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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의사 흉기 피습에 ‘방화’까지···의료계 ‘패닉’
응급실 의사 흉기 피습에 ‘방화’까지···의료계 ‘패닉’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2.06.28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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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경악과 분노”···가해자 엄벌·재발방지 대책 촉구
“응급실 폭력 대응 겉치레 불과···국민 생명·안전 보장하라”
소아청소년과醫, “생명·안전 위협 의도 분명한 흉악범죄”
응급의학과醫, “의료진 안전 보호는 국가 책임···폭력 예방 집중해야”

부산에서 술에 취한 60대 남성이 진료 절차에 불만을 품고 응급실에서 불을 질러 환자와 의료진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의료계가 가해자에 대한 엄벌과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지난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응급실은 응급상황으로 이송된 환자가 치료를 받는 공익적 장소이자 병원의 가장 위급한 공간으로, 응급실 내에서 고의적인 방화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이 같이 밝혔다.

앞서 지난 24일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에서는 술에 취한 60대 남성 A씨가 해당 병원 응급실에서 방화를 시도해 응급실 환자와 의료진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응급실 환자의 보호자였던 A씨는 정상적인 진료 절차에 불만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A씨는 불을 지르기 3시간께 전에 ‘부인을 빨리 치료하라’며 고성을 지르고, 의료진이 치료를 위해 부인의 팔을 묶자 이를 풀어주라며 난동을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A씨 부부는 모두 술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소란을 피우자 의료진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A씨 부부를 떼어놓은 뒤 A씨를 귀가시켰지만, 이후 A씨는 휘발유 등을 가져와 응급실에 불을 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A씨의 방화 시도로 응급실 환자 18명과 의료진 29명 등 모두 47명이 건물 밖으로 긴급 대피했고, 응급실 운영도 11시간가량 차질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를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의료계는 최근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한 환자의 보호자가 흉기로 의사의 목을 베는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대형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 같은 사건까지 벌어지자 더욱 큰 충격에 빠졌다.

의협은 “응급실은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산소공급장치 등이 있어 폭발과 인화의 가능성이 지극히 높은 시설”이라며 “통상 급성기 병원의 1층에 위치해 대형 재난에 매우 취약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응급실을 비롯한 진료현장에서의 폭력행위는 응급환자 등의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응급의료종사자를 비롯한 의료진이 상해를 입을 경우 2차적으로 다른 응급환자가 응급처치를 받을 수 없는 심각한 응급의료 중단으로 이어져 결국 응급실 등이 마비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협은 지난 2019년 응급실에서 응급의료종사자를 폭행해 상해나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지만, 실질적인 범죄 예방에는 효과가 없는 만큼 응급실에서의 범죄를 억제하기 위한 사회 구조적인 지원과 실효적인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응급의료현장에서의 폭행이 전혀 근절되지 않고 오히려 폭력 정도가 더욱 심해지는 이유는 응급실에서의 폭행 등에 대한 대응 방식이 겉치레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가중처벌을 의식한 경찰이 오히려 피의자를 전면 외면하는 문제가 개선돼야 할 뿐만 아니라, 의료기관 내에서 진료 중인 의료인에게 폭행·협박을 범한 가해자에 대한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 등이 적극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게 의협의 판단이다.

의협은 “중앙정부는 법원에서 안전을 위해 경비인력을 배치하고 있는 것과 같이, 가장 높은 사회적 공익성을 띈 응급실 내의 응급의료종사자는 물론 환자와 보호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시설·보안 인력 배치와 관련한 지원책을 즉각 마련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회장 임현택)도 같은 날 보도자료를 통해 A씨의 범행에 대해 “흉악무도하며 정말 죄질이 나쁜 범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사회는 “A씨는 금방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수많은 환자가 있는 응급실에서 방화를 저질렀다. 지극히 이기적인 수준을 넘어, 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다른 환자나 의료진의 생명과 안전에도 큰 위협을 주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하다”며 “범인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할 필요가 있는 정말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 행위”라고 꼬집었다. 

또한 “수사당국은 환자 생명을 구하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공간인 병원에서 다수의 인명과 재산을 앗아갈 수있는 가장 흉악한 범죄인 방화를 저지른 흉악범에 대해 재판부가 법률이 정한 최고의 벌을 줄 수 있도록 철저히 수사해 엄벌해 달라”고 촉구했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도 앞서 지난 25일 “응급의료진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 분명하다”며 “관계당국의 철저한 조사,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이 사건의 본질은 단지 방화시도가 미수에 그쳐서 다행인 것이 아니라 음주 상태에서 응급실에 방문한 자체도 잘못”이라며 “이미 방화 시도 전부터 응급실을 마비시키고 폭력과 폭언을 행사하는 음주환자와 보호자가 아무런 격리나 제재조치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심각한 2차 폭력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의사회에 따르면, 수많은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이번 사건과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번 사건이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지금도 전국의 응급실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회는 “관리나 제한 받지 않는 응급실의 출입, 음주난동을 피워도 치료를 해줘야 하는 응급실과 결국 초기 난동을 효과적으로 제압하지 못한 점, 그 상황이 되도록 경찰이 출동하지 않고 결국은 병원 직원들이 불을 끄게 된 점들은 상황을 보지않아도 응급의학 의사라면 눈앞에 그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의사회는 “응급실의 폭력 자체를 근본적으로 모두 없애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만큼, 예방 가능한 폭력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고 정부에 호소했다.  

이들은 △관계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책임 있는 사과 △현재 응급실 현장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폭력상황에 대한 현황조사 △재발 방지와 대책 마련을 위한 전문가 자문과 협의체 구성 △공권력의 적극적 투입과 초기 현장 개입으로 난동자의 빠른 격리 조치 △폭력 피해자에 대한 구제 대책과 보상 방안 마련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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