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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커뮤니티케어 방향, 지나친 탈 의료화가 문제”
“국내 커뮤니티케어 방향, 지나친 탈 의료화가 문제”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2.06.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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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식 소장, ‘요양의원’ 제도 신설 제안···"일차의료가 통합 의료·돌봄 주도해야"
복지부 “의료 포함 당연하지만 고가의 비용이 문제···시범사업 통해 방안 강구할 것”

국내 커뮤니티케어 제도 방향이 지나치게 ‘탈 의료화’로 가고 있어 문제이고, 앞으로 일차의료기관이 통합 의료·돌봄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정부 관계자는 커뮤니티케어에 의료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쉽지 않았다며 앞으로 시범사업을 통해 의료를 가미시키는 방안을 계속해서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16일 열린 2022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일차의료 중심 커뮤니티케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외국 사례를 들어 국내 커뮤니티케어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오는 2025년이면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 인구의 20% 넘게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초고령사회의 도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한민국 의료체계와 건강보험재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보건의료뿐만 아니라 돌봄체계의 획기적 제도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 소장은 “의료 분야는 일차의료기관 중심의 예방 및 돌봄체계와 더불어 병원급 의료기관의 지역별·기능별 병상 자원의 수요에 따른 자원과 낭비적 요소를 제거하는 의료이용체계의 확립을 서둘러야 한다”면서 “의료제도의 혁신과 더불어 초고령사회를 대비한 또 하나의 축인 돌봄체계의 획기적 제도혁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커뮤니티케어 추진 방향은 영국·일본은 민간 주도형으로 추진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형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특히 “의료가 배제된 복지 주도의 강력한 ‘탈 의료기관·시설’을 지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 소장은 이러한 ‘탈 의료·기관시설’ 정책방향은 치명적 문제점들이 있다고 꼬집었다. 첫 번째는, 커뮤니티케어의 추진 주체가 지방정부 행정기관(시군구)이며 실행기구 역시 지방정부 행정기관(읍면동)이라는 점. 우 소장은 “이는 영국과 일본이 커뮤니티케어 시행 초기 중앙 또는 지방정부 주도로 추진하다가 사업성과가 지지부진하여 민간주도로 바뀐 것을 참고하지 않았거나 큰 정책적 판단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조직의 특성상 금전적 이해관계로 동기부여를 할 경우 부정부패의 우려가 있다”면서 “민간의 오류는 바로잡을 수 있지만 정부의 오류는 누구도 바로잡을 수 없고 국민이 피해자가 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커뮤니티 케어에서 의료를 철저히 배제한 채 ‘탈 의료기관·시설’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 소장은 “이는 과거 2000년대 초반 일본의 실패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의료가 배제된 커뮤니티케어는 소비자인 국민의 호응을 받을 수 없다”며 “자기 부모가 의료가 배제된 단순돌봄시설에 수용되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방치할 자녀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일본이 지난 2014년 과거의 오류를 수정한 ‘의료개호일괄법’을 통해 의료, 돌봄, 생활지원, 거주 기능을 일괄해서 해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한 점을 참고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간호협회에서 주장하는 대로 일명 ‘간호단독법’을 제정해 간호사 중심의 커뮤니티케어를 시행할 경우 돌봄서비스의 질 저하와 의료사고 우려가 높아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 소장은 “의료법에 따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는 의료기관 내에서만 적용되고 지역사회 간호행위에 대해서는 의사 지도 또는 지시의 근거 조항이 전혀 없기 때문에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를 벗어나 독자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의료사고의 위험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질병 패턴이 급성기에서 만성질환으로 변하며 일차의료 역할도 기존 외래 중심에서 만성질환의 관리, 생활패턴의 교정, 교육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일차의료는 여전히 급성기 질환 진단, 검사, 치료 위주로 진료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맡아서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나타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 소장은 “일차의료기관은 진료, 연구, 교육, 인력, 장비, 시설 등 제반 여건에 있어서 대형병원을 따라갈 수 없는데 비슷한 가치의 의료를 제공한다면 더 이상 경쟁을 할 수 없다”며 “초고령 사회 예방적 의료가 중요해지는 시점에 일차의료 기능이 축소되면 심각한 보건위기에 직면하고 보건의료비의 효율적 운영이 불가해지며 건강보험 재정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우 소장은 일차의료가 국내 커뮤니티케어의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가칭)요양의원 제도 신설을 주장했다. 그는 “일차의료가 더 이상 외래 진료에만 매여 있으면 통합 의료·돌봄이 필요한 대상자를 더 이상 제대로 케어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 일차의료기관의 일부는 방문진료와 방문간호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변화해야 한다”면서 “통합의료돌봄 전문 일차의료기관의 한 형태로 일본의 개호의료원과 같은 형태의 (가칭) 요양 의원 제도 신설을 건의한다”고 말했다.

특히 “요양병원 의사가 고령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예방적 의료를 통한 건강지킴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관련 수가 신설이나 수가 현실화 등 충분한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요양의원의 시설·인력·장비 기준 등은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중간 정도로 적용하고 돌봄(간병)인력은 장기요양보험 급여를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앞으로 일차의료기관도 방문진료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해 의견을 개진했다.

남상요 인하대 정책대학원 노인학과 교수는 “커뮤니티케어의 주체는 반드시 일차의료가 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여러 법인이 하나의 연계법인이 되어 보건복지가 통합되는 제도가 필요하고, 미국처럼 행위별수가제나 인두제가 아닌 실제 결과에 따른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현재 대한개원의협의회 총무부회장은 “어르신들은 90%가 환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커뮤니티케어에 있어 의사가 빠져선 안된다”며 또 “이제는 일차의사들도 고령화 시대에 맞게 왕진에도 적극 참여하며 마땅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재명 경희의대 교수는 “환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지금도 대학병원에서 만성질환자를 진료하고 지역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전원시키려 하면 거부하는 마당에 커뮤니티케어로 전환 시 의료의 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또 현재도 필수의료과 의사가 부족해지고 있는 마당에 커뮤니티케어에 필요한 필수진료과 인력 충원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마땅한 지원과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커뮤니티케어에 의료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쉽지 않다며 앞으로 시범사업을 통해 커뮤니티케어에 의료를 포함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형우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커뮤니티케어에 의료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의료서비스가 매우 고가의 서비스이기 때문에 의사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서비스를 유도하고 얼마나 재정을 투입할지 계산이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계속해서 시범사업을 진행하며 관련 수가도 최대한 많이 제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며, 앞으로 조금씩이라도 의료서비스가 가미된 모델이 제공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의 좌장을 맡은 임인석 대한의학회 부회장은 “의료와 돌봄이 통합된 커뮤니티케어가 정착되기 위해선 결국 관련 수가와 인센티브를 효율적으로 마련·정비해야 한다”면서 또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커뮤니티케어에 참여하는 의료인 재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특히 현재 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의료 인력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하는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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