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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처럼 번지는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 입법 반발
들불처럼 번지는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 입법 반발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2.05.31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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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인후과醫, “실손보험 청구 의료기관 강제 대행법” 비판
“보험업계, 국민 건강정보 남용 우려···국민 건강권 침해”
피부과醫도 “심평원, 실손보험사 부속기관 전락할 것”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공공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민간 기업인 실손보험사의 업무를 위탁하게 되면 실손보험사들의 환자 개인정보 악용이나 국민 건강권 침해 우려는 높아지는 반면, 결국 보험업계만 이득을 보게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는 31일 성명서을 내고 “민간 보험업계와 가입자 개인의 사적 계약관계에 의료계의 동의없이 의료기관에 의료정보 제공을 의무화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앞서 정의당 배진교 의원은 최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보험가입자가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를 심평원에 위탁하고, 심평원이 보험금 청구와 지급에 필요한 서류를 관리하는 내용이 골자다.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심평원은 실손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요양기관으로부터 접수하고 해당 서류를 보험회사에 제출하게 된다. 

이에 대해 이비인후과의사회는 “심평원의 실손보험 심사 결과에는 환자의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들어있어 사설 보험업체가 개인정보를 손쉽게 편취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악법”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보험업계에서는 ‘가입자 편익 제공’이나 ‘청구된 자료의 검토에 필요한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빅데이터화된 환자 정보를 보험약관 개정 등에 이용해 보험업계의 이윤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목적이 있다는 게 의사회의 진단이다.

의사회는 “일각에서 ‘이번 개정안은 심평원에서 보험업계로 제공되는 정보에 제한을 두고 전산화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이는 심평원의 업무 효율 등을 핑계로 쉽게 전산화된 정보의 제공으로 바뀔 수 있는 부분으로 의료계의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며 “보험업계의 심평원을 이용한 국민 건강정보의 남용은 결국 진료권에 영향을 미치고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민간 보험 가입자의 진료 정보를 심평원에 제공하는 역할을 의료기관에 강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 편익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하고 있다”며 “이는 실손보험 청구를 의료기관이 강제적으로 대행하도록 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 아니라 ‘실손보험 청구 의료기관 강제 대행법’이라 하는 것이 어울린다”고 꼬집기도 했다.

특히 의사회는 “의료계에서는 제3의 중개기관이나 핀테크 업체를 활용한 대안 등을 제시했지만, 보험업계는 충분한 검토 없이 ‘국민의 편의를 위한다’고 포장해가며 심평원을 중개기관으로 활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심평원의 진료 심사행위가 보험업계의 이익과 직결되는 구조는 매우 불합리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회를 겨냥해 “그동안 의료계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된 비합리적인 법안들로 의해 현장의 의사들은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며 “현장 전문가인 의료계와의 적절한 논의와 설득의 과정없이 추진되는 입법은 지양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서 전날 대한피부과의사회도 성명서를 통해 “겉으로는 국민을 위하는 척, 실상은 실손보험사 배만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은 즉각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부과의사회는 개정안에 대해 “공공기관인 심평원이 설립 목적이나 역할에서 벗어나 건강보험도 아닌 영리기업 보험사의 민간보험 청구간소화 업무에 이용된다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걷어진 건강보험료가 실손보험사의 운영을 위해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심평원은 실손보험사의 부속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실손보험사에 축적된 환자의 개인 의료정보는 결국 보험사의 새로운 상품 개발에 이용될 것이고, 진료정보가 집적됨으로써 향후 개인 청구에 대한 지급 및 재갱신 거절 등에 악용되는 국민 피해가 분명하게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개인 정보 중에서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의료정보를 민간 보험사에 전송하는 과정에서 의료정보가 유출될 경우 제3자인 의료 기관도 정보의 1차 제공자로서 법적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크다”는 우려도 내놨다.

이와 함께 의사회는 “심평원에 위탁된 비급여 정보 및 실손보험 청구 관련 정보도 건강보험 청구비용 심사 시 악용될 소지가 높다”며 “의료기관의 정당하고도 책임 있는 의료 행위의 제한과 위축으로 이어져 결국 이 모든 피해는 의료의 질 하락과 국민의 건강권 침해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고 내다봤다.

이어 “보험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며 아무 법률적 관계가 없고 어떤 이익이 없는 제3자인 의료기관에 보험사의 보험금 청구 절차 개선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은 보험회사에게는 업무 간소화에 따른 비용 절감과 수익 증대를 주는 반면, 정작 의료기관에는 불필요한 행정 규제를 조장하는 절대적으로 불합리한 법안”이라며 “국가기관, 의료기관, 국민 모두가 손해를 보고 실손보험회사만이 이득을 얻는 이번 법안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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