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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문인회 수필 릴레이 4] 코로나 인연으로 만난 소중한 사람들
[의학문인회 수필 릴레이 4] 코로나 인연으로 만난 소중한 사람들
  • 의사신문
  • 승인 2022.06.2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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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남 원장(금천 조윤희산부인과의원·금천구의사회 고문)

“24년 전이 생각나네요.”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려고 병원을 방문한 남성이 툭 던진 말이다. 내게 할 말이 있나싶어 예진과 접종 후 대기석에서 15분 동안 안정을 취하게 한 후 남성을 불러서 물었다.

“아까 그 말씀은 무슨 말이지요?”

24년 전, 그 남성의 부인은 네 번째 임신을 하자 당시 최악의 경제상황 때문에 아기를 지우려고 우리 병원을 방문했다고 한다.

진찰 후 크게 한숨을 쉬며 “어떡하죠? 남편이 지우라는데요….” 하는 속사정을 들으니 딱하기는 했지만 며칠 전, 생명의 싹을 잘라버리고 후회의 속눈물을 뚝뚝 흘리던 어떤 환자를 보았던 내 귀에는 청천벽력 떨어지는 소리같이 들렸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소중합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가진 아기인데, 낳는 것이 좋겠네요. 다시는 자녀를 가지기 힘들지도 몰라요. 이번에는 원하시는 아들일지 어떻게 알아요. 또 딸이면 어때요. 형제가 많으면 서로 도울 수도 있고 좋지 않겠어요?”

부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저도 하나 더 낳고 싶긴 한데…. 또 딸일까 봐서요.” 걱정하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럼 잘 됐어요. 뱃속의 아기는 엄마 몸 안에 있기 때문에, 낳으려는 의지만 있으면 아무도 말리지 못해요. ‘나는 낳겠어요’ 하고 절대로 낙태할 생각하지 마세요.” 하며 돌려보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1주일 후 부인은 남편이 보내서 다시 왔노라며 중절을 요청했지만, 나는 다시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그랬더니 남편이 직접 병원에 와서 “아니 당신이 의술이 있는데, 돈 주겠다는데, 왜 수술을 안 해 주는 거야!”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소리 지르던 일이 동시에 생각나는 것이 아닌가?

‘아, 그 분이었구나’하고 대화를 계속했다.

당시 남성은 부인에게 “당신이 수술을 안 하고 그대로 있으면 내가 안 돌아올거야”하면서 집을 나갔고, 장모님이 찾아와서 조심스럽게 “여보게, 아들이면 낳고 딸이면 수술하는 것은 어떻겠나” 했지만 “제가 아들 딸 가려서 그런 게 아니라 이 상황에서 셋 이상은 절대 기를 수가 없습니다.” 하면서 장모님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후에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 결국 아기를 낳았는데 부부가 꿈에도 기다리던 옥동자를 얻었고 지금 네 아이는 모두 순조롭게 자랐다고 한다. 첫째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 둘째는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둘째가 일본 관광을 시켜준다고 부부를 초대했는데 관광버스에서 일일이 통역을 해줘서 매우 기뻤을 뿐 아니라 일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 신혼부부에게 설명해주는 것을 보고 너무나 흐뭇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셋째는 이제 결혼 준비 중이고 넷째인 대망의 아드님은 대학교 1년을 마치고 군대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결혼이 늦어 늦게 아이들을 낳고 아직 첫째도 결혼을 못 시킨 친구들은 자기를 부러워한다고 하면서 자기는 복 많은 사람이고 아직 직장도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래서 24년 후인 지금 일부러 우리 병원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을 받으려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부인에게 초음파검사도 슬쩍 무료로 해주고, 늘 격려해 주었던 기억이 났다.

코로나백신 덕분에 우리 병원을 24년 만에 다시 찾은 남성과 24년 전 추억을 나누면서 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미묘한 즐거움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을 느꼈다.

개원 40년차에 무슨 일이 없었겠는가? 때로는 애꿎은 협박을 받기도 하고 신문에 ‘임신중절을 살인행위!’라고 데모하는 기사가 날 때마다 가슴을 치며 산부인과 의사가 된 걸 고통스러워하기도 한 오랜 세월이 있었지 않은가? 지금은 하나라도 가지려고 그토록 애쓰는데….

33년 전의 추억을 가지고 찾아온 부인도 생각났다. 제천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하려고 일부러 우리 병원을 찾아왔는데, 내가 세 번이나 거절해서 셋째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어느새 33살이라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에게 ‘너는 조윤희 산부인과 아니면 태어나지도 못했다’면서 사업을 돕는 아들을 대견하게 바라본다고 했다. 

“우리 펜션에 한번 오세요” 하면서 충청도 제천의 아름다움을 얘기한다. “1박에 얼마예요?” 하니까 “그건 묻지 말고 한 번 꼭 오셔요” 한다. 그 먼 거리를 찾아와서 아들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는 부인을 보며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내게는 먼 친척 중에 유부남의 아기를 낳아 어렵사리 호적에 입적은 되었지만 공교롭게도 본부인의 장남과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갈등이 많아 20대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청년이 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다’는 유서를 보고 내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 이후로 그런 불륜 쪽인 고객이 임신중절을 원하면 서슴없이 사회적으로 선을 행하는 마음으로 시행을 했던 것이다. 더욱이 중절시기가 지난 후 내원한 고3 학생에게 어쩔 수 없이 입양 쪽으로 유도했는데 졸업을 1개월 앞두고 퇴학당해 몹시 가슴이 아팠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장영실에 관한 책을 읽다가 서자 출신으로 역사에 남는 큰일을 성취한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생명에 대한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었다.

그 후 때때로 매스컴에서 중절을 살인으로 표현할 때마다 자세를 곧게 세우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시대적 과정이긴 하였지만 탄생의 기쁨을 같이 나누려고 택한 산부인과 의사가 많은 갈등 후 생명을 더욱 소중히 사랑하는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한다.

어려움도 많고 슬픔과 기쁨과 보람들이 섞여 있는 과정 속에서도 ‘의사’는 정말로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24년 만에 한 사람, 33년 만에 또 한 사람이 감사의 마음으로 나를 찾아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다니…. 이런 기쁨과 보람을 주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 병원은 이제 개원 39주년을 맞이한다. 40주년까지만 운영하고 문을 닫을까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좀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찾아오는 한 분 한 분의 건강관리도 해주고 서로의 삶도 나누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조금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참 아름다운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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