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10:07 (월)
“의사 90% 원격의료 찬성?”···기업체 설문조사 발표에 의료계 ‘뿔났다’
“의사 90% 원격의료 찬성?”···기업체 설문조사 발표에 의료계 ‘뿔났다’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2.02.24 14: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료단체도 아닌데···자칫 의료계 대표 입장처럼 인용될 우려
조사 목적도 명확치 많아···‘원격의료 밀어붙이기’ 빌미 가능성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에서도 ‘원격의료’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의료 관련 플랫폼 업체가 ‘의사 10명 중 9명이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자 의료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의료계에서도 원격의료 도입에 대해 기존의 ‘무조건 반대’ 입장보다는 ‘조건부 찬성’ 쪽으로 돌아서고 있지만, 의료계 단체도 아닌데다 극히 적은 표본 수를 바탕으로 이뤄진 기업의 설문조사 결과가 자칫 의료계 입장을 대표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이유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공신력 있는 의료계 단체가 내부 의견을 잘 취합하고 적정한 수가 체계를 마련하는 등 향후 원격의료 도입 논의 과정에 의료계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료학술 플랫폼 업체인 ㈜키메디는 지난 22일 자사 의사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대면 진료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22%가 ‘긍정’, 69%가 ‘조건부 긍정’이라고 답했다. 긍정 답변과 조건부 긍정 답변을 합치면 응답자 10명 중 9명이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은 셈이다. ‘부정’ 답변의 응답 비율은 9%에 그쳤다.

다만 ‘조건부 긍정’이라고 답한 비율이 ‘긍정’보다 약 3배 이상 많았다는 점은 의사들이 미래 의료 산업의 발전 흐름에 따른 비대면 진료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제 도입에 따른 여러 문제점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비대면 원격 진료의 문제점’으로는 ‘무분별한 온라인 마케팅’(22%), ‘의료 수가 미반영 등의 제도 미비’(16%), ‘오진 가능성 증대’(16%) 등이 지적됐다.

◆ 표본 수 300명 불과… 의료계 대표 입장될까 ‘우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의사와 환자 간의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된 이후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자 국회는 물론 여야 대선 후보들까지 앞다퉈 ‘원격의료 제도화’ 공약을 내놓는 상황에서 이번 설문조사 결과가 마치 의료계의 입장을 대표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의료계에서도 향후 원격의료 도입 논의 과정에 의료계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이번 설문조사 결과가 의료계를 대표하는 통계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정치권 등의 ‘밀어붙이기’식 원격의료 도입 움직임에 의료계가 끌려가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의료계의 우려다.

게다가 이번 설문조사가 극히 적은 표본 수를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다. 설문조사 응답자는 키메디에 가입한 의사 회원 3만4000여명 중 1%도 되지 않는 300명에 불과했다.

의료계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키메디 측이 단순한 목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마치 의료계의 대표성을 갖춘 신빙성 있는 내용인 것처럼 자료까지 만들어 배포한 점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서울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STRG)의 김성근 회장은 “키메디에서 해당 설문조사를 한 이유 등이 나와있지 않아 그 목적성도 명확치 않다”며 “설문조사에 대한 언급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공신력 있는 의료계 단체인 서울시의사회나 대한내과의사회 등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와도 별반 다르지 않은 만큼, 별다른 의미는 부여하기 어렵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또한 그는 “응답자 69%가 ‘조건부 긍정’이라고 응답했다는데, 이는 뒤집으면 ‘조건부 부정’와 똑같은 말이어서 원격으로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으로 해석하기도 어렵다”는 설명도 내놨다.

다만 김 회장은 “의료계를 대표하는 단체도 아닐 뿐만 아니라, 조사 목적조차 뚜렷하지 않은 설문조사 결과가 의료계의 대표성을 갖는 것처럼 자료를 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격의료 제도는 그동안 의료계의 반대로 무산돼 왔지만, 코로나19 장기화 이후 비대면 진료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원격의료 플랫폼도 활성화되자 정부는 이 기세를 몰아 원격의료를 도입하려 한다”며 “의사 개개인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의료계를 대표하는 단체들의 의견을 모으고 이를 향후 논의 과정에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키메디, “이슈에 대한 의사 회원들 생각 궁금했을 뿐”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의료계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키메디 측은 ‘정부는 물론 대선 후보들까지 비대면 진료 제도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의사 전용 플랫폼 업체로서 회원들의 생각이 궁금했을 뿐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키메디 관계자는 원격의료를 제도화하려는 정부·정치권에 의료계를 대표하는 통계자료로 인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의료계에서 설문조사 결과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지만 단순히 비대면 진료에 대한 의사들의 ‘인식’을 알고 싶어 진행한 것”이라며 “의사 전용 포털사이트 업체로서 의료인들에게 도움이 되려는 의도로 시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설문조사 문항에 ‘찬성·반대’가 아닌 ‘긍정·부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라고 하면 정확히 선을 긋는 느낌이라 긍정·부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며 “기존 의료계 단체의 설문조사와 반대되는 것처럼 보여지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설문조사는 3만4000여명의 회원 중 약 1%인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고, 가정의학과, 내과, 마취과, 일반과, 피부과 등의 진료과에서 참여했다”며 “비대면 진료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사에서도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대해 기존 의료계 대표 단체들의 설문조사와 마찬가지로 ‘조건부 긍정’이라는 답이 많았고, 도입 시 우려되는 문제 또한 의료전달체계 붕괴나 오진 우려, 의료 수가 개선 등으로 나왔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비대면 진료의 문제점들이 포인트”라며 “향후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앞서 문제점들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