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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1명 재택치료, 청구 서류 작성에만 30분 걸려”
“외국인 1명 재택치료, 청구 서류 작성에만 30분 걸려”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2.04.28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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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으로 진단서 발행하면 불법” → 수만 명 의사 ‘전과자’ 될라
의사소통 안돼 진료도 어려운데···아예 진료비 청구 포기하는 의원들 속출
외국인 청구만 까다롭게 해서 문제 발생···내국인과 진료비 청구방식 같아야
서울 용산구 최내과의원에서 최승준 원장(용산구의사회장)이 재택 진료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서울 용산구 최내과의원에서 최승준 원장(용산구의사회장)이 재택진료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외국인 코로나19 환자를 재택치료한 의료기관들이 과도한 행정 부담으로 진료비 청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이 때문에 의료기관들이 손실을 감수하고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현행 의료법상 반드시 대면 진료를 통해서만 작성해야 하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진단서, 의사 소견서, 병원체 검출 결과서 등의 서류까지 재택치료기관이 비대면으로 작성하게 하고 있어 수만 명의 의사가 ‘전과자’가 될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해 현행 의료법상 불법인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함에 따라 ‘재택치료’에 참여한 의료기관들은 비대면 진료를 하고 치료비는 이후 당국에 사후 청구하도록 되어 있다. 

국내 건강보험에 가입한 외국인 환자의 경우 의료기관이 재택진료를 하면서 발생한 총 진료비(요양급여비용) 중 건강보험공단 부담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하고, 환자 본인부담금은 관할 보건소에 청구해, 공단으로부터 지급받게 된다. 다만, 불가피하게 필수 비급여 진료를 했을 경우에는 비급여 진료비와 본인부담금 모두 보건소에 신청, 질병관리청에서 지급한다. 

국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외국인 무자격자를 재택치료한 경우에는 요양급여비용, 환자 본인 부담금, 필수비급여 진료에 따른 본인부담금 모두 보건소로 접수·신청해 추후 질병관리청이 지급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에 따른 의료기관들의 행정적 부담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료기관이 외국인을 재택치료한 후 요양급여비용을 사후 청구하기 위해서는 통장사본, 사업자등록증 사본, 붙임파일의 신청서, 진료비 산정내역서, 진료비 영수증 등의 각종 서류를 의료기관이 직접 수기로 작성해서 우편 발송하거나 직접 전달해야 한다.  

특히 외국인들의 서류는 질병관리청이 원본으로 제출한 것만 인정하고 있고 의료기관이 직접 환자의 주소, 국적, 생년월일, 신고일자(확진일) 등 환자 개개인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신청서류를 작성해서 각 관할 보건소로 직접 전달하거나 우편으로 발송해야 함에 따른 부담이 매우 큰 상황이다.

실제로 외국인 1명에게 전화를 통해 비대면 진료를 했을 때 건당 본인부담금은 7~8000원 정도 되는데, 의료기관들이 이를 심평원에 청구해 지급받기 위해서는 서류 준비 작업에만 약 20~30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하루에 10명의 외국인만 재택진료를 해도 서류 준비에만 무려 10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실제로 재택치료 의료기관이 직접 작성해야 하는 입원·격리(재택) 및 외래 비용 신청서 서식
실제로 재택치료 의료기관이 직접 작성해야 하는 입원·격리(재택) 및 외래 비용 신청서 서식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만큼 환자의 충분한 정보를 얻기 힘들어서 진단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의사-환자 간 비대면 진료와 이를 통한 진단과 처방은 현행 의료법상 불법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진료가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해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 것이다. 외국인의 경우 우리말로 의사소통이 더 힘들어 가뜩이나 비대면 진료를 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진료 건수가 늘어날수록 서류 준비에 따른 행정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의사소견서나 진단서, 병원체 검출 결과서의 경우 의사가 대면 진료를 하지 않고 비대면으로만 발행할 경우 현행 의료법상 불법에 해당하는데, 현재 재택 치료 의료기관이 이러한 서류들을 비대면으로 작성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의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는 무려 120만 명에 이르고, 현재 의원급 의료기관 중 절반 이상이 코로나19 재택치료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수만 명의 의사가 ‘전과자’로 전락할 우려도 제기된다.

‘동네 의원’으로 불리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원장 1인과 간호조무사 1명이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외국인 비대면 재택진료를 하면 이에 따른 서류 준비로 인한 행정적 부담이 너무나 커서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요양급여 청구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적잖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윤규 영등포구의사회장은 “다문화 가정이 많은 영등포구의 경우 다른 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국인 진료가 많아서 한 의료기관에서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1천 명 이상의 외국인의 자료를 수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사실 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한 정보는 보건당국이 다 보유하고 있을 텐데 왜 이렇게까지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영등포구의 모 내과의원 원장 A씨는 “의료기관에서 직접 수기로 작성해야 하는 서류만 외국인 환자 한 명당 최소 5장이다. 환자의 이름, 생년월일, 전화번호만 알고 있는데, 국적, 신고일자(확진일), 주소 등의 정보까지 직접 의료기관에서 작성해야 하는데 엄청난 행정적 부담일 뿐만 아니라 오로지 환자의 기억에만 의존해야 해서 부정확한 서류가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라고 말했다. A씨는 “내과계 질환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진료를 안해 본 의사는 거의 없을 텐데, 마치 외국인 진료를 했다는 이유로 내국인과 비교해 차별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뉴스1)
(사진=뉴스1)

대한내과의사회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실태를 알리고 문제점을 개선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복지부로부터는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만들었던 진료비 청구 절차를 그대로 외국인 외래환자에게 적용하면서 발생한 것”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또 “외국인 코로나19 환자 요양급여 청구 규정이 마련됐을 당시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었기 때문에 소급 적용을 통한 절차 개정도 어렵다”는 답변도 돌아왔다.

이세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애초 내·외국인 구별 없이 모든 보험 환자의 진료비 청구를 같은 방법으로 처리하게 했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현재 재택진료에 참여한 의원급 의료기관은 전체의 절반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의사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의사소견서나 진단서 등을 비대면으로 발행할 경우 수천 혹은 수만 명의 의사가 전과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시재택티료지원센터 개소식
서울시의사회가 운영 중인 서울시재택치료지원센터 개소식 모습.

현재 외국인 재택진료에 따른 행정 부담을 호소하는 일선 의료기관들의 민원이 폭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재택치료지원센터를 운영 중인 서울특별시의사회는 이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대한의사협회 보험국에 요청한 상황이다.

한편,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일선 약국들도 코로나19 재택치료에 따른 약제비 청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대한약사회에서도 지난 3월 말 중앙방역대책본부 지침관리팀에 개선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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