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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과 삭발
이발과 삭발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2.08.23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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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68)

이발(理髮)은 머리를 다듬고 정리하는 일을 말한다. 이런 일을 하는 곳은 이발소지만, 대학생인 우리 아들을 포함하여 요즘의 젊은 남성 중에는 거기 단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이 태반이라 이발소가 대체 뭘 하는 곳인지도 잘 모른다. 이발소가 줄어든 이유로 흔히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남성들 사이에 장발 문화가 퍼지면서 남자 머리를 다듬는 수요가 대거 미용실로 몰렸다는 것이고, 둘째는 궁지에 몰린 일부 이발소가 자구책처럼 성(性)을 상품화했기에 그저 머리를 깎기 위해 이발소에 들어가는 선량한 남성들조차 종종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느꼈기 때문이다.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975년 약 3만 개의 이발소가 2014년 2만 개가량으로 줄었다고 한다. 같은 기간 미용실은 만육천여 개에서 무려 10만 개 이상으로 6배가 증가했다.
  
홍대입구 근처 산울림 소극장에서 신촌 로터리 쪽으로 주택가 뒷길을 통해 가다가 옛 경의선 철길과 만나는 지점에는 예전에 철도 건널목이 있었다. 한 번씩 차단기가 내려오면서 땡땡 소리가 요란했기에 사람들은 그 일대를 ‘땡땡 거리’라고 불렀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물론이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난 그곳에 있던 오래된 이발소에 줄곧 다니면서 사장님이신 이발사 할아버지에게 머리 손질을 맡겼다. ‘땡땡 거리 이발소’는 그래서 내 학창 시절의 온갖 추억을 자동으로 재생시키는, 주문(呪文) 같은 상호다. 혁대같이 생긴 가죽에 쓱쓱 문질러 날을 세우던 면도칼, 포마드라 불리던 머릿기름의 비릿한 내음, 머리 감길 때 대야 대신 쓰이던 파란색 물뿌리개. 그리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하는 푸시킨의 시가 적힌 액자까지,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그 시절의 풍경은 신기하게도 화질 좋은 사진처럼 세세하고 선명하다.
  
학교의 원시적인 두발 단속을 피해 가기 위해, 혹은 청결하지 못하다 질책하시는 아버지 호통에 못 이겨 억지로 이발소에 갔던 적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발을 마치고 나올 때의 기분은 늘 상쾌했다. 머리만 다듬은 게 아니라 정신상태까지도 새롭게 다듬은 느낌이었다. 좀 언짢은 일이 있어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을’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았다. 고객 입장에서는 수북이 쌓인 여성 잡지들을 리뷰하며 연예계 소식을 따라잡는 미용실이 다소 세속적이라면, 오로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말없이 직시하거나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잠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이발소는 어쩌면 생활 속 정신수양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반면, 흐트러진 머리를 정갈하게 다듬는 이발과 달리, 아예 머리털을 남김없이 박박 밀어버리는 삭발(削髮)은 단순히 자기 성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강력한 의지와 결심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흔히 사용된다. 두발 단속에 걸린 학생들의 옆머리를 학생주임이 ‘바리깡’으로 가차 없이 밀어버리는 비인격적 징벌을 가하는 남학교들이 과거에 꽤 있었다. 그때 용기 있는 일부 학생들은 일명 ‘배코치기’라 부르는 삭발을 하고 나타남으로써 그 징벌의 부당함을 드러내고, 분노를 표시하려 하지 않았는가. 대개 이들에겐 학교에 반항한다는 죄목이 하나 더 씌워져 추가로 몇 대 더 얻어맞았지만 말이다.
  
유교적 전통이 강해 머리카락 또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귀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삭발은 그 상징성이 제법 크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 정치권과 노동계 등등 갈등과 분쟁의 현장에서는 자신들의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고자 할 때 삭발을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 의료계 역시 다르지 않아 임기 중에 무려 네 차례나 삭발했던 의사협회 회장도 있었다. 삭발하는 분들의 결연한 태도와 절박한 심정을 폄훼할 뜻은 없으나, 속세와 단절하는 의미로 일평생 머리를 미는 종교인들의 그것과 달리, 단순히 주의를 끌기 위한 이벤트성 삭발에는 피로감을 보이는 국민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발 혹은 삭발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머리와 마음을 단정하게 정리하거나 격정적인 주장을 하기 위한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풍성했던 머리털이 어느 시점부터 별안간 듬성듬성 빠지다가 마침내 걷잡을 수 없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갈 때, 육신의 부서짐 뿐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영혼의 무너짐을 경험하는 이들 또한 어쩔 수 없이 이발, 아니 삭발을 택한다. 바로 우리 병원 같은 곳에 입원하고 있는 암 환자분들이다.
  
내 사촌 여동생은 몇 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에 이어 항암주사까지 맞게 되었는데, 1차 항암치료 후 2주 만에 급격히 머리가 빠졌다.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밀게 된 여동생에게 그의 어머니, 곧 나의 작은 어머니는 눈물을 애써 참으시며 이렇게 말을 건네셨다. “아드님으로 변신하셨네요. 언제 입대 하시나요?”
  
슬픔을 기어이 웃음으로 승화시키려는 모녀의 대화가 오히려 가슴을 아리게 한다. 몇 차례 항암치료가 이어졌을 때 어머니는 딸에게 “아직도 입대 안 하셨네요?”하고 물었고 딸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 너무 박박 깎았다고 조금 길러서 오라 하네요.”
  
여동생은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삭발하기 훨씬 전에 이미 자신의 머리를 상당 부분 잘라내어 소아암 어린이들을 위한 가발 재료로 기부했다. ‘어린 암 환자들을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을 펼치는 곳, 약칭 ‘어머나 운동본부’란 곳을 통해서다. 그곳과 제휴된 가발공장이 바로 우리 병원 소재지인 노원구에 있다. 최소 기부 단위는 25센티미터 이상의 머리카락 30가닥이다. 소아용 가발 하나 제작하는 데 만오천에서 이만 가닥의 머리카락이 들어간다고 하니 가발 하나 만들려면 30가닥씩 기부하는 사람 약 500명이 필요하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왔던 이발 혹은 삭발의 의미는 그렇게 병원에서 매일 마주치는 암 환자들로 인해 뜻이 확대되었다. 단순한 기분전환이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을 넘어, 머리를 자르고 미는 그들의 의식(儀式)에는 삶을 향한 간절한 기도가 깃들어 있다. 오늘 툭툭 떨어져 나간 머리카락이, 어느 날 다시 건강하게 솟아나리라는 부활의 꿈을 끝내 놓지 않는다면, 비록 슬프지만 동시에 희망을 오롯이 머금는 의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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