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정체 삽입술 ‘안경·콘택트렌즈’ 대체 아냐···보험약관 불명확 시 고객 우선 해석해야
의사가 의학적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백내장 수술을 한 것을, 보험사가 다시 제3의 의료기관에 의뢰해 자문받은 결과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보험회사들의 실손의료보험금 미지급으로 인해 가입자들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사법부가 직접 환자를 진료한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가장 최우선적인 근거로 인정한 것으로서 나날이 증가하는 실손보험사들의 보험급 미지급 행태에 제동이 걸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실손보험소비자권리찾기 시민연대에 따르면 부산지방법원 민사부(판사 김태환)는 지난 18일 H보험회사가 가입자 A씨에 대해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지난 2009년 H보험회사의 실손보험에 가입했고 이후 2020년 11월 ‘기타 노년 백내장’으로 양쪽 눈에 수정체 초음파 유화술 및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술 등의 치료를 받고 발생한 환자본인부담금 총액인 899만5450원의 보험금을 지급해 달라고 보험사에 청구했다.
그러나 H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세극등 현미경 검사를 통해 수정체가 혼탁하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아 백내장 질환을 갖고 있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H보험회사는 A씨의 세극등 현미경 검사 사진을 제3의 의료기관인 다른 대학병원 등에 보내 “백내장이 없거나 백내장 진행 정도가 초기”라는 자문을 받은 것을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다.
H보험회사는 또 A씨가 백내장 수술 전부터 착용하던 다초점안경을 대체하기 위해 다초점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는 의료비용의 경우 면책 대상이 되어 보험금 지급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A씨는 안과 전문의의 진단에 따라 백내장 수술을 진행했으며, 백내장 수술인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술이 ‘안경, 콘택트렌즈’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면책사유에 해당하지 않고 보험사가 면책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설명하지도 않았다고 맞섰다.
결국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가장 정확한 검사는 담당 의사가 세극등 현미경을 통해 육안으로 백내장을 확인하는 것”이라면서 H보험회사가 보험급 미지급 근거로 내세운 세극등 현미경 검사의 촬영 결과에 대해선 “조명의 각도, 촬영 각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H보험회사가 보험급 미지급 근거로 내세운 촬영 결과만으론 백내장 질환 여부를 단정하기는 어렵고 대신 누구보다 환자를 직접 진료한 담당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최우선적으로 존중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 H보험회사가 A씨의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수술비용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서도 “보험 약관의 내용이 불명확한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다초점 인공수정체 내지 그 삽입술이 ‘안경, 콘택트렌즈’의 대체비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H보험회사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아 청구를 기각했다.
현재 백내장 수술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의료행위에 대해 실손 보험사들이 보험계약에 따라 가입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백내장의 경우에도 실손보험사들은 피보험자에게 제3의 의료기관 자문 동의를 받게 한 뒤 대학병원 등에 세극등 현미경 검사 결과 사진으로 백내장 유무, 백내장 진행 정도에 대한 자문을 구해 이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정경인 실손보험 소비자권리찾기 시민연대 대표는 “이번 법원의 판결을 매우 환영한다”며 “이후 진행되는 실손보험금 부지급 소송 건도 환자 승소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 시민연대를 통해 실손보험금 미지급 피해자 800여 명이 보험회사를 상대로 공동소송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