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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문인회 수필릴레이 6] 대장내시경을 하며 배운 삶의 지혜
[의학문인회 수필릴레이 6] 대장내시경을 하며 배운 삶의 지혜
  • 의사신문
  • 승인 2022.07.1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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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식 원장(서울 구로 정내과의원)

몇 일전 진료실에 책들이 정리가 덜되어 있는 것 같아, 업무 종료 후 시간을 내서 책을 분류하고 정리를 시작하였습니다. 책을 정리하다 보니, 우연히 대장내시경 삽입법에 대한 책이 손에 잡혔는데, 내시경 수련을 받던 시절 많이 봤던 책이어서 반가운 마음에 책을 펼쳤습니다. 

오랜만에 열어보니, 책에 있는 내용들이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보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지금 보니, 더욱 더 마음에 와 닿아, 빨리 정리를 하고 집에 가겠다는 처음의 다짐을 잊어버리고, 진료실에 앉아 오랜만에 책을 정독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책을 재밌게 읽어가는 과정 중 갑자기 메모지가 책에서 툭 떨어져서 보니, 그것은 대장내시경을 가르쳐 주시던 교수님께서 대장내시경 삽입 시 유의해야 하는 가르침을 적어 둔 글이었습니다. 

그 때는 무엇이라도 더 배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르침을 적어 두었던 것 같은데, 지금 그 글을 읽어보니, 꼭 대장내시경에만 국한되는 내용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한번 생각해 볼만한 교훈도 되는 것 같아 이 지면을 통해 그 가르침과 제가 생각한 점을 여러 선생님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적어 놓은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3가지였습니다.

