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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문인회 수필 릴레이 1] 양평의 겨울 사색 
[의학문인회 수필 릴레이 1] 양평의 겨울 사색 
  • 의사신문
  • 승인 2022.06.0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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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규 원장(서울 금천 성내과의원)
의학문인회 회장
      성상규 의학문인회 회장

오랜만에 다시 찾은 겨울 양평의 강산은 겨울잠을 자는 듯 적막하다.

경기도 양평은 등 굽은 할머니 같은 산등성이도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아스라한 물이 그리워지게 하는 산과 물의 향연장이다.

차가운 구름은 무던한 산을 스멀스멀 순하게 만곡으로 내려가 강 얼음으로 변한다.

실처럼 지렁이같이 산 밑의 좁은 자투리땅을 따라 난 강변길은 아기자기한 풍광에 만곡의 산수화가 된다.

겨울 그림은 마무리 차가운 한설 기운이 안개같이 몸에 배어 온다.
겨울은 열정이 넘치며 천방지축 자라나던 초목을 잠시 억제하고 번잡한 세상을 정화시킨다.

모든 현상은 양면성이 있어 조화가 이루듯 어둠이 있어 별이 반짝반짝 빛을 낼 수 있듯이 정적인 겨울이 있기에 화사한 봄이 아름답다.

산다는 것은 항상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온 뒤 날이 더 맑게 개듯이 생은 때론 거친 파도와 북풍한설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이나 이겨 나가면 포근한 춘풍도 마주하게 된다.

풍성한 춘추보다 차가운 겨울 산을 탐닉한 조정권 시인은 노래한다.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의 일각을 그리워하리.
-조정권 ‘산정묘지 1’ 부분
 
강은 찬 기운이 응어리져 얼음으로 덮여있고 시루떡에 떡고물 얹힌 듯이 하얀 얼음가루가 곳곳에 있으며 표면이 태양같이 빛나 거기에 뭔가 돌을 던져 보고 싶어진다.

돌은 미끄러운 표면을 미끄러져 떼구르르 한참 구를 듯하고 어릴 적 썰매 탔듯이 건너가고 싶은 충동도 인다.

사람이 위급하면 과거 그랬듯이 소설 북간도에서도 언 두만강을, 또 피난 시절도 목숨 걸고 조심스럽게 건넜을 얼음강이다.

강변의 고즈넉한 천년 찻집에 들르니 복고풍의 사진 장식들과 전통 차로 우아한 기운이 가득하다.

권하는 대추차를 마셔본다. 겨울이라 손님이 적으나 그래도 주인의 정성이 깃든 진한 맛이 일품이다.

고독의 계절이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혼자 살기에 외롭기에 사랑을 찾는다.

들른 사람들이 한 마디씩 써놓은 비치 된 낙서 노트가 비치되어 있는데 우연히 펼친 장에, 이제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였으나 과거에 헤어져 다시 이루어질 수 없는 지나간 연인을 매우 그리워하는 낙서 문구가 보인다.

인생행로에서 어제 일인 듯 생생한 지나간 젊음의 열정과 치기.

상념이란 걸 가졌으니 번민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여!
지난 여름 물이 끓는 듯 무더위는 얼마나 뜨거웠던가?

운길산, 수종사 걸쳐 올랐다가 물의 공원 길에서 뙤약볕에 줄줄이 흐르는 땀으로 생명력이 터질듯이 기운을 뿜어내며 무성한 초목 사이를 헤치며 그저 걷던 이 아름다운 강변길이 떠올랐다.

남한강 강북의 물의 정원과 푸르르게 이어진 강변길은 가족 연인들로 가득하였고 물안개 피는 강은 낭만으로 아련하다.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곡은 이런 물의 정경에서 탄생하였다고 하니 우연이 아니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깊이 사랑하지 말라, 그러면 이별할 때 괴롭나니
이 무슨 역설인가?

