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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예의 없는 상황
매우 예의 없는 상황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2.08.09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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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54)

2015년 개봉한 영화 ‘킹스 맨’을 아실 것이다. 폭력적이고 오락성 강한 이 영화는 제작비 5배의 흥행수익을 올려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이 영화가 유명해진 것은 무엇보다도 영화 초입에 해리 하트가 양아치들에게 날리는 멋진 대사 때문일 것이다.
  
“‘예의가 사람을 만든다.’ 무슨 뜻인지 아나? 그럼, 내가 너희들에게 약간 알려주지.(‘Manners Maketh Man.’ Do you know what that means? Then, let me teach you a lesson.)”
  
‘매우 예의 없는 상황’에서 물리적 일갈을 날리기 전에 읊조렸던 이 촌철살인의 경구는 이후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며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이는 영화 대본 작가의 창작이 아니다. 이것은 14세기 영국의 신학자, 정치가 겸 교육자인 ‘위컴의 윌리엄’이 한 말로, 영국에서는 그가 세운 명문 사립고등학교인 윈체스터 칼리지의 표어로 더 유명하다. 워낙 유명한 표현이어서, 전설적 가수 Sting이 1987년 발표한 곡인 ‘Englishman In New York’이라는 노래의 가사에 그대로 인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예의가 사람을 만든다’는 경구가 학교의 표어가 되었을까? 당연히 학생들이 예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춥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이 지상명제였던 게르만족들에게, 세상은 선악의 결전장이었고, 인간은 친구와 적(“friend or foe”) 두 종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5세기 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문명 세계로 대거 이주하여 지배층이 된 후에도,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고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가장 익숙한 방식인 폭력을 사용했다. 심지어 사법적 정의 역시, 판단이 어려우면 원고와 피고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 결투를 시켜 확인했다. 강한 자가 선한 자가 되는, 이러한 폭력에 의한 지배는 이후 천 년 동안 중세 유럽에서 지속되었다.
  
일촉즉발의 폭력적 균형이 일반화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상대방의 위험성이나 적의를 미리 감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무기가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서로 팔뚝을 잡아보는 행동은 이후 ‘악수’가 되었고, 술에 독을 타지 않았음을 확인하기 위해 서로의 술을 나눠 섞는 행동은 이후 ‘건배’가 되었으며, 기사들이 투구를 벗어 싸울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던 행동은 이후 ‘모자를 벗어드는 인사’가 되었다.
  
중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생리현상(예를 들어, 방귀, 트림, 가래 등)을 드러내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 진행된 ‘문명화’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생리현상을 드러내거나 성욕, 식욕 등 본능과 관련된 언급을 하는 것을 차츰 피하게 된다. 이에 더해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 1/3이 사망하여 ‘사람값’이 올라가고, 근대국가가 성립하면서 지방 영주들이 궁중 귀족으로 흡수되고, 부르주아 계층이 관료가 되면서, 17세기 들어서야 왕족과 귀족/관료들 사이의 점잖은 행동 패턴이 ‘궁중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정립되었다. 이를 부유층이 학습하면서 비로소 ‘젠틀맨’이 탄생했고, 평민층에게 보편화되면서 비로소 유럽식 ‘예의’가 탄생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 인식하고 따르고 있는 예의는, 최근 100년간 이식받은 유럽식 예의와 과거 1,000년 이상 지켜오던 전통적 예의가 혼합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예의의 근원을 설명하거나 개념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판단하기에 ‘예의 없는 상황’은 피하려고 하지만 말이다.
  
지난 5월부터 심평원은 ‘환자경험평가’ 3차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환자경험평가는 2017년 도입되어 이후 2018년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대한 1차평가가, 2020년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 대한 2차평가가 진행되었는데, 이번에는 전체 종합병원에 대한 3차평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위 평가는 과거에도 논란이 많았고, 의료계는 지속적으로 평가 문항 내용의 객관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 내용이 어떻길래 객관성에 대한 지적이 있는 것일까? 이런 문항들을 보자. “담당 의사가 귀하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대했습니까?”, “귀하의 질환에 대해 위로와 공감을 받았습니까?”, “검사나 치료 과정에서 신체 노출 등 수치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받았습니까?”
  
‘예의’, ‘존중’, ‘배려’는 불명확한 개념이고, ‘위로’, ‘공감’은 감정적 개념이기에,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한 질문으로는 유의미한 객관적 답변을 얻을 수 없다. 게다가 검사나 치료 과정에서 신체 노출을 줄이는 등 ‘배려’하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고, 검사나 치료에 필요하여 불가피하게 신체를 노출해야 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오롯이 의사의 전문적 판단 영역이다. 그럼에도 이를 의료기관 평가의 지표로 삼겠다는 것이다.
  
심평원이 추진하는 ‘환자 중심성 평가’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평가는 기본적으로 객관화가 가능한 지표를 기준으로 해야 하며, 무엇보다 ‘환자 중심성’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환자가 좋은 ‘서빙’을 받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진료’를 받는 것이 되어야 함에는 이론이 있을 수가 없다. 심평원이 평가하려는 대상은 의료기관이지 호텔이 아니다.
  
예의는 필요하고 좋은 것이지만 당연히 요구될 만한 상황에서 요구되어야 하고, 나아가 그 본질상 강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간의 코로나 사태까지 더해져 하루하루를 외줄 타기 같이 경영하고 있는 의료기관들을, ‘예의’, ‘위로’, ‘공감’을 갖추었냐고 태평스럽게 평가하는 것은, 의료기관들에 대한 ‘매우 예의 없는 상황’에 다름 아니다.
  
신뢰는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 대한 ‘존중’, ‘배려’에서부터 싹튼다. 심평원이 의료계의 지적을 받아들여, 다음 평가부터는 ‘예의’ 없는 평가로 개선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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