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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내쉬에게 맡기더라도
존 내쉬에게 맡기더라도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2.06.1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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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52)

천재성과 광기는 일란성 쌍둥이와 같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 역시 ‘광기의 기미가 엿보이지 않는 천재는 없다’고 단언한다. 빈센트 반 고흐, 버지니아 울프, 에드거 앨런 포 등과 같이, 조물주는 천재에게 천부적 재능과 함께, 마치 공짜는 없다는 듯이, 광기를 보태주곤 한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이런 천재성과 광기의 관계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22세의 프린스턴 대학교 학생 존 내쉬는 1950년 “비협조적 게임(Non-Cooperative Games)”이라는 불과 27쪽짜리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박사과정을 2년 만에 마치면서 제출한 이 논문 하나로 그는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가 19세에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진학하려고 할 때 그의 지도교수가 써 준 단 한 줄짜리 추천서(“이 학생은 수학 천재입니다(He is a mathematical genius).”)는 전설로 남아 있다. 그는 30대에 수학계 최고권위 상인 필즈상의 유력후보가 되었으나, 심사위원들이 ‘이 사람은 나중에 또 이 상을 받을 수 있다’라고 판단하여 (나중에 또 이런 업적을 내지 못할 것으로 평가받은) 다른 후보에게 시상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의 이면에는 광기가 붙어 있었다. 대학에서 그 유명한 ‘리만 가설’을 강연하던 중 그는 갑자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고, 강연은 취소되었다. 진단 결과 그는 오래전부터 ‘붉은 넥타이를 한 사람들은 자신을 감시하는 소련의 공산주의 스파이’라는 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국 그는 망상형 조현병 판정을 받고 9년간 정신병원에 입원당하게 된다.
  
발병으로 학계에서 은퇴했으나, 이후 병식이 생기고 적절히 병을 관리하면서 그는 연구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탁월한 연구 업적으로 1994년 특이하게도 수학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15년 수학계의 노벨상인 아벨상까지 수상했는데, 수상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와 함께 숨졌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존 내쉬의 학문적 업적은, 경제학에서 기존의 ‘게임 이론’, 즉 게임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기 위해 각자 취하는 전략과 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을 새로이 분석한 것이다. 이른바 ‘협조적 게임’에서는 게임 참가자들의 이익이 균형을 이루는 ‘균형상태’가 존재함이 증명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쉬는 ‘비협조적 게임’에서도 참가자의 수와 관계없이 언제나 균형상태가 존재함을 수학적으로 증명했고, 이는 ‘내쉬 균형’으로 이름 붙여졌다.
  
내쉬 균형을 설명하기 위해, 내쉬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를 예로 들었다. 공범으로 의심되는 2명의 용의자를 따로 조사실로 불러 자백 여부를 묻는다. 둘 다 침묵하면 (증거가 없으므로) 모두 석방된다. 한 명은 침묵, 다른 한 명은 자백하면 자백한 자는 (수사에 협력했으므로) 석방, 침묵한 자는 10년형을 받는다. 둘 다 자백하면 (자백한 것을 고려하여) 모두 3년형을 받는다. 즉 침묵하면 석방 또는 10년형, 자백하면 석방 또는 3년형이다.
 
기존 이론에 따르면, 비협조적 게임이기 때문에 각 용의자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백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 두 용의자가 1/2씩 나눠 가지는 공통의 이익, 즉 형량의 합계는 6년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두 용의자가 ‘공통의 이익’을 극대화(=형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침묵)할 때 얻을 수 있었던 공통의 이익(모두 석방)에 비하면 나쁜 결과이다. 즉 비협조적 게임에서도 경우에 따라 공통의 이익 추구 전략이 자신의 이익 추구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게임 이론이었지만, 내쉬에 의해 증명되자, 이 이론은 점진적이지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이 이론으로 인해 150년간 경제와 사회를 지배해 온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 즉 ‘모두가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하면, 공통의 이익은 자연스럽게 증진된다’는 원리가 절대적 권위를 잃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서 사익과 공익 사이의 나름의 ‘내쉬 균형’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경주되었고, 이는 대화와 타협, 합리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의료 분야 역시 사익과 공익 사이의 ‘내쉬 균형’이 중요한 분야이다. 이를 찾기 위한 대전제이자 첫걸음은 역시 ‘수가’이고, 그래서 해마다 열리는 ‘요양급여비용 계약 협상’, 이른바 수가 협상에 대한 의료계의 관심은 지대하다. 하지만 얼마 전 있었던 2023년 수가 협상에서 의원급 의료기관 유형에 대한 협상은 결렬되었다.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가입자와, 요양급여비용을 받아 의료기관을 꾸려가야 하는 공급자 간의 시각차가 큰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대화와 타협이 이상적이기는 하나 언제나 타협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므로 협상이 결렬된 것까지도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첫째 수가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추가투입재정(이른바 banding)의 초안이 법정기한 마지막 날 밤 10시에 공개된 점이다. 협상의 기초 자료가 협상 만료시한 2시간 전에 공개된 것은, 협상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게 하기에 충분하다.
 
둘째 다음날 아침 9시에 최종결렬이 선언되기까지의 약 11시간 중, 공급자단체들과 건강보험공단 협상단이 마주 앉아 협상한 시간은 약 5시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나머지 시간은 밴딩의 확장성을 논의하는 공단 재정소위와, 보수적인 재정소위 설득을 위한 전략을 짜는 공단 협상단의 자체 회의 시간이었다. 이는 매우 비효율적인 회의 진행 방식이다.
  
셋째 수가 협상에 적용하는 SGR 모형은 미국도 2008년 도입 이후 7년만인 2015년부터 폐기한 모형이고, 공단 역시 그 문제점을 인정하고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면서도, 막상 수가 협상 시에는 이를 계속 근거로 활용하고 있는 점이다. 이 역시 대안 마련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게 하는 부분이다.
  
비협조적 게임에서의 균형상태라는 타협점을 증명해 낸 천재 수학자 존 내쉬에게 대한민국 수가 협상을 맡기더라도, 아마 그 역시도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 같다. 어떠한 게임에서도 타협점이 있음은 이미 증명되어 있지만, 지금과 같이 협상 만료기한 2시간 전에 기초 자료를 공개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수가 협상 방식을 고집하는 한, 과연 이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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