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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문인회 수필릴레이 7] 환갑인생일면통찰 
[의학문인회 수필릴레이 7] 환갑인생일면통찰 
  • 의사신문
  • 승인 2022.07.2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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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우 원장(서울 관악구 모세마취통증의학과의원)

방금 잠깐 커피 잔을 들며 내 인생의 근본 에너지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인생길의 그 무엇이 환갑이 넘은 나를 지금 이 존재에 이르게 하였는가 두들겨보았다고나 할까요. 열세 살 중학생 때에 번호 적힌 구슬 빼기로 추첨을 해서 읍내로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느 토요일, 교복에 모자까지 쓰고 중학교에서 새로 사귄 앞뒤 친구들과 강가로 붕어 낚시를 갔더랬죠. 

나는 늘 해오듯 외갓집 뒤뜰에서 잘라 만든 대나무 낚싯대를 준비했습니다. 낭창낭창 대나무 끝에 낚싯줄을 매고 찌를 달아서 물에 던질 참이었죠. 그런데 읍내 출신의 그 두 친구는 길쭉한 가방 같은 것을 들고 오더니 그 안에서 길이를 줄였다 늘였다 하는 플라스틱 낚싯대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잉 저런 낚싯대가 있었나? 문화충격!! 붕어가 물어뜯을 지렁이만 같고 다른 것은 다 달랐습니다. 

순간 나는 이 읍내 출신 아이들과의 엄청난 수준 차이를 통감하였고 굳게 잡고 있던 나의 대나무 낚싯대가 부끄러워졌고 그것을 물속에 던져버리고 싶은 기분이 되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가진 그 무엇, 나에게 깊이 익숙한 그 무엇인가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일순 못나고 당혹하게 만들어 버리는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작은 시작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열등감, 왠지 긴장되고 위축되는 마음. 부끄러움. 이러이러한 좀체 말로서 다 형용하기 어려운 마음의 뭉텡이들이 나의 청춘기를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못생겼음. 코는 낮고 눈은 작고 주근깨가 여기저기. 신장은 짜리 몽땅 팔다리 힘도 약함. 고함소리도 제대로 못 내어 목소리가 겨우 눌려져 나옴. 으 청춘이 민망하군. 이게 뭐꼬?

그런데 그때에 나를 앞산 너머 하늘까지 솟게 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정@, 이웃 여중학교 동급인데 읍내서 예쁘기로 소문난(그때는 몰랐음) 애가 대보름날 우리 집에 살짝 와서 내 방의 창문을 두드려 주었던 것이었지요. 성장기조차 늦게 와서 여자애의 창 두들김이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암튼 그 순간 아 내가 이래 뵈어도 보통 인물이 아닌가보다 확신이 생겼고 자신만만 혈구가 돌기 시작했지요. 

이후 객지에서의 고등학교 생활의 신기함, 선생님들 보면서 기성사회 동경, 뭔가 고상한 차원이 지식세계가 있을 것 같은 대학에 대해서 호기심 충만…. 

그러다보니 고향의 부모님을 뒤쳐졌다 생각하고 형제들도 구차하게 느껴졌고 죽마고우들과는 서먹하게 되면서 거의 관계 포기 상태로 새벽에 남보다 두 시간 먼저 일어나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를 외우며 인생 로켓트 처럼 솟아올라 보고자 이기심 백 배 장착하고 노력했네요.

이후 서울에 대학을 오고 그리고 그리고 어언 40년 세월….

이제 흰머리 대머리 눈가주름 환갑 노인이 되었는데 지금 이 순간 어허 어릴 적에는 결단코 생각지 못했던 장소에 덜렁 혼자 앉아 있네요.

저는 제가 서울에 살 줄 몰랐습니다. 도회지 출신 여성이랑 결혼할 줄도 몰랐습니다. 저는 제가 한국사회에서 부유층(?)으로 평가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실제로는 부유층에 들 만한 재산상태가 아닐 가능성 아주 높음). 

저는 유튜브도 하고(아주 엉터리 같고), 책도 펴내기도 했습니다. 

참, 한 가지 일생의 가장 큰 변화는 대학시절 친구가 권해준 성경책을 읽고 창조신이 있다는 강력한 서양식 기록을 통해 나의 실존을 요리조리 다 따져보고 갑자기 원효 대사가 그리워 팔만대장경까지 띄엄띄엄 읽고 그러고도 열 두 번 더 생각해 본 후 최종적으로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기독인이 되고자 결단하였던 사건이네요. 이후 40년을 집안 최초 기독교인이 되어 별 소리를 다 들으며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커피 한 잔 들고서 이렇게 놀랍니다. 세월이 짧다더니 환갑 인생이 세계 역사 못지않게 파란만장이네요. 

이 땅에 나만큼 인생의 굽이굽이 변화가 격렬했던 사람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있기는 있겠지요. 우야노 문득 중학교 때 그 @정@ 이가 보고 싶네요. 찰떡같이 잘 살고 있어야 할 낀데, 우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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