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의학문인회 수필릴레이 8] 코로나와 콜레라, 그리고 동학운동
[의학문인회 수필릴레이 8] 코로나와 콜레라, 그리고 동학운동
  • 의사신문
  • 승인 2022.08.09 10:09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한수 원장(분당21세기내과의원·순환기내과 전문의)

코로나19가 대유행한 지 어느덧 2년이 넘었다. 그래도 최근 확진자가 줄어들고 있고, 한바탕 정점을 지나가고 있는 듯해서 다행이다. 온갖 항생제와 치료제가 개발되어 있고, 유전자 치료 등 첨단치료가 발달하여 있는 21세기에 뜬금없는 전염병이라니. 그동안 코로나는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내몰았다. 근 2년 동안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날 때면 서울의 거리는 한산했고, 사람들은 서로 만나는 걸 두려워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1800년대 조선에서 사람들이 극도로 두려워했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원인 모르게 열나고 갑자기 말라가며, 온몸이 까맣게 변해가면서 죽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은 원인이 콜레라균에 의한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유를 모르는 때의 공포감은 훨씬 더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내 형제, 가족, 옆집 친지들에게 일어나는 걸 볼 때, 그 충격과 공포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당시 그것은 ‘괴질(怪疾), 호열자(虎列刺)’라고 불렸고,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았다. 확진자 수십만이 아니라 사망자가 수십만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왕조, 정부 관리들은 아무런 역할을 못 했다. 공부 많이 한 유학자들은 책 읽을 줄만 알았지 실생활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되었다. 세계의 중심이라 여겼을 만한 중국이 서양 세력에 맥없이 무너졌다는 소문도 들렸다. 사람들은 '아, 이 세상이 이제 망해가는구나‘라는 절망적 느낌을 진하게 받았을 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도탄에 빠진 민중의 마음을 얻기 시작한 움직임이 있었다. 바로 ‘동학운동’이다.

“가련하다. 가련하다. 우리나라 운수 가련하다. 온 세상 괴질 운수 다시 개벽 아니겠는가!” 수운 최제우는 이렇게 말했다. 

수운의 동학운동은 이런 ‘절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수운의 뒤를 이은 동학의 해월 최시형은 괴질의 유행 경로를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침을 아무 데나 뱉지 말며, 코를 멀리 풀지 말라. 코나 침이 땅에 떨어졌거든 닦아 없애라. 먹던 밥을 새 밥에 섞지 말고 먹던 국을 새 국에 섞지 말라. (…) 이리하면 연달아 감염되지 않을 것이다” ‘실제적인 가르침’이다. 

여기에 어디 교리나 형이상학적 내용이 있는가? 해월의 위생학적 통찰은 동학교도들을 콜레라로부터 지켜주었고, 동학에 들어가면 괴질에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처음에 동학의 진리가 무엇인지, 교리가 무언지 관심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저 주변에서 옆에서 괴질에 걸려 죽어갈 때, 누가 ‘동학’이란 게 있는데, 거기가면 병에 걸리지 않더라고 가르쳐줬을 것이다. 그러다가 새로운 세상, 사람이 주인이 되는 평등한 세상에 관해 들었을 것이다. 동학의 교리는 나중이다. 나는 그것이 동학의 시작이라 생각된다. 동학은 실생활과 거리가 먼 형이상학적인 저세상이나 이론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不知明之所在 遠不求而修我(밝음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거든, 먼 데서 구할 생각을 하지 말고 내 몸을 닦아라.)
                                          『동경대전 2권』 팔절(289쪽)

나는 동경대전의 ‘팔절’에 나온 이 말을 읽으면서 동학은 무척 실제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학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저 멀리 있는 관념적 저세상에 대한 추구가 아니다. 당시는 암울한 세상이다. 저주받은 세상, 말세라 생각되었을 것이다. 세상은 어둡고 밝음이 없었다. 그런데 암울하고 뭐가 뭔지 모를 때, 무엇을 해야 할까? 동학은 먼 데서 구할 생각 말라는 것이다. 먼저 손을 씻고, 네 몸을 닦으라는 거다.

지난 몇 주간 나는 바쁘게 지냈다. 바쁨은 나중에 보면, 사실 바쁜 이유가 있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뭔가 바쁘다면 밝음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박자를 잃어버릴 때 일상은 어그러진다. 엊그제 나는 내 책상 위에 무척 잡다한 것들이 너무 많음을 발견했다. 마시던 컵이 놓여 있고, 메모지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컴퓨터 모니터에 포스트잇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내게 밝음이 없을 때, 내 책상은 꼭 지저분해진다.

바빠서 책상 정리할 시간이 없었나? 아니다.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빴을 것이다. 정리되지 않은 책상은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기력을 빼앗아 간다. 내 마음이 불안정하고 마음이 붕 떠 있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 내 마음을 잡기 위해서 거창한 지혜나 논리, 이론적 사고는 필요 없다. 결심도 불필요하다. 

이럴 때 그냥 책상 정리를 시작하는 거다. 그것이 동학이 가르쳐주는 지혜다. 밝음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거든, 먼 데서 구할 생각을 하지 말고 네 몸을 닦아라. 코로나로 어수선하고, 나라가 어지럽고 정치가 어둡다고 느껴질 때 나는 손을 씻고, 몸을 닦고, 책상을 정리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언덕 2022-08-10 11:01:52
<의사신문> 에서 동학이야기를 들으니 또 새롭습니다. 건강지키기의 지혜를 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