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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의사 주3회 당직·36시간 근무···이래도 사명감만 강요?”
“50대 의사 주3회 당직·36시간 근무···이래도 사명감만 강요?”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2.09.07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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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소아암 의사 68명 중 25% 곧 정년···필수의료 논의서 소아암은 철저히 배제
올해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 22.8%···“정말 필수의료 의사는 억울함 호소할 수도 없다”

“50대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지금도 일주일에 3번 당직을 서고 36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상황에서 누가 사명감만으로 버틸 수 있단 말입니까.”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국내 소아암 치료의 현실을 전하며 이같이 호소했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 이후 필수의료 강화 방안이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여기서 중증필수진료의 사각지대인 소아암 환자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제4차 암관리종합계획’를 발표하며 ‘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라는 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소아암 환자들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어디에서 발생해도 치료 걱정을 해야 하는 현실이다. 현재 강원도, 경북 지역엔 소아암 진료의사가 단 한 명도 없다. 충북, 광주, 제주, 울산 지역엔 단 1명으로 입원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며 환자들이 응급실에 오려고 해도 밤새 5~6시간은 운전해서 올라와야 하는 실정이다. 강원도에서도 소아암 치료는 힘들다.

그럼에도 국내 소아암 완치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소아암 진료의사는 현재 전국에 약 68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이 중 25%는 앞으로 5년 내에 정년을 맞는다. 여기에 더해 국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가장 처참한 상황이다. 최근 5년 동안 101%→94.2%→74.1%→38.2%→28.1%로 급격히 떨어져 올해는 최초로 30% 이하를 기록했다. 

필수의료 기피 문제는 하루 이틀 나온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 중 소아청소년과가 가장 최악의 상황이다. 중증도와 난이도가 높은 소아암 치료이지만 선진국 수준의 높은 완치율(80%)에도 불구하고 가장 열악한 인력 인프라를 갖고 있어 이대로 방치한다면 머지않아 ‘대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50대 소아청소년과 의사도 일주일에 3번 당직을 서고 36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상황이다.

김혜리 교수는 “아무리 아이가 줄어도 통계적으로 1000명은 암에 걸린다. 50명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36시간 연속 근무하면서 살 수 있을까. 아무도 이런 근무 환경에서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 이후 각 의학회에서 각자의 입장에서 국내 필수중증의료 현실을 지적하며 어떻게든 참여해 보고자 노력 중이다. 하지만 소아암은 ‘암정책’에도, ‘소아청소년과질환’에도, ‘희귀질환’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이른바 ‘깍두기 신세’다.

김혜리 교수는 “정말 필수중증의료 의사들은 기자 간담회를 하고 보건복지부 담당자를 만날 시간도 여력도 없다는 게 문제”라면서 “소아암 의사들은 정부의 출산장려정책만 나오면 한숨이 나온다. 아픈 아이에 관심도 없으면서 아이만 낳으라고 하면 뭐하나”라고 말했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서 시행한 건강보험공단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서울외 지역 거주자 중 70%가 대부분 서울 및 경기에서 치료받고 치료 기간은 약 2~3년 정도 걸린다.

김혜리 교수는 “그동안 그 가족들은 치료비와 주거비 등 엄청난 경제적 부담에 시달리고, 가족이 붕괴되는 경우도 많이 봐왔다”며 “이게 과연 정부가 말하는 ‘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인가라고 말했다.

김혜리 교수는 “약 20년간 소아암 치료를 하고 있지만 열악한 국내 소아암 치료 현장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개인적으로 언론에) 이메일을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는 지난 6일 “우리나라 소아청소년 암환자들이 거주지에서 치료를 못 받고 있는 현실”이라며 “수도권 전문의 쏠림 현상으로 필수의료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지만 단순히 의사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론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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