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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 공개, 의사 양심의 자유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해"
"비급여 공개, 의사 양심의 자유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해"
  • 조준경 기자
  • 승인 2022.05.19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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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유명인 복합정보 결합되면 개인정보 노출 용이
시술 노하우 등 영업비밀 침해해 직업수행 자유침해
비급여진료 통해 양질의 의료선택권 보장할 수 있어

비급여 진료비용의 보고 및 공개에 관한 사건의 헌법재판소 변론이 19일 열린 가운데, 청구인 측은 비급여 진료내역 등을 보고하게 하는 것은 개인의 민감한 의료정보를 국가에 제공하는 것으로서 의사의 양심의 자유와 직업의 자유, 의료소비자인 일반 국민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의료기관의 장으로 하여금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비급여 진료 비용의 항목, 기준, 금액, 진료내역 등을 보고하게 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이 보고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현황을 조사 및 분석해 그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제45조의 2 등이 의사의 직업의 자유와 일반 국민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서울시의사회·서울시한의사회·서울시치과의사회 등 의료단체들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 2월28일 헌법소원을 냈고, 헌재는 각각의 청구를 병합해 심리해 왔다.

청구인 측은 이날 공개 변론을 통해 비급여 진료에 관한 자료제출 강제는 의료행위 통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맞섰다. 국민을 위한 수준 높은 의료혜택에 부합하는 진료기법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장경제원칙에 맞게 비급여 부문을 자율에 맡겨야 하는데, 비급여 진료비 공개제도는 환자들로 하여금 값싸고 저급한 의료기관을 선택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비싼 병원으로 몰리는 역선택을 조장할 우려도 제기됐다.

개인정보 노출의 위험성과 관련해선, 개인의 의료기록정보는 해킹의 주된 표적이 되고 있음에도 국민건강보험법에는 자료의 보관기한이나 침해대응 등에 관해 아무런 규정이 없는 점, 국민의 가장 중요한 개인정보인 진료내역을 법률이 아닌 행정부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고시를 통해 수집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비급여 진료의 ‘항목, 기준, 금액, 진료내역 등’은 그에 따른 가격결정방법 등이 담겨 있는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할 수 있는 점도 나왔다.

청구인 측 오승철 변호사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사설의료기관을 강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며, 통계수치로 확인되는 우리나라 진료 수가는 OECD평균의 3분의 1미만”이라며 “자유로운 비급여 진료의 보장은 보험제도가 합헌적 제도로 존속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라고 강조했다.

오 변호사는 비급여 진료를 국가가 보호해야 할 이유로 헌법 제22조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는 조문과, 제127조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문을 들며 의료인도 과학기술자이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비급여 진료를 통해 국민들은 수준 높은 의료선택권이 보장받고, 의사들은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창의력을 발휘해 의학발달이 촉진될 수 있는데, 비급여 보고제도는 국가의 개입으로 소득활동이 제한되는 기본권 침해 문제라는 지적이다.

청구인 측 참고인 임민식 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 부회장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선택 비급여가 많은데 생명과 관계없는 삶의 질 향상과 관련된 비급여 진료를 국가가 관리할 필요가 없다”며 “비급여 규제는 대한의사협회가 전문가주의에 입각해 자율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오 변호사는 “특히 환자의 개인정보 노출 위험은 의료인의 양심의 자유와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 한다”며 “이 사건은 공공복리를 위한 입법이 아니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및 경제질서를 위반”한다며 위헌 소지를 주장했다.

의료계 법률 대리인인 김연희 변호사(법무법인 의성)는 "복지부는 환자의 실질적인 의료기관 선택권 보장, 가계 의료비 부담 완화를 입법 취지로 내세우고 있다"며 "건강보험 보장성, 의료의 질, 건강보험 재정의 효율성 악화는 요양급여 내실화, 선진국 대비 지나치게 낮은 건강보험료 부담률 상승 등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비급여 진료 통제는 적절한 수단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또 "비급여 조사 방법과 범위 등 일체의 내용을 복지부령으로 포괄위임하고 있다"며 "복지부령은 비급여 진료비, 진료내용 등에 관한 범위, 내용, 절차 등 일체 사항을 고시로 재위임하고 있다"고 포괄위임금지 원칙도 지적했다.

청구인 측 참고인 박형욱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참고인 의견요지를 통해 “우리나라 비급여나 가계직접부담 비중이 큰 것은 열악한 건강보험 재정 때문”이라며 “낮은 건보료율과 이로 인한 열악한 건보재정은 국가의료보장제도 밖의 의료를 양산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비급여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 측은 “문재인 케어는 7%의 건강보험료율로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보장하겠다는 것으로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비급여 때문에 보장률이 정체되고 있다며 실패의 책임을 의료기관으로 돌리면서 비급여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의료법상 안전하고 유효한 의료행위가 비용효과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불법의료행위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청구인 측은 또 “비급여는 국가에서 정한 가격을 따르는 급여 수가가 아닌 의료기관 사이의 실질적 차이를 반영해 자유롭게 가격을 정하는 영역이고, 아울러 국민의 입장에서도 의료기관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하는 사항으로, 비급여 진료비용 등을 보고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자율적 영역에 대한 국가의 과잉 규제”라며 “건강보험료 인상 및 적정수가의 보장이라는 근본적인 접근이 아닌 비급여 통제를 통한 진료기 억제를 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의료기관의 최소한의 운영마저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정 의료법이 일선 의료기관에 과도한 행정력을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의원급 의료기관은 1인 원장에 1인 직원인 곳도 많아 신설 조항에 물리적 대응이 불가할 수 있어 행정처분을 피하기 어렵다”며 “의료계 단체와 정부 간의 협의를 통해 일정 규모 이하의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비급여 보고 및 공개 사항을 강제조항이 아닌 임의조항으로 규율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판부는 청구인 측 질문으로 “의원이나 병원에 진료 관련해서 환자 개인의 정보가 발생하면 어떠한 정보들이 최대치로 수집되느냐”고 묻자, 청구인 측은 “환자를 진료하면 환자에 대한 모든 정보를 취득하게 된다”며 “이름, 나이, 주소, 왜 이런 진료를 받게 됐는지, 검사 결과에 따른 치료 계획 등이 포함된다”고 답변했다.

비록 환자의 이름, 나이, 주소 등이 공개되지 않더라도, 희귀한 질병을 비롯해 유명인, 방문일시 등 여러 정보가 결합되면 특정인이라고 식별될 수 있는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오 변호사는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진료내역이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내 정보가 유출됐다는 마음이 들 수 있다”며 “상당한 유명세가 있는 사람이 어느 병원을 방문했다는 내용 등이 쉽게 퍼질 수 있다. 이런 정보공개를 통해 사실상 개인정보가 공개된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이날 나온 변론 내용을 참조해 헌법소원 심리를 이어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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