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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의사 수 부족’ 아닌 ‘저수가’ 때문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의사 수 부족’ 아닌 ‘저수가’ 때문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2.08.03 0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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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간협 주장에 “고난도 수술 수가 낮아 만성적 인력 부족이 원인”
충분히 예견된 일···“응급 체계 비롯 국내 의료 전반 문제로 인해 발생한 비극”
서울아산병원 전경
서울아산병원 전경

서울아산병원 소속 간호사가 근무하던 도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수술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간호협회가 “국내 의사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밝히자 문제의 핵심을 잘못 파악했다는 지적이 다수 제기됐다.

앞서 지난달 31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 서울아산병원 근무자라는 작성자는 “간호사 A씨가 지난 24일 새벽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져 본원 응급실에 옮겨졌지만 수술인력이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가 결국엔 사망했다”며 “국내 최고이며 세계 50위 안에 든다고 자랑하는 병원이 직원의 안전조차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후 이 사건은 사실로 밝혀졌다. 평소 아산병원에는 뇌출혈 수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 전문의가 2명 근무하고 있었는데, 사건 발생 당시엔 이 2명의 전문의 중 1명은 해외 학회에 참석 중이었고 또다른 1명은 지방 출장 중이어서 다른 의료진들이 A씨에 대한 응급 처치를 시도하다가 불가피하게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알려지자 서울아산병원 근무자들과 다른 커뮤니티 가입자들의 불만을 토로하는 글들도 다수 작성됐다. 그러면서 “의사가 쓰러졌으면 어떻게든 수술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일각에선 이 사건이 의사와 간호사 직역 갈등 문제로까지 비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대한간호협회는 2일 간호사 A씨에 대해 추모의 뜻을 밝히며 “이번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나라 의사 부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일깨워 준 예견된 중대한 사건”이라며 “철저한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우선 대한민국 최대 의료기관에서 뇌출혈 응급 수술이 가능한 의료진이 단 한 명도 없는 공백이 발생했던 것이 문제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산병원 역시 그동안 국내 최고 수준의 응급의료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홍보해 왔기 때문이다. 또 아산병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뇌졸중 적정성 평가에서도 최우수 등급인 1등급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은 당시 상황과 국내 의료 환경의 문제점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뇌출혈이 발생하면 사망이나 마비·언어와 의식 장애 등의 후유증을 막기 위해서 가능한 한 최대한 빨리 ‘골든타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골든타임’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다르다. 

특히 뇌혈관 수술은 고난도 수술이지만 정부에서 책정한 건강보험 수가가 너무 낮아 의사 입장에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어 지원 인력이 적어서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뇌혈관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신경외과 전문의를 병원 입장에서 큰 손실을 감당하면서까지 24시간 배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로 아산병원뿐만 아니라 다른 대형병원들도 신경외과 의사는 많이 근무하고 있어도 신경외과의 세부 전공인 뇌혈관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대부분 1명이거나 많아야 2명인 게 현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사건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는 지적이다. 국내 응급체계의 문제를 넘어 국내 의료체계 전반의 문제로 인해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국내 최대 의료기관인 서울아산병원이라도 이런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 뇌출혈의 경우 대부분 응급상황으로 장거리에서 전원할 경우 예후가 좋지 않고 빠르고 적절한 이송과 치료가 중요하기 때문에 지방에서 발생한 환자도 대부분 그 지역의 지방병원에서 치료하고 있다. 즉, 아무리 아산병원같은 대형병원이라도 뇌출혈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의사는 그 지역의 수요에 맞춰서 둘 수 있을 뿐 암 수술 의사처럼 많이 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의 원인에 대해 간호협회가 제기한 “국내 의사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결국엔 문제의 핵심을 잘못 파악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의료계 관계자 B씨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필수 진료과의 수가가 원가조차 보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낮아 소위 ‘빅5’라고 하는 대형병원들조차 손실을 감수할 수 없어 필요한 의사 인력을 충분히 채용할 수 없는 현실인데, 전체 의사 정원을 늘린다고 어떻게 병원들의 필수 진료과 의사 채용 인력까지 늘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간호사 사망 사건을 두고 “의사가 쓰러졌다면 병원이 어떻게든 수술을 감행했을 것”이라는 일각의 추측에 대해서도 지나친 억측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 C씨는 “병원에 뇌출혈을 수술할 신경외과 전문의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정황상 간호사가 아닌 의사가 쓰러졌다고 즉시 수술을 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의사를 포함한 일반 직원들만을 위한 특별한 원내 의료 시스템을 병원 측이 일반 환자들과 분리해 따로 마련해 놓을 수도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사건 발생 당시 색전술을 비롯해 다양한 응급 치료를 시도했지만 환자의 뇌출혈 부위가 너무 커 호전되기 어려웠고 뇌혈관 수술 의사도 부재 중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다른 병원으로 전원할 수밖에 없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앞으로 원내 응급시스템을 재점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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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ㅇ 2022-08-03 21:15:51
다른 공대정원은 아무렇지 않게 늘리는데 의대정원은 왜 늘리면 안된다는거냐? 가령 무식하게 의사정원2배로 늘리면 경쟁이 심화되서 기피과가서라도 먹고 살거나 지방으로도 내려가게되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