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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진술 신빙성 유무 확인 안해"···성추행 판결 파기환송
대법원 "진술 신빙성 유무 확인 안해"···성추행 판결 파기환송
  • 조준경 기자
  • 승인 2022.06.13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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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직장수지검사 중 의사 손가락 질 안으로 들어와"
수사기관서 법정 오는 동안 단정적으로 묘사 풍부해져

직장수지검사를 받다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주장에 대해 추가적인 증거 확보와 신빙성 유무 등을 정확히 하지 않은 항소심 판결을 파기환송한 대법원 판결이 지난달 26일 나왔다.

A씨는 서울 소재 병원에 근무하는 내과 전공의 2년차 의사다. A씨는 2015년 5월26일 이 병원에 환자로 방문해 직장수지검사를 위해 누워있던 B씨의 질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강제 추행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항소심은 B씨의 진술을 믿을 수 있다고 보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는 수가기관에서부터 제1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 경위에 관한 구체적인 사정을 일관되게 진술했고, B씨의 일부 추측성 답변 사실만으로 B씨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진술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B씨의 진술이 믿을만 하다고 판단했다.

B씨는 혈변 등의 증세로 이 사건 병원에 입원해 수련의로부터 직장수지검사를 받은 뒤 전공의인 A씨로부터 다시 직장수지검사를 받았다.

재판부는 “B씨가 항문에 손가락을 넣은 행위를 질에 손가락을 넣은 행위로 착각했을 가능성은 없었다고 보인다”며 “B씨는 사건 발생 다음날 곧바로 고소장을 제출했고, 병원 측에 과잉진료에 대해 항의했으나 그 병원비를 납부한 사실 등에 비춰보면, B씨에게 A씨를 허위로 고소할 동기나 이유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면서 “B씨가 A씨의 행위에 대해 큰소리 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의료행위 중에 기습적으로 추행을 당해 순간 놀라고 당황한 데에 기인하는 것일 수 있으므로, B씨의 반응이 부자연스럽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A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야 한다”며 “검사가 이러한 확신을 가지게 할 만큼 충분히 증명하지 못한 경우에는 설령 유죄의 의심이 든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주목한 부분은 항소심이 제1심 판결의 당부를 판단할 때 심증의 형성에 영향을 미칠 만한 객관적 사유가 새로 드러난 것이 없는데도 이를 뒤집은 점이다.

대법원은 “제1심 판단을 재평가해 사후심적으로 판단하여 뒤짚고자 할 때에는, 제1심의 증거가치 판단이 명백히 잘못됐다거나 사실인정에 이르는 논증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어긋나는 등 그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만한 합리적인 사정이 있어야 한다”며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제1심 판단을 뒤집는 경우에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형사증명책임의 원칙에 비춰 이를 수긍할 수 없는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나타나는 경우라야 한다”고 설시했다.

B씨는 1심 법정에서 A씨의 손가락이 어느정도 들어갔는지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거의 손가락 하나가 다 들어갔다고 봐도 무방하고, 안에 들어가서 몇 번 좀 많이 휘저었다”(이하 쟁점 진술)라고 답변했다.

이에 검사는 B씨가 A씨의 행위에 즉각 항의했는지를 물었고, B씨는 “거기가 아니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그러나 B씨는 수사기관에선 “A씨가 항문으로 손가락을 넣으려는 시도 없이 곧바로 손가락을 질 내로 집어넣었다”고만 진술했을 뿐 ‘휘저었다’고 진술한 적이 없다. 1심은 B씨가 법정에 이르는 동안 피고인이 고의로 질 속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고 단정하는 방향으로 점점 묘사가 풍부해진 것에 주목하고, 그 진술의 정확성 또는 신빙성이 의심스럽다고 보았다.

항소심은 추가로 증거를 조사하지 않고 피고인 신문을 거쳐 심리를 마친 후, 쟁점 진술이 질에 손가락을 넣은 상황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후 항문에 손가락을 넣은 상황에 대한 답변에 해당한다고 이해한 다음, 이를 기초로 B씨가 1심에서 한 진술이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보다 묘사가 풍부해진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쟁점진술을 전후한 검사와 B씨의 문답 내용에 따르면, 쟁점 진술이 항문에 손가락을 넣은 상황에 대한 답변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분명하다고 보기 어렵고, 쟁점 진술을 제1심의 판단대로 이해한다면 피해자 진술이 수사과정에서 법정에 이르는 동안 피고인이 고의로 질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고 단정하는 방향으로 점점 묘사가 풍부해졌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심 판단에 의문이 들더라도 곧바로 이를 뒤집을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증인으로 다시 신문해 쟁점 진술의 취지를 분명히 하는 등 추가적인 증거를 조사한 다음,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유무 등을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한다”며 “항소심이 심리와 재판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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