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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살리려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필수”
“산부인과 살리려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필수”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2.04.04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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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산부인과의사회, 춘계학술대회 간담회서 강조
“분만 인프라 붕괴···국가가 분만 책임져야”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통합, 언제든 환영·찬성”  

분만 인프라 붕괴는 물론 ‘기피과’로 전락한 산부인과를 살리기 위해선 하루 빨리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산부인과 의사들이 호소하고 나섰다. 분만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과도한 형사책임까지 지게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이유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3일 서울 홍은동 스위스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제13회 춘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넘쳐나는 소송으로 인해 산부인과 의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현재 의료계에서는 고의에 준할 정도의 의료과실 등이 아닌 한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신임 회장에 취임한 김재유 회장은 “산부인과를 지원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며 “산부인과에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은 아주 중요한 문제로, 임기 내에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다른 외과의 경우 수술의 위험성에 대해 미리 설명을 하지만, 산부인과의 경우 분만 수술의 특성상 아이가 나와 봐야 결과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수술 결과 예측이 불가능하다”며 “분만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모든 책임을 의사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저수가 문제도 중요하지만 의료 수가는 나중에라도 올릴 수 있다”며 “‘전화를 10초 늦게 받았다’는 등 비상식적인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들이 소송에 휘말리고 있는데, 당연히 잘못한 것에 대해선 배상을 하는 것이 맞지만 비정상적인 문제에 동정표를 유발하는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정부가 ‘신생아 사망률을 0%로 만들라’고 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 신생아 사망률은 0%가 될 수 없다”며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제정돼야 산부인과가 살고, 지역 거점병원의 산부인과가 없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석 전임 회장도 산부인과의 현실을 토로하며 일본과 대만처럼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김동석 전 회장은 “산부인과에서 ‘분만’은 응급상황일수도, 아닐 수도 있는 애매한 상황이 많은 만큼 신생아 사망률은 0%가 될 수 없다”며 “어떤 이유에서든 수술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의사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판사들이 의사의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일본과 대만의 경우 뇌성마비나 신생아 사망을 국가가 책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일본과 대만의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며 “그래야 산부인과 의사들이 계속 분만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5년간 분만병원을 운영하다 지난해 심리적 압박으로 분만병원을 접은 박혜성 수석부회장도 “2~3년 전부터 의료사고가 형사 처벌되고 있는데, 만약 분만하다 의료사고가 발생해 감옥에 가면 그동안 병원을 닫아야 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키울 수 없어 분만을 접게 됐다”고 말했다. 

박 수석부회장은 특히 당직 문제도 거론하며 “이제는 젊은 간호사들도 쉬운 일을 찾다보니 분만병원에서 간호인력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결국 우리나라의 필수의료체계가 붕괴되면 결국 분만의사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상윤 총무이사도 “의료분쟁조정법이 2012년에 시행됐는데, 당시 ‘(법 시행 이후) 5~10년 뒤에 분만 인프라가 붕괴되고 산부인과에서는 신규의사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었다”며 “현재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률이 떨어지고 비인기과로 전락한 것은 물론, 지원한 전공의들조차 10%는 몇 년 있다가 나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2010년 580곳이던 분만병원이 2020년에는 230곳만 남았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15~20곳씩 줄어들고 있다”며 “5~10년 후에는 분만 인프라가 붕괴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보건복지부가 공공인프라 포함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김재유 회장과 김동석 전 회장은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의 통합 여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동석 전 회장은 “산부인과 통합을 꼭 이루고 싶었지만, 지난 최대집 의협 집행부 시절에도 통합되지 않았고 학회 등의 노력에도 통합이 쉽지 않았다”며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회원들이 직선제로 회장을 투표하자는 것이 우리의 입장인데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쉽지만 의협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재유 회장도 “양측 의사회 통합은 언제든지 ‘환영’하고 ‘찬성’”이라며 “내일이라도 통합한다고 하면 회장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아울러 김동석 전 회장은 이날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지난 6년간 산부인과 의사들을 대표하고 회원이 주인인 단체를 만들었다”며 “2017년 산부인과 의사의 ‘자궁 내 사망’ 책임 인정에 반발해 궐기대회를 진행했고, 낙태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코로나 감염 산모의 분만수가 300% 인상을 이끌어 냈지만, 아직도 코로나 양성 환자들의 ‘길거리 출산’이나 ‘헬기·119 출산’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는 필수의료 인프라 붕괴가 원인으로, 필수의료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더불어 “임기 중 불가항력 분만 사고에 대한 100% 국가 책임 마련, 300병상 미만 종합병원 개설 시 ‘내외산소’ 모두 포함 등을 이루려 했지만 다 이루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며 “산부인과 의사가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신임 집행부에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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