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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보복범죄 ‘무방비’···안전관리료 신설·특가법으로 가중처벌해야
응급실 보복범죄 ‘무방비’···안전관리료 신설·특가법으로 가중처벌해야
  • 조은 기자
  • 승인 2022.07.01 1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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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외래진료실 환자안전관리료, 특가법 규정”
“반의사불벌죄 폐지, 의사 적대적 풍조 개선”
보복성 폭력행위 방지대책 긴급토론회서 논의

응급실 흉기 난동, 방화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의료계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1일 ‘법조·의료인력에 대한 보복성 폭력행위 방지대책 긴급토론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응급실과 외래진료실에도 환자안전관리료를 제정하고, 의료인 폭행에 특가법을 규정하는 등 새로운 입법적 해결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술에 취한 60대 남성이 자기 아내를 먼저 치료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닥과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경기 용인시 응급실에서 70대 남성이 진료에 불만을 품고 낫으로 의사 뒷덜미를 베는 등 환자 생명 최전선인 응급실이 위태하다.

의사들은 진료 장소나 시간 등 모든 정보가 공개된 채로 환자를 맞이한다. 누구나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고, 밀폐된 진료실에서 환자가 돌변해도 방어할 도리가 없는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다. 권역·지역센터는 보안인력 1명 이상이 24시간 상주하지만, 지역 소규모병원은 응급실 외 의료기관 보안업무 겸임이 가능해 안전에 특히 취약하다. 

대한병원장협의회 이성필 기획이사는 “가장 문제는 의료기관 내 폭행은 환자 생명까지도 위협한다는 것”이라며 “경찰 출동 전 1차 대처를 위해 최소한의 보안인력이 필요한데 현재 시행되고 있는 환자안전관리료는 입원환자와 수술실 환자에만 있을 뿐 응급실과 외래진료실에는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있는 환자안전관리료도 폭행에 대한 예방관리가 아닌 낙상, 욕창예방 등 일반환자 관리 내용을 포함해 입원환자 일인당 의료기관의 종별에 따라 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환자안전관리료 지급기준은 환자안전위원회, 환자안전담인력 배치, 입원환자 병문안 관리규정, 보안관리기준(비상경보장치, 보안전담인력 1인 이상 배치) 등이다.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100~200병상 미만 병원, 200병상 이상 병원 또는 정신병원이 지급기준을 충족하면 안전관리료가 지급된다. 환자당 1일수가는 상급종합병원 1980원,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2260원, 500병상 미만 종합병원 2690원, 200병상 이상 병원 3300원, 100~200병상 미만 1240원이며 요양병원은 1520원이다. 

현재 기준에 따르면 100병상 병원이 응급실을 운영하면서 한 달간 병실이 만실이더라도 입원환자안전관리료는 372만원(1240원*30일*100병상)에 그친다. 이 비용으로 보안전담인력을 한 명 배치하면 휴일도 없이 24시간 1년 내내 병원에 근무하면서 응급실, 외래진료실 및 병동에서 발생할 폭력행위에 대처해야 한다.

반면 1000병상을 가진 상급종합병원은 1980원씩 1000병상이니 한 달에 5940만원이 지급된다. 결국 지역 일차의료를 담당하면서 응급실을 운영하는 중소병원 응급실과 대학병원 응급실의 대처인력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이성필 기획이사는 진단했다. 

이 기획이사는 “최근 살인미수와 방화 사건 모두 대형병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대형병원도 폭력행위를 막지 못했는데 같은 사건이 중소도시의 중소병원에서 벌어졌다면 결과는 더 참담했을 것”이라며 “지역응급의료기관의 공공성을 고려해 입원환자 안전관리료와 별도로 응급실 및 외래환자에 대한 안전관리료가 신설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고 진료 중인 의료인 가해행위 처벌 조항을 ‘특가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전성훈 법제이사는 “‘의료인에 대한 폭행·협박은 반드시 처벌되고 특별 처벌되는 중범죄’라는 메시지를 사회에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의료법에 규정된 ‘폭행·협박에 대한 반의사불벌 조항’을 삭제하고, 진료 중인 의료인에 대한 가해행위 처벌조항을 특가법으로 이전·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언론보도된 응급실 습격 사건에서 ‘의사가 뭘 했는지부터 확인하라’는 비상식적인 댓글에 수백 개의 좋아요와 수십 개의 싫어요가 있었다. 의료인을 적대하는 사회 풍조나 폭행을 경미하게 인식하는 분위기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통계학에서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수십 번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이처럼 의료인에 대한 공격적인 의사표시를 사회가 용인하면 폭행·협박과 같은 경범죄가 발생하고, 결국 살인·살인미수·방화와 같은 중범죄로까지 이어지면서 사회 기강이 무너질 것이라고 전 변호사는 설명했다. 

한편 이같은 문제를 형사 처벌보다는 사회적 위기대응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경기대 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최근 발생한 일련의 난동 사건이 의료계에 대항하는 행위로 귀결될 수도 있지만, 해외에서 보이는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들과도 관련이 있다”며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소수 돌발위험 대상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해외 사례 속 가해자들은 대개 전과가 누적돼있고, 박해망상과 반사회적 성향이 있다. 이들은 이미 법 테두리를 내 집 넘나들 듯 넘고 있어, 반의사불벌죄 폐지와 같은 가중처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닐 수 있다”며 “잠재적 위험군 분석과 위기대응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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