적 사례들’에서 공통적 성질을 추출하여(abstracting) ‘보편적 개념’으로 체계화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화된 개념을 통해 인간은 새로 접하는 문제나 상황을 더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비슷한 과거 사례에서 학습한 것을 현재 사례에 적용할 수 있다. 이 ‘일반화’를 통해 인간은 꾸준히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고,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현재의 문명을 건설했다.

무엇이든 효용이 있으면 부작용도 있는 법. 이렇듯 일반화는 강력한 효용이 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인간은 자주 ‘쉽게’ 일반화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이른바 일반화의 오류이다.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부족한 수의 표본을 바탕으로 개념을 도출해 내는 성급한 일반화(hasty generalization)의 오류가 있다.

편향된 표본(biased sample, unrepresentative sample)의 오류 역시 잘 알려져 있다. 표본 선정에 의도가 개입되거나, 대표성 없는 표본군을 선정함으로써 잘못된 개념을 도출하는 것이다. 그 예로 크게는 총선/지선을 위한 당내경선 때마다 불거지는 ‘여론조사 조작’ 뉴스나, 작게는 (필자도 곧잘 하는) ‘내 친구들이 그러는데 말이야~’라는 일반화를 들 수 있다. 이런 편향된 표본의 오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와 함께 가장 흔하게 범하는 일반화의 오류이다.

그런데 편향된 표본에 기초한 일반화를 통해 도출된 잘못된 개념을, 표본군을 선정할 때부터 가졌던 그 의도를 가지고 대중들에게 선전하면, 흔히 말하는 ‘선동’이 된다. 이 경우의 일반화는 객관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는 점에서 ‘유사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2차대전 당시 나치가 유대인들에 대해 ‘돈만 밝힌다’, ‘열등한 인종이다’라고 국민들에게 선전했던 그것은 ‘유사일반화’에 기초한 ‘선동’의 교과서적 사례였다.

최근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는 “보험사기 즉시신고”라는 제목으로 보험사기 신고포상금 제도를 홍보하는 지하철역 내 광고를 곳곳에 게재했다. 금융감독원과 경찰청도 이 광고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거액의 비용을 내고 광고를 주도한 보험업계가 공신력을 덧칠하기 위하여 국가기관의 이름만 빌렸을 것임은 쉽게 예측된다.

보험업계는 이 지하철역 광고가 대한민국 의사들의 공분을 사게 될 것임을 충분히 예측했던 것 같다. 가운을 입은 의사 사진을 광고 한가운데에 넣으면서도, ‘돈가방을 들이밀자 고개를 피하며 거부하는’ ‘외국인처럼 보이는’ 의사를 넣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미미한 노력이 안쓰러울 정도로 이 광고가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너무 명백하다. 먼저 광고에 “문제 병원 집중 신고기간”이라고 버젓이 기재되어 있는데다가, 보험업계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불법 의료행위가 의심되는 문제 병의원을 신고하고 포상금을 받으세요!”라고 더 노골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게다가 보험사기 범죄에 ‘이미’ 가담하고 있는 “브로커”가 제보하면(= 자수하면) 3,000만 원을 포상금으로 주고, “병원관계자” 즉 의료기관 직원이 보험사기를 ‘의심’하여 내부고발로 제보하면 5,000만 원을 포상금으로 준다고 한다. 설마 보험업계가, 보험사기 브로커가 이 광고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개과천선하여 3,000만 원을 포상받기 위해 자수하여 처벌받을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광고가 누구에게 신고를 종용하고 있는지는 더더욱 명백하다.

그러나 이 광고의 가장 큰 문제는, “백내장, 갑상선, 하이푸, 도수치료, 미용·성형 / 보험사기 즉시신고”라는 제목을 시뻘건 배경에 시뻘건 글씨로 대문짝만하게 써놓음으로써, 국민들에게 ‘이 시술들을 하고 있는 수천 개의 의료기관, 수만 명의 의사들은 보험사기 범죄자일지 모르니 의심하라’고 선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업계는 이 시술들을 하고 있는 의료기관들 중 대다수는 보험사기와 전혀 무관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술명 / 보험사기’라는 형식으로, 일반화된 것처럼 오인되도록 제목을 뽑은 것은, 일반화될 수 없는 것을 유사일반화한 후 선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의료계 역시 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할 필요성에,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의료기관들을 단속할 필요성에 당연히 동의한다. 하지만 성실히 진료하고 있는 대다수의 선량한 의료기관에게 피해를 주는 이러한 방법에는 동의할 수 없다. 보험업계가 목적에 매몰되어 이와 같이 심각한 오인을 유발하는 선동을 꺼리지 않는다면, 전체의 이익을 내세워 유사일반화와 선동을 악용한 나치와 다를 것이 없지 않겠는가.

이러한 선동은 의료기관과 의사들에 대해 국민들에게 호도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고, 국민과 의료계 사이의,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에 큰 손상을 주어 상호불신을 조장한다. 그리고 불신의 비용, 즉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법적 절차, 방어진료나 과잉진료 가능성 등은 전국민이 나눠지게 된다. 부작용이 심각하고, 달성조차 불확실한, 보험업계의 이익 때문에 말이다.

새로 개원하여 물정을 잘 모르는 젊은 의사에게 브로커가 찾아와 ‘환자유치’를 가장한 보험사기를 광고계약의 형태로 제안한다는 얘기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포상금 줄 테니 의사를 신고해라’라는 저급한 선동보다는, 먼저 보험상품의 허점과 수익구조를 잘 알고 있는 보험사기 브로커들의 행태를 일반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보험업계의 자정노력을 기대하면서, 동시에 의료계를 겨냥한 부적절한 선동행위의 중단을 강력하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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