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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울시의사회 황규석 부회장의 쉽게 쓰는 건보 이야기(2)
[칼럼] 서울시의사회 황규석 부회장의 쉽게 쓰는 건보 이야기(2)
  • 의사신문
  • 승인 2022.03.1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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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석 서울시의사회 총무·법제부회장(옴므앤팜므 성형외과의원 원장)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역사(1)

※우리나라 공보험 제도의 역사는 한 마디로 규제의 강화라는 도전과 자율성을 지키려는 의료계 응전의 역사이다

쉬운 건보 이야기의 시작 편으로 우선은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역사에 대하여 1) 1948년~1977년(건보 태동기), 2) 1977년~1999년(건보 정착기) 3) 2000년~최근(의약분업 이후)으로 3기로 나누어서 연재하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 해방 이후부터 의료보험의 태동기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사회보장 제도인 건강보험의 역사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제헌헌법 제19조에 ‘노령, 질병, 기타 근로 능력이 없는 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명문화함으로써 사회보장제도 도입의 의지를 명확히 하였고 소관 부처인 ‘사회부’ 산하에 보건국, 후생국, 노동국, 주택국, 부녀국을 설치하고 의료보장에 관심을 나타냈으나 이런 정부의 구상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사회의 혼란으로 구체화 되지 못했습니다.

(자료 : 1955년 10월 28일 경향신문에 보도된 부산 노동병원 설립 기사 원문 및 한글 내용)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공공 의료보험 사업 시작 전에 유사 의료보험 사업들이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사례가 있었는데, 그중 1955년에 부산 지역 최대의 노동조합인 부산부두 노동조합이 ‘부산노동병원’을 설립해서 의료보험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했던 것이 한국 최초의 시도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더욱이 병원 운영을 통해 취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1959년 ‘의료보장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사회보장 도입을 권고함’이라는 건의서를 작성하여 정부에 제출하는 등 정부에 의료보장제도 도입을 건의하는 정책 제안자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으며, 학계에서는 이 건의서를 의료보험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보고서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전후 복구사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1959년 10월 ‘보건사회부’ 의정국 주관으로 ‘건강보험제도 도입을 위한 연구회’가 발족되었고 1962년 3월부터는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가 설치되어 해외 각국의 사회보장 및 의료보험 연구를 통하여 의료보험제도 연구 및 의료보험제도를 법제화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였으며,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제3공화국 대통령 취임식 하루 전인 1963년 12월 16일 「의료보험법」이 적용대상과 방식에 관한 논쟁 속에서 공포됨으로써 시범사업을 전제로 하는 불완전한 형태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의료보장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법 제정 후 1년 4개월이 지난 1964년에 최초로 7개의 사업장이 연대한 공동조합인 ‘중앙의료보험조합’이 설립되었지만, 저조한 호응으로 불과 7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1968년에는 부산 지역의 23개 교회 단체의 대표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자영자 의료보험 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이 설립되었는데,  최초 723명의 회원에서 출발하여 부족한 회원 수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장기려 박사님의 개인적인 명망에 힘입어 비교적 빠른 성장을 보였습니다. 1969년 2월 1만 2,000명의 회원을 가진 ‘부산의료협동조합’과 통합하여 회원 수가 급증하였고, 1969년 7월에는 서울청십자의료협동조합이 발족 되었으며, 이후 전주, 원주, 거제도 등지로 의료보험 조합 운동이 확산되기도 했습니다. 1975년에는 청십자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자체 진료소를 개설하였고, 1979년에는 청십자의료보험조합에 회사원들이 대거 가입하여 회원 수가 2만 명이 넘었지만, 국가가 시행하는 의료보험 정책이 확산하면서 1989년 6월 30일 20만 명의 회원을 국가 의료보험에 귀속시키고 설립 21년 만에 발전적으로 해체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한편 국가적으로는 1970년 공포된 1차 개정 「의료보험법」은 가입 대상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형식적이나마 전 국민 강제가입을 원칙으로 규정했으며, 1972년 이후 정부는 ‘단계적 의료보험 실시계획’ 등 의료보험과 관련한 장기계획을 수립했습니다. 1970년대 들어 국민 소득이 증대됨에 따라 점차로 의료보험에 대한 의료계와 국민의 관심은 더욱 높아지게 되어 1976년 중반 무렵부터 의료보험법 개정작업이 본격화되었고 2차로 개정된 의료보험법에 따라 1977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된 새로운 의료보험제도는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국형 의료보험의 근간이 마련되게 되었습니다. 

의료보험의 확장에 따라서 보사부는 1976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수가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응해서 대한의학협회(의협 전신)도 자체적으로 ‘의료수가책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내부검토를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76년 말에 총 413개 항목에 걸친 의료보호수가를 먼저 결정했는데, 당시 관행수가보다 40~50% 정도 낮은 수준(일부에서는 20~30%를 주장하기도 함.)으로 책정되었다고 합니다. 너무 낮은 의료보험수가에 대해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1976년 11월 신현확 장관이 직접 대한의학협회를 방문하여 한격부 대한의학협회장 등과 간담회를 갖고 ‘진료수가 제정 조정위원회’를 공동구성하고,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의 진료수가에 관한 자료를 수집·분석하는 등 진료수가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활동을 했으며, 이를 기초로 행위별 수가제를 근간으로 하는 진료수가체계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논란 끝에 최종적으로 마련된 진료수가 기준안이 의료보험제도 시행을 목전에 둔 1977년 6월 1일 신현확 장관 주재로 열린 의료보험심의위원회에 상정되었으나, 여기서도 낮은 수가로 인해서 극심한 논란 끝에 통과가 보류되는 진통을 겪게 되었으며 신 장관은 이때까지 논의된 내용을 기초로 6월 8일 ‘진료수가기준’을 확정하여 모두 763개 항목의 의료행위를 일방적으로 고시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되돌아본 건보 태동기의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은 시작부터 의사들을 옥죄는 수많은 기준들이 마련되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수가는 의료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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