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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치료 경험 의사 72%, “비대면 진료 도입 반대”
재택치료 경험 의사 72%, “비대면 진료 도입 반대”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2.07.08 0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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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소청과·이비인후과·가정의학과醫 설문조사 결과 발표
지난해보다 인식 나빠져… 10명 중 9명은 ‘오진 위험’ 우려
“취약계층 대상 제한적 범위내에서 시범사업 통한 검증 필요”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시행 중인 비대면 진료(전화상담 및 처방)에 참여했던 의사 10명 중 7명은 ‘비대면 진료 도입에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결과 오진의 위험성은 물론, 의료전달체계 붕괴 등 문제점과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의료계를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 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있는 과정에서 이번 설문조사 결과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대한내과의사회·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등 4개과 의사회는 7일 각 의사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대면진료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14~28일까지 진행된 설문조사에는 4개과 의사회 회원 2588명이 참여했다. 

조사 결과 전화상담이나 처방에 참여했던 의사들의 72%가 비대면 진료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지난해 10월 대한내과의사회 회원 1079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조사 당시 응답자 60%가 원격의료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것과 비교하면 비대면 재택치료에 대한 인식이 더 나빠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먼저 한시적으로 허용된 전화상담에 참여했던 응답자는 1881명으로 72.7%였고, 전화상담 후 처방전까지 발행한 비율은 82.8%에 달했다. 하지만 대면 진료와 비교해 ‘충분한 진료가 이뤄졌다’고 생각한 응답자는 7.9%에 그쳤다. 

응답자 중에서는 비대면 진료에 대해 ‘감염병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54.4%로 가장 많았다. ‘진료의 기본 개념이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절대 안 된다’는 의견도 18%에 달했다. 

비대면 진료 시 우려되는 점으로는 94%에 달하는 응답자가 환자를 충분히 진찰하지 못해 발생할 수 있는 ‘오진의 위험’이라고 답했다. 비대면 진료 전문의원의 출현(69%), 원격의료 관련 플랫폼의 난립(66%),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59%)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이 같은 부정적인 의견은 지난해 설문조사 결과보다 모두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비대면 진료가 도입될 경우 허용 가능한 진료 범위에 대해선 ‘코로나19와 같은 감염질환이 범유행을 하는 국가 위기 상황에 한시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77.9%였다. 

다음으로 ‘도서벽지와 같은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62.4%, ‘장애인이나 거동 불편자에 대해서만 해야 한다’는 응답도 51% 나왔다. 이는 비대면 진료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기보다는 한시적이고 지극히 제한적인 범위로 국한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특히, 90% 이상의 응답자는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지난해 설문조사에서는 ‘초진, 재진과 상관없이 처방전 발행이 가능해야 한다’는 의견이 70%에 달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50%로 줄었다. 4개과 의사회는 “비대면 진료가 대면 진료에 비해 충분한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회원들이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비대면 진료의 주체를 1차 의료기관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90% 이상으로 나왔다. ‘(비대면 진료가) 제한 없이 이뤄져도 된다’는 의견은 7.8% 뿐이었다. 이는 비대면 진료의 주체를 제한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의료전달체계 붕괴에 대한 우려가 드러난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의료 서비스 관련 시장의 급속 성장과 함께 일부 플랫폼 업체들이 하고 있는 비대면 진료 및 건강상담과 의약품 배송에 대해서는 87.5%에 달하는 응답자가 부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그 중 79%는 플랫폼과 연계된 전문의료기관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우려했다. 

‘플랫폼 간의 경쟁이 심화됨으로써 환자의 건강보다는 회사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의견도 77%나 나왔다. 응답자 70%는 ‘산업계의 주장대로 초진 환자까지 비대면 진료의 대상에 포함된다면 불충분한 진찰, 의료쇼핑, 약물 남용 등으로 국민건강에 커다란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정부와 대한약사회가 구축하려는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에 대해선 응답자 57%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모바일 기기를 통한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의 도입에 대해서는 66%의 응답자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응답자들은 △국민의 편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대체 조제가 더욱 활성화되고 복약지도가 부실해져 국민건강에 해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분명 처방, 만성질환자에 대한 처방전 리필(재사용)로 이어져 의사와 약사 간의 상호 직역 존중을 전제로 한 의약분업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소지가 높다고 내다봤다.  

비대면 진료 관련 입법이 현실화됐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응답자는 9%밖에 되지 않았고, 21%는 ‘현재의 대면 진료만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향후 우리나라에서의 비대면 진료 전망에 대해서도 응답자 42%는 의료취약지 등의 특수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시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 접근성을 고려했을 때 원격의료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의견도 26%나 됐다. 

4개과 의사회는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비대면 진료는 오진의 위험, 의료영리화, 의료전달체계의 붕괴 등 지금까지의 의료산업구조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의료의 개념과 가치를 바꿀 수 있는 문제”라며 비대면 진료 도입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직까지 비대면 진료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를 도입할 경우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같이 의료인프라가 잘 갖춰진 경우 전면적인 도입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의료취약지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제한적 범위 내에서 시범사업을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만약 도입하게 되더라도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을 막기 위해 인증된 1차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재진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정된 지역과 제한된 인원 안에서 진료가 이뤄져야 한다”며 “국민 건강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비대면 의료 서비스 플랫폼과 수익만 추구하는 일부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보건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비대면 진료를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델타와 오미크론을 겪으면서 비대면 진료를 받다 사망한 케이스가 상당히 있었다”며 “두 돌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비대면 진료를 받다 병원으로 이송 중 119에서 사망한 케이스가 있었는데, 대면진료를 했다면 사망하지 않았을 아이”라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같은 증상이라도 진단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만큼, 제한된 정보로 의사가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며 “예측이 가능했던 오미크론도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는데, 예측이 불가능한 문제에 대해 폭넓게 적용해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국민 건강을 우선시 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찬호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장도 “원격진료가 왜 필요한지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기존 진료에 대한 보완인지, 대체인지를 알아야 한다”며 “코로나 때 전화진료는 ‘보완’ 진료의 개념이었지만, 성공적으로 전화진료를 했더라도 급하게 도입해야 하는 것에 대해선 생각해 볼 문제”라고 언급했다. 

그는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진료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이 없다”며 “플랫폼 업체들이 의료시장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의사와 환자 관계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료는 환자와 의사와의 만남으로, 만나지 않고 환자 상태를 파악하기는 어렵다”며 “비대면 진료는 실수를 할 수 있는 구멍들이 너무 많고,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도입하면 국민 건강에 큰 위해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태경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장은 “코로나19 위급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가 중요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비대면 진료에 참여한 의사 회원 중 70%가 비대면 진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비대면 진료의 위험성을 느꼈다는 것”이라며 현재 비대면 진료 도입 논의가 너무 급하게 흘러가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박근태 대한내과의사회장도 “지난 의협 대의원총회에서 비대면 진료를 논의하자는 안이 통과됐는데, 이것이 마치 원격의료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며 “우리는 원칙적으로 비대면 진료에 대해 반대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박 회장은 “우리 4개 진료과 의사회는 다른 진료과보다 비대면 진료를 가장 많이 한 경험을 갖고 있다. 4개 진료과와 협의 없이 (도입 논의가) 진행돼서는 안된다”며 “의협·정부와 의견 조율을 함께 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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