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의학문인회 수필 릴레이 2] 부부싸움과 갈등에 관하여
[의학문인회 수필 릴레이 2] 부부싸움과 갈등에 관하여
  • 의사신문
  • 승인 2022.06.14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덕식 원장(금천구 빈센트의원)

부부는 왜 싸우는 것일까? 그리고 왜 싸움은 빈번히 계속되는가? 다툼은 왜 적당한 합의점을 찾기 힘든 것일까? 결과는 계속 다투든지 아니면 무관심으로 변하든지 둘 중 하나로 귀결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혹여 보지는 못했지만 부부가 완전하게 의견이 일치되면서 사랑이 숙성해가는 사람이 있기는 하는 것일까? 혼자 곰곰이 생각해본다. 부부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무관심으로 싸움을 포기하던지 말이다. 중간 합의점은 없는 것일까? 
 
우선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남편으로서 열심히 일 한 사람으로서 생각의 가치를 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은 있다.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정 외에, 더 무엇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뭘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아니, 인정은 아니라도 바깥세상에서 경험하고 배운 개념을 이야기하면 공감해주고 격려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소통은 하는데 뭔가 엇박자 같은 불편한 느낌이 전해온다. 왜일까? 집사람이 이해를 못하는 것일까? 그 정도로 무식한 사람은 아닌데…. 오히려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데…. 

알고 있다면 왜 공감이 되는 대화의 피드백이 잘 안 되는 것일까? 나의 대화법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나는 세상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 속 삶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거기에서 길을 찾고 그 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너무 당연하고 품위 있는 대화의 소재인 것이 아닌가? 슬픔이 밀려온다. 이제 이런 말도 하지 말아야지 말을 하면 다툼이 시작되니, 무너지는 듯 불편한 생각이 든다. 자꾸 말꼬리에서 불편한 대화가 시작되니 시작도 않은 게 싸움을 피하는 방법이겠지.

이러한 생각이 20일 전 이 글을 처음 쓰는 순간에 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 다시 수정해보는 순간에, 자만에 스스로 놀래고 낮이 뜨겁다. 누군가 본다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미화적인 사고 속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부끄럽기도 하다. 어쨌든 솔직한 마음의 표현 속에 스스로를 비춰 반성해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쩌면 이와 같이 모든 다른 사람 또한, 나름의 가치 속에서 나와 같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관찰해 온 바에 의하여, 집사람의 생각을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부인은 전업주부로 육아와 살림에 전념했었다. 집사람은 작은 일에도 섬세하다. 어떠한 것도 대충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집사람은 자기 방법으로 스스로와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 있는 듯하다. 때로는 너무 섬세한 관점에 대비하여 세파의 흐름 속에 대충 보이는 길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 결이 서로 다르고 관점이 달라서 대화가 서로 공감하고 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그 엇나감 때문에 공감대를 벗어나고 차이 및 갈등만 노출되면서 더 불편해지는 것 같다.

너무 섬세함 속, 즉 깊은 숲에서는 길을 잃기 쉽고, 대충 멀리 보이는 길에서는, 길만 보이고 그 길만 갈 뿐, 그 외 놓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놓치는 것에 대하여 집사람은 마음속에 편하지 않는 것 같다. 하기 사 멋없이 목표를 향해 길만 걸어가는 삶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멀리만 나아간다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인가? 결국 목표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 같다. 나는 멀리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집사람 또한 멀리 미래를 내다보고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아내로써 엄마로써 관련되어지는 수많은 일들이 많아서 디테일에서 다를 뿐.

어쨌든 이러한 차이 때문에, 각자의 주장을 상대에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애쓰면서 공감대를 위하여 노력할수록 일치점은 멀어지고 마음은 착잡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상대의 의견에 공감하는 순간에 나의 생각은 부정되는 것으로써, 즉 자기부정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결과적으로는 자기 부정보다는 자기주장을 유지하는 것으로 고집스럽게 결론을 낸다. 집사람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갈등을 유발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글을 써보니 나도 집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면서 나의 마음을 이해하라고 요구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해본다. 결국 서로 관심이 적고, 이해하기 어려운 곳에 가장 커다란 이해를 요구했다는 결론이다.(원시인의 생활에서 남자가 사냥을 해오고 여자는 집에서 살림을 했던 시절에, 전혀 사냥을 해보지 못한 부인에게 사냥의 힘듦을 세세하게 이해받기를 바란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부인이 집에서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수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부족하고 사냥물에 대해 대단한 것을 한 것처럼 위세를 부리는 것 또한 뭔가 품위 있게 보이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조금 접근해가는 듯하다. 이제 집사람의 섬세함에 어떻게 접근해 갈 것인가? 먼저 들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 나의 생각에 집사람의 생각을 더해서 스스로 풍성하게 해보는 것도 좋은 것이리라. 

나의 이야기는 접어두자. 세상사는 스스로 경험을 통해서 이해하는 공간이지 말로 한다고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 이해 받기보다는, 공감받기 보다는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방향으로 마음을 바꿔보자. 어디에선가 좋은 답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제 화이팅 해 보자. 마음이 가볍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