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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모건과 대한민국 의료
헨리 모건과 대한민국 의료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2.03.0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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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49)

해적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낭만과 모험을 떠올린다. 푸른 바다, 날렵한 돛단배, 치열한 칼싸움, 그리고 숨겨진 엄청난 보물까지. 하지만 그 이미지들은 모두 최근에 ‘헐리우드’가 만들어 낸 것이다. 마치 90년 전 코카콜라가 ‘세인트 니콜라스’를 ‘산타 클로스’로 재창조해 냈듯이 말이다.
  
해적 자체는 인간이 배라는 것을 타기 시작한 직후부터 전세계 어디에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헐리우드의 상상력을 빌어 받아들이고 있는 해적의 이미지는, 이른바 대항해시대에 카리브해에서 활동한 해적들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 ‘캐러비안의 해적’이다.
  
그 시대 캐러비안의 해적 중 ‘헨리 모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디서 들어본 분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말 그대로 ‘전설의 해적’이었기 때문이다.
  
헨리 모건은 1635년 영국의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20살에 카리브해로 건너갔고, 7년간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다가 27살 되던 해에 영국 육군에 입대했다. 불과 29살에 상관의 추천을 받아 영국 해군의 사략선 선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이후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 33살에는 영국령 자메이카 해군사령관에 오르게 된다. 그는 자메이카 인근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을 포섭하여 그 지도자를 임명했고, 이후 영국 해군사령관이자 ‘해적의 왕’으로서 다른 나라 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카리브해의 스페인령 대도시 포르투 벨류를 공격하여 약탈한 보물은 스페인 식민정부 보유 보물의 1/4에 이르렀다고 하며, 이를 13척의 배에 가득 싣고 귀환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스페인령 말라카이보를 공격하여 점령했고, 스페인의 대함대와 대규모 해전을 벌여 스페인 해군사령관을 전사시켰다. 그리고 그는 스페인령 대도시 파나마를 공격하여 점령했는데, 이 때 약탈한 보물을 노새 150마리에 나눠싣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파나마 공략 후 왕의 명령을 무시하고 평화협정을 어긴 죄로 체포되어 런던으로 압송되었고, 재판 끝에 사형이 선고되었다. 하지만 영국 왕도 카리브해의 거물이었던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어 집행을 미루던 중, 2년 후 영국과 스페인이 다시 전쟁에 돌입하자 엄청난 양의 보물을 속죄금으로 받고 그를 석방한다. 그의 능력이 필요했기에, 영국 왕은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고 영국령 자메이카 지사로 임명하여 카리브해의 행정업무를 총괄하도록 했다.
  
그는 카리브해로 돌아와 10년 이상 지사로 재직하다가, 52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자메이카의 포트 로얄에 묻혔다. 그의 사망 4년 후 포트 로얄에 대지진이 발생했고, 도시의 2/3가 카리브해에 가라앉으면서 그가 묻힌 공동묘지도 카리브해의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바다가 그를 부른 것일까? 이렇게 전설의 해적은 바다로 돌아갔다.
  
이렇게 헨리 모건의 생애는, 낭만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모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탁월한 능력과 불굴의 의지로 일생에 한 번 이루기 힘든 성공을 연속적으로 일궈낸 그였지만,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오락가락했던 영국 정부의 태도였다.
  
영국 정부는 카리브해의 기지를 방어할 병력이 부족하자, 해적들을 포트 로얄로 불러들여 면죄부를 주고 프랑스와 스페인 해군의 공격에 대한 방어에 활용했다. 그러다가 헨리 모건이라는 불세출의 리더가 나타나 해적들을 조직화하자 이를 활용하여 스페인에게 여러 번 치명적 손실을 주었다. 그럼에도 이후 스페인과의 평화협상이 시작되자 공격중지명령을 무시하고 파나마를 공격한 그의 행동을 범죄로 규정하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평화협정이 깨지자 영국 정부는 다시 그를 등용하여 자메이카 지사로 임명했다. 얼마 후 해적들과 사략선의 효용이 없어지자 ‘해적금지령’을 내리고 그에게 카리브해의 해적들을 소탕할 것을 지시했다. 이렇게 영국 정부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헨리 모건의 신분을 군인에서 해적으로, 애국자에서 범법자로 계속 바꾸었다. 그의 행위는 이전과 다른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최근 대법원은 요양기관이 ‘폐업’한 때에는 그 요양기관의 개설자가 ‘새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대해 업무정지처분을 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구체적 사실관계를 보면, A 원장은 B 원장과 X 의원을 공동개원하다가, 합의하여 X 의원을 폐업하고, 2개월 후 다른 지역에 단독으로 Y 의원을 개설했다. 그런데 3년 후 보건복지부는 A 원장이 새로 개설한 Y 의원에 10일 업무정지 처분을 했다. 그 이유는 A 원장과 B 원장이 공동개원했던 시기에 X 의원이 요양급여비용 260여만 원과 관련하여 국민건강보험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업무정지 처분은 요양기관에 대해 행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대표자인 의사에게 미친다는 점에서 대인적 처분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 대법원은 각각 ‘요양기관이 폐업하면 그 처분대상이 없어진 것이므로 업무정지 처분을 할 수 없다’, ‘침익적 행정행위의 근거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는데, 보건복지부와 같이 해석하면 요양기관 대표자의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된다’, ‘업무정지 처분은 의료인 개인의 자격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요양기관의 업무 자체에 대한 것으로서 대물적 처분의 성격을 갖는다’는 이유를 들어 보건복지부의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물론 ‘바지사장’을 두고 제재처분의 효력을 잠탈하는 편법을 막기 위한 정부의 고층은 이해한다. 하지만 의료기관은 식당이나 안마시술소보다 중요하고, 더구나 그처럼 손쉽게 개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보건복지부가 국민건강보험법에 ‘제재처분의 승계’ 관련 규정이 없음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A 원장의 재개설신고나 진료행위는 이전과 다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무리하게 법을 적용했고, 적법하게 재개설하여 의원을 운영하던 A 원장은 4년간이나 소송을 벌여야 했다. 모험으로 가득 찬 헨리 모건의 생애는 해적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해피 엔딩이었지만, 보건복지부의 반복되는 무리한 법적용 시도를 보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가 해피 엔딩일지 매우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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