첫째, 대장내시경을 할 때,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당황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저는 대장내시경을 처음 시작할 때, 대장이 직선화된 고속도로 터널처럼 앞으로 쭉 펼쳐져 있을 것이라 상상하고 내시경을 앞으로만 밀어 넣으면 될 것 같다 생각하고 내시경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내시경을 실제로 해보니, 장이 구불구불 굴곡되어 있어, 앞이 금방 안보이게 되고, 힘들게 굴곡된 부분을 넘어가도 또 장이 굴곡된 부분이 나와, 전진하기 어려워 쉽게 성공할 것만 같던 대장내시경이 잘 되지 않음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당황하던 저에게 대장내시경은 운전에 비유한다면, 직선화된 고속도로를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조심스럽게 돌면서 가는 것에 가깝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수님은 대장내시경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답답한 상황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상황이며, 그 굴곡을 직선화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대부분의 대장내시경의 과정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내시경을 봤는데, 앞쪽의 대장입구가 잘 보이는 상황에서는 내시경을 앞으로 삽입만 하게 되어, 내시경이 꼬이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오히려 앞이 너무 잘 보이는 경우 더 유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어리고 경력도 짧지만, 제가 생각해보니, 우리 인생에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에 처음 입학 했을 때, 저에게는 장밋빛 미래만이 펼쳐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의대 생활, 전공의 생활, 전임의 생활, 현재의 병원 근무 생활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도 분명히 있었지만, 늘 저의 장밋빛 상상보다는 더 혹독했던 도전과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시간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도전과 고민하던 시간이 없었다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합니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여러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으며,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부족함을 생각하게 되고 새로운 도전에 겸허한 마음으로 대하는 용기를 배운 것이 아닌 가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저에게 의사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늘 새로운 도전이 분명히 있을 것을 생각합니다. 도전과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기 보다는, 도전과 어려움을 통해 제 인생을 완성해 가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대장내시경을 밀어 넣어서 안될 때는 과감하게 뒤로 후퇴시키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대장내시경 삽입을 일견 생각하면, 내시경을 앞으로만 계속 앞쪽으로 밀어 넣으면 성공할 것 같은데, 계속 내시경을 전진만 시켜서는 실제로는 삽입에 성공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대장은 골반과 복강내에 구불구불하게 들어가 있어 굴곡이 심한데, 대장내시경을 계속 밀어 넣게만 되면, 내시경이 굴곡이 심한 곳에서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오히려 뒤쪽의 장내에서 동글동글하게 말리거나 꼬이는 내시경 루프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시경을 전진시키면, 오히려 내시경이 뒤로 후퇴하게 되는 역설적인 경험을 하게 되고 환자는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이 때 무리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밀어 넣게 되면, 최악의 경우 장이 천공이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면,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내시경을 뒤로 적절히 후퇴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뒤로 내시경이 빠지면서, 부드러운 대장이 내시경의 움직임에 따라 매듭이 풀리듯이 움직여, 꼬였던 장이 직선화됩니다. 운전에 비유한다면, 구불구불한 산길을 공사를 통해 직선화된 도로로 바꾸는 것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내시경을 배울 때는 초심자들은 이와 같은 원리를 알면서도 실제로 시행하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초심자들은 내시경을 갖은 고생을 해서 어느 부분까지 접근시켰는데, 그것을 뒤로 후퇴시키는 행동이 지금까지 한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 같이 느껴져 자신의 노력이 아까워서 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내시경에 숙련된 고수일수록, 지금까지 고생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삽입이 되지 않으면, 내시경을 뒤로 빼면서, 직선화를 하려 노력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표현하면 적절한 것 같습니다. 매우 짧은 경력이지만, 이 가르침이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로 살아오면서, 수련병원에서 근무 할 때도, 현재 개원가에서 근무할 때도 지금까지 늘 발전을 위해서는 전진만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은 불도저처럼 밀어 붙이는 열정과 노력은 발전을 위해 필요하지만, 무조건 성공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무 지나치게 밀어 붙이는 것은 종종 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태도로는 당면한 문제를 내 의도와 다르게 더 복잡하게 만들거나, 불편한 인간관계를 더욱더 경직되게 만드는 경험을 종종하게 됩니다. 예기치 않은 어려움과 갈등이 생길 때, 힘으로 혹은 권위적인 자세로 억지로 밀어붙이기 보다는 유연하게 잠시 뒤로 물러서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여유와 인간관계에서도 내 입장만 관철할 것이 아니라, 반대되는 의견도 경청하고 배려할 수 있는 지혜가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셋째, 내시경을 조금 안다 싶을 때 (잘한다 싶을 때) 제일 어려운 증례가 온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내시경이 서툰 저에게 교수님은 분명히 너는 잘할 수 있으니 마음에 여유를 가지라는 격려를 해 주시며, 오히려 나중에 내시경에 익숙하게 되었을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교수님은 약 20년 이상을 내시경을 한 본인도 지금도 너무 어려워 고민하는 증례들을 경험한다고 말씀하시며, 늘 환자 앞에서 실력을 과신하지 말고 늘 신중하고 겸손한 자세로 내시경을 시행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내시경을 배우고 2~3년이 지난 상황에서 자신의 실력을 자만하다 내시경 합병증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면서, 늘 겸손하라고 반복하여 조언하셨습니다. 조언을 들을 당시에는 내시경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어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지만, 오늘 다시 교수님 말씀을 생각하니 정말로 따뜻한 스승님의 가르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장내시경을 하며 내시경이 원만하게 잘되어 이 정도 하면 내가 잘하는 것 같다 라는 자만심을 가질 때, 여지없이, 삽입이 어려워 식은땀 흘리며 고생하는 어려운 증례를 만나게 됩니다. 인생에서도 인생 뭐 별거 있냐 이렇게 대충 살면 되지 안이하게 생각한 순간, 생각지도 않은 문제들 (코로나 감염사태 같은)이 꼭 우리 인생 앞에 오는 것을 생각합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다는 성경말씀 (잠언 11장 2절)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살아가며 늘 겸손하게 살아가야하는 자세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상이 제가 최근에 찾은 메모에 적힌 과거 교수님의 주신 3개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지난 만 2년간 코로나 감염 사태로 많은 선배, 동료, 후배 의사 선생님들께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운전에 비유한다면, 어두운 밤에 울퉁불퉁한 비포장 시골길을 혼자서 내비게이션 없이 가고 있는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현재는 방역이 완화되어 가고 있지만(2022년 4월말), 또 언제 다른 문제가 생길 지 불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선후배 의사들이 힘든 시간을 힘을 합쳐 같이 걸었던 것, 각자의 자리에서 코로나 극복을 위해 한 노력을 하였던 시간들은 절대 돈으로 살수 없는 소중한 지식과 경험을 주었다는 점도 생각해봅니다. 분명히 우리 앞에는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점을 생각하고, 그 도전을 극복하며 우리 삶이 더 의미 있게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어려움이 왔을 때 조금 여유를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또 한 늘 진지한 자세로 직장과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우리 안에 가득하길 오늘 저는 기도해봅니다. 내시경과 삶의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께 십 수 년이 지난 오늘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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