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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2.06.1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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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63)

우리 진단검사의학과의 연구를 도와주는 연구원 셋이 판독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평소 서로 친자매들처럼 다정하게 지내는 친구들인데 무슨 일인지 이날 따라 분위기가 싸했다. 판독실의 ‘어른(?)’들이 자기들 말을 한번 들어보고 잘잘못을 가려달라면서 우리 과 전문의들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국제 인증을 앞두고 일감이 산더미처럼 쌓이니 주말에도 연구실에 나와서 일을 하자고 선임인 연구원 하나가 제안했고 다른 연구원은 토요일은 선약이 있어서 일요일만 나오겠다고 답했다. 나머지 한 명은 왜 휴일 근무를 둘이서 마음대로 정하려느냐 하는 불만이었다. 평소 셋 다 매우 성실한 이들이었기에 일하기 싫어 다툰 건 결코 아니었고 그저 사소한 의견 차이로 티격태격하다가 감정들이 상한 것 같았다.
  
우리 과 다른 전문의 선생님들은 “요즘이 어떤 시댄데 주말 근무를 막 시키겠느냐. 그냥 평일에 좀 더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사안을 쉽게 정리해주었다. 하지만 난 조금 다른 면을 말해주고 싶었다. 코앞에 닥친 일을 서둘러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선임 연구원의 열심도 이해하고, 일과 외의 추가 업무가 필요하다면 적어도 그 스케쥴 만큼은 자율적으로 정하고 싶은 나머지 연구원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문제는 의견대립을 하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 그러면서 또 서로 미안해하는 복잡한 속내를 다독여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소모적인 감정싸움이 더 커지기 전에 ‘어른’들의 중재를 받겠다고 찾아온 걸 칭찬해 주면서 이들에게 옛날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무림(武林)을 ‘백발도사’파(派)와 ‘흑발도사’파가 양분하고 있던 시대의 일이다. 어느 날 흑발도사파의 기습을 받은 백발도사파는 그만 멸문지화를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가문의 갓난아이 하나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산속으로 빼돌려졌고 거기서 자라면서 스승을 만나 천하제일의 무공을 익힌다. 철이 들어 자기 집안의 내력을 알게 된 그는 마침내 복수의 칼을 들고 하산한다. 흑발도사파가 모여 사는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우리의 초절정 고수. 마을 어귀에서 한 무리의 동네 아이들과 조우(遭遇)한다. 평생을 산속에서 무술만 연마한 백발도사파의 후손 청년은 행색이 남루했다. 걸친 옷은 낡았고 머리는 산발이었으며 얼굴엔 때가 꾀죄죄했다. 아이들은 거지라고 놀렸고 그러다가 이내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중 제법 큰 돌멩이가 초고수 청년의 얼굴을 강타하자 그는 복수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내가 의대생이던 시절 유행했던 이 이야기는 사실 시리즈물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다양한 변주(變奏)가 등장한다.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는데 주인공이 칼을 뽑다가 중심을 잃고 떨어져 죽었다는 둥, 먹구름 가득한 칠흑 같은 밤에 흑발도사파 우두머리를 기습하려 뽑아 든 칼이 그만 피뢰침 역할을 하는 바람에 벼락을 맞고 감전사했다는 둥, 죄다 허무하고 어이없는 결말을 보여준다. 익명의 원작자는 ‘인생무상’의 철학을 담고자 했을지 모르지만 난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은 계획대로 항상 잘 되는 것이 아니며 죽음 또한 늘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연구원들에게 말해주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주어진 한순간 한순간에 충실하게 되고 웬만큼 사소한 문제들은 대범하게 넘어갈 수 있으리란 교훈도 보탰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감동은커녕 ‘이분 쫌 오버하시네’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른’들의 지혜를 구하러 찾아온 젊은 연구원들에게 나는 효과적인 조언을 해주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직전의 말다툼으로 인해 다소 흥분 상태인 그들에게 짧은 시간 동안 너무 큰 담론을 던진 것이 실수였고, 뜬금없이 흑발도사, 백발도사 얘길 꺼낸 게 잘못이었다. 곱씹어볼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건지, 그저 우스개에 가까운 가벼운 이야기를 하는 건지 연구원들이 헷갈렸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내가 전하고 싶은 말, 곧 요즘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문장은 바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유명한 라틴어 경구, ‘메멘토 모리’다.
 
이어령 선생이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 말이 이 ‘메멘토 모리’다. ‘목숨은 태어날 때부터 / 죽음의 기저귀를 차고 나온다 / 아무리 부드러운 포대기로 감싸도 / 수의(壽衣)의 까칠한 촉감은 감출 수가 없어 / 잠투정을 하는 아이의 이유를 아는가’로 시작하는 선생의 자작시 제목도 ‘메멘토 모리’다. 과거 삼성 이병철 회장이 사망 직전 신의 존재, 종교의 본질, 인생의 고통과 모순 등에 대해에 물었다고 하는 스물네 가지 ‘빅 퀘스천’에 대해 이어령 선생과 기자가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의 제목 역시 ‘메멘토 모리’다. 과거 정의채 몬시뇰 신부가 그 질문들에 답했던 내용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통찰력을 주는 책이다. 이 책에 푹 빠져 읽고 또 읽고 하면서 나는 비로소 죽음을 준비한다. 아니 내 삶을 다시 준비한다.
  
“역설적으로, 생명이 뭔지 몰랐는데 죽는 순간 생명이란 게 뭔가를 비로소 깨달은 것이지. 죽음의 발견이 곧 생명의 발견이었던 거야.” 다소 철학적인 이 말은 암 투병을 했던 선생의 경험담이 소개되면서 바야흐로 쉽게 와 닿는다. “‘당신 암이야’라고 선고를 받는 순간 갑자기 공기 맛이 달라져요. 방금 전까지 숨 쉬던 그 공기가 아닌 게지. 어제 보던 세상의 빛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아무리 하찮은 것들이라 해도 저것들을 이제 더는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아주 다르게 보인다는 겁니다.”
  
우리 연구원들에게 전달하려 했던 것처럼, 병원에서 일어나는 온갖 골치 아픈 일들에 대해서도 나는 ‘메멘토 모리’를 처방전으로 삼고자 한다. 무겁고 심각한 주제일 수 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욱 삶을 사랑스럽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모습은 곧 죽어가는 모습이다. 이 둘을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할 때 우리 앞에 주어지는 순간순간들이 예기치 못한 감사로 뒤덮일 수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얼마 전 타계한 <전국노래자랑>의 MC 송해 선생의 이야기 또한 그런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땡’을 받아보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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