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홍보대사
홍보대사
  • 홍영준 원자력병원장
  • 승인 2022.06.08 09:22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릉역 2번 출구 (62)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당시 혁신적 기술을 이용한 신제품이라며 방사선 쪼인 골프공을 누군가 내게 수북이 선물한 적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골퍼들은 ‘비거리’에 목숨 걸기 마련이라, 무려 20% 이상 거리가 늘어난다는 이 골프공에 당연히 큰 관심이 갔다. 골프공에 감마선을 조사하면 공의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의 구조가 고반발로 바뀐다는 원리라면서 국내 굴지의 연구기관 출신이 만든 제품이라고 했다. 명색이 ‘방사선 의학’ 전문 의료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골프공을 일반인들에게 방사선의 활용 분야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어쩌면 어설픈 내 골프 실력 탓일 수도 있겠으나 아쉽게도 내가 체험한 그 공의 비거리 증대 효과는 미미했다. 게다가 방사선에 의해 골프공의 탄성이 증가한다는 메커니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한 학술논문을 찾아보았지만 그럴싸한 자료는 도무지 구할 수 없었다. 이게 과학이라기보다는 거의 플라세보 효과 같은 ‘믿음’의 영역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자 갈수록 비거리 차이를 실감할 수 없었다. 결국 그 공은 내 골프가방에서 다 빠졌고 골프공 회사는, 효과를 조금이라도 느꼈다면 기꺼이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을 자발적 ‘홍보대사’ 한 명을 놓친 셈이 되었다.
  
대놓고 상업적인 광고를 할 수 없는 공기업이나 공익 단체들은 그 대안으로 이른바 ‘홍보대사’를 활용하여 기관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전략을 흔히 쓴다. 용모단정한 자기 학교 학생을 선발하여 홍보대사로 쓰는 대학들과는 달리, 공공기관들은 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들을 선호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연예인들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웃지 못할 곤혹스러운 상황이 펼쳐지는데 예컨대 국세청 홍보대사를 거친 연예인이 나중에 탈세로 물의를 일으킨다든지, 혹은 한우의 소비를 촉진하려는 목적으로 한우 홍보대사로 임명했던 연예인이 어느 날 느닷없이 채식주의자를 선언한다든지 하는 일이 벌어진다.
  
어쨌거나 홍보대사를 임명하려고 하는 측에서는 단순히 연예인들의 겉에 드러난 이미지만 사려고 할 게 아니라 그들이 홍보하려고 하는 대상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게끔 만드는 일에 먼저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홍보대사 타이틀이 대개 무보수 명예직이며 임기도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떠들썩한 임명식 이후 시간이 좀 흐르면 홍보대사들 스스로 그런 직함을 가졌었는지조차 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와는 반대로, 명쾌하게 원리를 설명한 학술논문이 좀 있어서 배경 이론에 대해 공감이 되고, 믿음이 좀 부족해도 실제 필드에서 효과를 체험했다면, 비록 연예인은 아니지만 나 같은 사람도 평생 ‘방사선 조사’ 골프공을 홍보하고 다녔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원자력병원은 홍보대사 운이 좋은 편이다. 2003년 우리 병원은 가수 이무송, 노사연 부부를 홍보대사로 위촉했고 이들은 지금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홍보대사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소아암 환자들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함께 장식하는 행사를 시작으로 암환자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코로나 이전까지는 거의 매년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들 부부의 도움 덕분이다. 조항조, 박상민, 남진, 아이유 등등 많은 유명 가수들이 기꺼이 행사의 취지에 공감하여 콘서트에 노개런티로 참여해 주었다. 
  
이무송, 노사연 부부가 우리 병원 직원들보다 더욱 헌신적으로 이런 행사에 발 벗고 나서는 까닭은 어쩌면 그들의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는 과정을 본인들이 직접 지켜보고 간호했으며 또 암 검진을 받아 본 경험이 큰 몫을 했으리라 믿는다. 병원이 환자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환자들은 또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직접 보고 느낀 우리 홍보대사들이기에 암 예방과 조기 검진의 중요성을 알리고 환자들을 위로하는 행사에 진심을 담는 것이다.
  
노사연의 노래 중에 2014년 김종환이 작곡한 <바램>이란 곡이 있다. 원래 문법적으로는 ‘바람’이 맞는데 이러면 휙 불어오는 ‘바람(風)’이나 불륜을 연상시키는 ‘바람(affair)’과 혼동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에 오기인 줄 알면서 일부러 제목을 ‘바램’이라 붙였다고 한다. 그 노래에는 우리의 힘겨운 일상과 그 가운데 가족과 친구에게 바라는 점을 묘사한 가사가 나온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 평생 바쁘게 걸어왔으니 다리가 아픕니다 /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우리의 홍보대사가 병원에 직접 와 보고 환자들의 고통과 의료진의 애환을 공감했다면, 나는 홍보대사가 부르는 노래를 통해 그들의 깊숙한 속마음을 이해해보고 싶다. 이 노래를 부르는 노사연의 눈에는 항상 눈물이 촉촉이 고여 있기에 그 노랫말이 곧 자신의 진심임을 알 수 있다. 외로울 때 누군가 옆에서 자기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주길 바라는 것.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의 겉모습이 아니라 한 인간의 솔직한 내면에는 그런 ‘바램’이 가득 담겨 있는 것 같다.
  
1963년에 설립된 우리 기관은 내년에 60주년, 곧 환갑을 맞는다. 다양한 행사를 기획 중이고 그 가운데는 당연히 ‘환자와 지역 주민을 위한 콘서트’가 있다. 40주년 기념 콘서트, 50주년 기념 콘서트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우리 홍보대사 부부가 많은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한다. 힘겨운 투병 중에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거워하는 환자들의 얼굴이 벌써 떠오르고 병원 마당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함께 어울리는 동네 주민들의 흥겨운 모습도 연상된다. 하지만 그 축하 잔치의 주인공 하나가 우리와의 인연 20주년을 맞는 이무송, 노사연 부부임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결코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일이 없도록 이들의 이야기를 언제나 경청할 준비도 물론 되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민석 2022-06-10 15:29:03
홍보대사가 무보수였군요. 60주년 행사에는 저도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습니다. 건강하세요 병원장님.

권기양 2022-06-08 16:14:38
원장님의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정말 훌륭하신분 같아서 마음이 훈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