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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환자 생활
슬기로운 환자 생활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2.08.0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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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67)

‘전립선(前立腺)’은 원래부터 그 명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어명인 ‘prostate’가 ‘앞쪽’을 뜻하는 ‘pro’에, ‘서다’를 뜻하는 ‘state’가 합쳐진 말이라고 해서 한자 번역을 그리 한 것 같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대개 뒷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을 때가 많으니 이 명칭에는 ‘보호자(protector 혹은 guardian)’란 뜻도 들어있다고 한다. 왠지 유흥업소의 사설 경비원들, 곧 일본말로 ‘기도’라 불리는 허세에 찌든 아저씨 느낌이랄까. 도대체 뭘 보호한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바로 붙어있는 장기가 방광이기에 그걸 보호한다고 하면 앞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아래쪽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형상이니 ‘전립선’보다 ‘하좌선(下坐腺)’ 정도로 부르는 게 더 정확한 표현 아닌가. 아무튼 지금 내가 공연히 이름을 트집 잡으며 불편한 심사를 드러내는 까닭은 근래에 전립선으로 인해 적잖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트러블슈팅(troubleshooting)’이 병원장의 주 업무라 할 만큼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골치 아픈 일들을 수습하느라 유난히 기진맥진했던 한 주(週)였다. 그리고 토요일에 장모님의 팔순을 기념한 모처럼의 가족 모임이 있었다.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신경이 꽤 쓰였던지 집에 돌아와서는 순식간에 곯아떨어졌다. 그러다 이튿날인 일요일 아침 혼자 사시는 어머님의 전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새벽부터 심한 복통에 시달리셨다기에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전형적인 맹장염(appendicitis) 증세를 보이고 계셨다. 부랴부랴 가까운 대학병원에 모시고 갔고 거기서 응급수술을 받으셔야 했다. 한숨 돌리고 집에 왔는데 갑자기 심한 오한과 근육통이 생기더니 열까지 나기 시작했다. 이어 밤새 잠을 못 잘 정도로 끔찍한 배뇨 통증이 밀려왔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다음날 출근 즉시 우리 비뇨의학과 과장과 면담을 했다. 열이 나면서 치솟은 혈중 호중구와 CRP, 그리고 PSA 수치를 본 그는 단박에 ‘급성 전립선염’이란 진단을 내렸다. 세균 감염이 의심되며 신속하게 항생제를 주사하지 않으면 자칫 패혈증에 빠질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얘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원해야 했다. 참기 어려운 배뇨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빨리 소변줄(Foley 카테터)을 꽂아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졸지에 환자 신세가 된 내게는 항생제와 수액 주사 외에도 절대 안정과 무조건 휴식이라는 주치의의 경고성 처방이 함께 떨어졌다. 충분히 쉬지 않으면 이 병은 자꾸 재발할 거라고 비뇨의학과 과장은 엄포를 놓았다. 그리하여 나는 나중에 열이 떨어지고 혈중 염증 수치들이 좋아질 때까지 8일간을 꼼짝없이 병실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간호간병통합병동의 1인실이었으니 따로 간병하는 이가 있을 수도 없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했던가. 며칠 사이에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이 당황스러웠으나 곧 이참에 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나의 입원은 금세 병원에 소문이 났고 보고나 결재가 급하다며 서류를 병실까지 들고 오는 직원들이 생겼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직원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문병 삼아 병실을 찾아 주었다. 그런데 이미 병명까지 다 알려졌는지 너도나도 전립선에 좋다면서 토마토 주스를 들고 왔고 심지어 꿀에 버무린 마늘까지 가져다주는 분도 있었다. 고마우면서 한편으론 좀 민망하기도 했다. 어쨌든 적어도 낮 시간의 휴식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아내가 잠깐 다녀가는 초저녁의 정식 병문안 시간 이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보람있게 보낼 수 있을지 궁리했다. 먼저 인턴 선생과 간호사를 포함하여 우리 의료진들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아침 채혈이 예정된 날은 가장 쉽게 채혈할 수 있는 부위를 찾아놓았고 새로 정맥주사를 해야 할 때면 미리미리 쌩쌩한 혈관을 펜으로 표시해 두었다. 바이탈 체크하는 시간에 맞춰 얌전히 침대에 누워있었고, 섭취량, 배설량도 매번 정확히 계량해 두었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 병실의 긴 긴 밤 시간은 쉬 지나가지 않았고 나는 다른 할 일을 찾아야 했다.
  
항생제 주사를 계속 맞아야 했기에 내 팔에는 정맥주사가 달려 있었고 소변줄도 치렁거렸다. 그로 인해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상의를 갈아입는 일이 특히 힘들었는데 마치 한쪽 팔이 주사 줄로 인해 5미터쯤 늘어난 상황이라 팔을 넣고 빼는 데에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됐다. 이런 입원이 처음이었던 내게 그 경험은 평소 일상적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던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입원하기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크게 감사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그때부터 작성해보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로 매일 샤워하기, 식당에 가서 먹고 싶은 음식 자유롭게 주문하기, 커피 한 잔과 함께 동료들과 잡담 나누기 등등. 아, 이 모두가 엄청난 감사의 조건이 아니었던가.
  
뭐니 뭐니 해도 홀로 있는 시간을 가장 빛나게 해준 건 한밤중에 병상에서 하게 된 독서였다. 수액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것만 같은 고요한 시간, 나는 수년 전에 책으로 인상 깊게 읽었고 나중에 스마트폰에 소중하게 갈무리해두었던 폴 칼라니티의 자전적 에세이 <숨결이 바람 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를 꺼내서 읽고 또 읽었다. 뛰어난 신경외과 의사였던 저자가 서른여섯 살에 폐암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자기 삶의 의미를 써 내려간 책. 나의 질병, 병실, 그리고 밤이란 조건은 그것만으로도 삶을 돌아보게 하지만, 거기에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 공기가 언젠가 나보다 앞서 이 땅에 살아갔던 누군가의 호흡이었음을 일깨워주는 칼라니티의 책은 ‘슬기로운 환자 생활’, 아니 ‘슬기로운 인생’의 지침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의사가 말기 환자가 되었을 때 스스로 깨달은 바를 그는 이렇게 담담히 전한다. 그리고 전립선 염증 환자인 의사도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기 전에 그에게서 배운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 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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