모두 사랑이 가치 중에 제일이라고 하는데 불가에서 말하는 '팔고'에서 설하였듯이 생로병사와 더불어, 단지 만났기 때문에 가족과 좋아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도 만나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의 괴로움도 살다 보면 인과응보같이 다가오는 저항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기에  고뇌하게 한다.

이를 느끼는 한 시를 보면,

공존의 이유.12 - 조병화(趙炳華)

깊이 사귀지 마세/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가벼운 정도로/사귀세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작별을 하세
-중략-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보일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 메 쯤 간다는 것을/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이리하여 사랑이란 고귀한 것이지만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의존적으로 하지 말고 각자가 홀로 설 수 있으며 타자에게 줄 수 있는 그런 건전한 힘을 가진 사랑을 하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너무 기대면 타인에게도 부담을 주므로 서로를 성장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맹목적 개체이기도 하니 감정이 다 논리대로만 되지는 않는 문제는 있다.
북으로 고개를 넘어 다다른 황순원 문학관은 꽤 깊은 산속에 새의 둥지 같이 몸을 틀고 있다.

한국 문학의 거목인 그의 작품 '소나기'는 전통 시대 프레임에 소속될 수밖에 없고 유한한 생명이기에 애절한 토속적인 소년과 소녀의 이루어지지 못한 순수한 사랑을 그렸다.

소설에 소녀가 양평읍으로 이사했다는 대목으로 여기에 테마를 구성하여 만든 조금 억지스러운 면도 있으나 구세대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조성을 하였고 내부 상영관에 이를 주제로 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한 애니메이션도 잘 만들어져 볼 만하다.

두물머리(양수리 兩水里)는 말 뜻 그대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곳으로 과거 조선시대의 하천 운송 중심인 나루터, 강가의 버드나무들과 연꽃 밭, 아스라한 물 풍경 등이 조화를 이루어 많은 사람들을 부른다.

별미인 연잎 밥 먹고 인근 산책하려다 두물머리 공영주차장은 꽉 차 있고 바깥 줄까지 너무 대기가 길어 찬 계절에는 한적한 세미원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이제는 문명에 어지럽게 흐트러진 마음을 정화하라는 듯 냉기와 정적이 흐르며 자연은 쥐죽은 듯 숨을 참고 냉정히 나를 쳐다보는 눈빛들이다.

그러나 저 속에는 시기를 기다리는 참을성 많은 속으로 꿈틀거리는 몸짓들이 느껴진다.

또 호접이 노닐고 방초가 깔리는 봄이 부지불식간에 올 것이다.

두물머리 모서리에 있는 세미원은 역시 물의 정원이다.

아름다운 물의 세계를 자랑하나 지금은 엄동설한이라 걷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입장료 받기 미안한지 커피 음료권 하나를 준다.

정원내의 물길이나 연꽃이 아름답다는 홍련지의 물도 얼어 줄기 끝동만 냉기를 못 이기고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대자연은 우리가 나왔으며 돌아갈 그 곳인 근원의 어머니 같은 곳이다.

인간이 만들어 탁해진 문명과 인공의 회색 도시에 찌들다 보면 인간의 마음은 자연과 멀어진다.

이에 몰입되면 앞만 보아서 본연의 길을 잃고, 거칠어지고 소외된 본성을 회복하려면 자주 자연과 포옹하며 가까이 해야 한다.

십자 모양으로 넓게 펼쳐진 강과 순한 산이 어우러진 두물머리에 물이 풍성한 여름에 오면 색다른 맛이 클 것이니 물이 나를 충만하게 하고 다시 평화로운 마음으로 물길을 걸어봐야겠다.

강물이 풀리면 나의 마음에도 온화한 물이 흐르는 봄이 오듯 저 멀리 오붓한 오솔길 따라 봄의 여신이 오실 것이다.
                                                                                                 2022.1. Dr.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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