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인공신장실 '권고안' 환자안전위해 '중요'···"인력기준 및 체계적 관리 마련돼야"
인공신장실 '권고안' 환자안전위해 '중요'···"인력기준 및 체계적 관리 마련돼야"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2.03.14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신장학회 '인공신장실 관리체계 구축' 기자간담회 개최
보건복지부, 의료계 의견 수렵중···양철우 이사장 "유관기관들과 논의 해 해결해 나갈 것"

혈액투석 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구체적인 ‘인공신장실 인력 및 설치기준’ 마련에 나서자 관련 학회가 적극적인 찬성 입장을 표명했다. 혈액을 투석받는 환자의 안전 등을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한 만큼,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투석전문의’ 등 제도적인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신장학회(이사장 양철우)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인공신장실 안정성 확보와 질 관리’를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공신장실에 근무하는 의료인의 전문성에 대한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투석환자의 비율은 지난 10년간 두 배 가량 증가했다. 2019년 말 기준으로 신부전 유병 환자는 이미 10만명을 넘어섰고, 이 중 75.1%에 해당하는 8만1760명의 환자가 혈액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투석환자가 늘어나면서 혈액투석실은 물론, 혈액투석기의 수도 증가해 연간 2조원 이상의 의료비가 투석 치료에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해 12월 ‘인공신장실 인력 및 설치기준 권고안’을 마련한 뒤 의료계 단체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하지만 대한병원협회와 요양병원협회는 정부안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준’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신장내과를 세부 전공한 내과의사 수급이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 관련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권고안은 인공신장실에 ‘혈액투석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를 두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혈액 투석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 자격은 △신장학 분야에서 전문의 자격을 획득하고 △1년 이상 투석 환자에 대한 임상경험을 쌓아야 얻을 수 있게 했고, 정기적인 교육을 의무화해 전문의 자격을 유지하도록 했다.

학회는 “투석환자와 투석실에 대한 관리 체계의 중요성을 인지한 다른 선진국들은 이미 ‘신장 전문의’만 혈액투석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은 혈액투석실을 운영할 수 있는 의사 자격으로 ‘내과·소아과 전문의로서 12개월 이상 혈액투석실 임상 경험’을 요구하고 있고, 독일과 홍콩에서는 신장전문의만 투석 처방이나 혈액투석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의사협회에 등록된 신장전문의로서 1년 이상 투석실 진료 경험’이 있어야 하고, 대만과 일본도 ‘투석전문의’ 제도를 운영하면서 투석학회가 이를 주관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학회는 “국가들마다 이렇게 투석전문의 자격기준을 엄격하게 한 이유는 투석에 대한 이해는 물론, 합병증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수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며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혈액투석실의 의료진 자격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201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혈액투석 적정성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혈액투석실에서 투석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 비율은 평균 75%로 인공신장실 4곳 중 1곳에는 투석전문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병원과 요양병원의 투석전문 의료진 비율은 각각 52.3%와 39.7%로, 오히려 평균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투석실에 투석전문의가 없다면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게 학회의 입장이다. 

황원민 학회 일반이사는 “해외 각국에서는 인공신장실을 설립하기 위해 허가제나 인증제를 도입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인공실장실에 대한 규정이 없다”며 “투석환자에 대한 진료가 전문적이지 않을 경우, 결국 환자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일부 비윤리적인 의료기관에서 투석받는 환자들의 경우 적정한 진료를 받지 못하다보니 잦은 합병증 발생에 따라 대학병원에 자주 입원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전체 투석환자들의 의료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황 이사는 “외국에서 인공신장실의 의사 자격조건을 대부분 투석전문의로 제한하면서 인공신장실 관리기준을 엄격하게 한 이유는 투석에 대한 이해는 물론, 합병증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수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영기 투석이사도 “일부 투석기관들은 적절한 인력과 시설을 갖추지 못해 투석환자들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인공신장실 중 투석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단 한 명도 없는 곳도 있는 만큼, 인공신장실에 근무하는 의료인의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각 인공신장실마다 시설, 장비와 인력의 차이가 크다보니 감염에 취약한 기관들이 있다”며 “투석환자의 안전성을 위한 표준화된 인공신장실 기준과 함께 전국 투석기관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놨다. 

양철우 이사장도 “신장학회가 혈액투석환자의 안정성과 치료의 질 향상을 위해 혈액투석실 인증평가와 혈액투석실 설치 기준 도입 등 제도 개선을 위해 20년간 노력해왔지만, 아직도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복지부가 권고안을 만든 이후 학회와 병협, 요양병원협회 등에서 의견을 냈다”며 “‘대한민국 의사는 누구나 개업할 수 있는데 왜 인공신장실은 안되냐’, ‘상위법에 맞지 않다’는 원론적인 지적과 함께 ‘인력 수급에 문제가 있다’는 등의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양 이사장은 “인공신장실 설치 및 운영 세부기준 권고안을 정착시키기 위해 전국 인공신장실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인공신장실 내 집단감염 예방이나 인공신장실의 안정성 확보 등 질적인 업그레이드도 필요하다”며 “권고안에 대한 수렴 과정에서 인공신장실 운영기준이 현실과 차이가 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여러 유관 기관들과 논의해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김성남 학회 보험법제이사의 경우 “우리나라는 지방과 농어촌, 수도권의 의료 격차가 크다보니 모든 조건을 같은 수준으로 적용해 따라달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의료취약지에 대한 배려도 필요한 만큼, 의료기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권고안이 마련되기 위해선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천천히 모두가 이익이 되는 안을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