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연세대 정문 쪽으로 한 200미터쯤 걷다 보면 오른쪽에 신촌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도로명 주소로는 처음 지하철역부터 시작한 길이 ‘연세로’, 기차역 쪽으로 우회전하면서부터는 ‘명물길’이다. ‘명물길’은 ‘명물거리’라고 더 많이 불리는데 연세대생들조차 연세로와 이 명물거리를 헷갈려 한다. 이유인즉 연세로에 있는 버스정류장 간판에 엉뚱하게 ‘명물거리’란 이름이 붙어있어서다.
명물거리는 내가 어릴 적에 동네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자전거를 타며 놀던 곳이다. 신촌 기차역 쪽에서 내려오는 명물거리의 절반쯤에는 길 한가운데로 개천이 흘렀고 나머지 절반은 일찌감치 복개공사가 이루어져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의 범위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복개천까지였고, 개천물이 보이는 곳부터는 ‘윗동네’라 불렀다. 윗동네와 아랫동네의 경계에 있던 공터는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모여드는 시끌벅적한 곳이었다. 차력사를 앞세운 약장수들이 자주 그곳에서 쇼를 했고 이따금 불법으로 개를 잡는 아저씨들도 그곳에서 일을 저질렀다.
내가 성인이 될 즈음 우리 동네고 윗동네고 할 것 없이 아스팔트가 말끔하게 깔려서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마을의 광장이었던 길과 공터는 차가 많이 다니는 위험한 대로로 순식간에 변했다. 길 좌우로 카페와 식당, 심지어 모텔들까지 우르르 들어서자 동네 꼬마들은 다 사라졌고 주택가는 모조리 상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도로에 느닷없이 ‘명물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는 지금도 그곳이 왜 ‘명물거리’인지 이해가 안 된다. 천안의 호두과자같이 맛난 먹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강화도의 조양방직 카페처럼 특이한 명소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뭐가 명물이라는 건지 서대문구청장님이나 지역구 의원님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이름난 콘텐츠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거리 자체를 명물로 띄어보고 싶었던 거 아닌가 짐작한다. 그래서 막 벚나무도 심어보고 차 없는 거리 행사도 해보고 있는 것 같고.
우리 병원에서 멀지 않은 태릉입구역 부근에는 이른바 ‘공릉동 국수거리’가 있다. 길 입구에 우람하게 세워놓은 국수거리 간판에 그 연혁이 적혀있다. 1980년대 후반 그곳 주변에 벽돌공장이 많았는데 인부들이 싼값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근처 멸치국수 가게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후 택시 기사들에게까지 입소문이 나자 국숫집이 하나둘 늘어나 지금과 같은 거리를 이루었다는 설명이다. 2012년 노원구청은 약 1.3km에 이르는 이 골목을 ‘공릉동 국수거리’로 지정하고 매달 11일을 국수 먹는 날로 정해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공릉동 국수거리는 내가 출퇴근할 때 지나는 길이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거리풍경을 차창으로 접하게 된다. 신기한 건 명색이 국수거리지만 실제 국숫집은 눈에 많이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복덕방이나 인테리어 가게가 즐비하고 음식점으로는 중국집이나 고깃집에 족발집, 보신탕집까지 다양하기에 아무리 봐도 국숫집이 이 거리를 대표하기엔 역부족인 듯싶다. 기왕에 지정한 국수 특화거리라서 구청이 국숫집들을 통 크게 지원해주고 싶어도 다른 메뉴의 식당들이 민원을 제기해서 그리하지 못한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주차가 쉽지 않아 자주 가진 못하지만 그래도 어쩌다 용케 차를 세우고 들러보는 ‘소문난 집’ 혹은 ‘원조집’에서는 추억의 옛날 잔치국수 맛을 볼 수 있다. 세트로 함께 시켜 먹는 김밥 맛도 일품이다. 혹시 누군가 우연히 이 거리를 걷다가 오래된 국숫집을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들어가 정감 어린 냄비에 사장님이 듬뿍 담아주는 멸치국수를 맛본다면 소소한 행복감에 참으로 운수 좋은 날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입구에 장승처럼 세워놓은 거창한 국수거리 간판으로 인해 기대감을 품고 그곳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멸치국수 노포(老鋪)들이 잘 보이지도 않게 듬성듬성 있음을 알고는 일단 그 거리 전체에 실망하지 않을까 싶다.
<거리에서>라는 노래를 나는 고(故) 김광석의 곡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청년들은 성시경의 노래를 먼저 꼽는다. 비록 유행한 시대는 달라도 그 노랫말을 가만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떠나간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을, 과거에 그와 함께했던 거리 곳곳에서 느끼는 것이다. 낙엽처럼 쌓이는 짙은 어둠, 노을 너머 하나둘씩 켜지는 가로등, 막다른 길에서 기대게 되는 낯익은 벽…. 거리의 모든 것이 추억으로 가득하기에 김광석, 성시경 같은 가객(歌客)들은 그 감정을 애절한 노래로 승화시킨다. 노래에 등장하는 곳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거리일 텐데 우리의 공릉동 국수거리에서는 그런 낭만이 스며 나올 것 같지 않다. 같은 복개천 구간이란 이유로 자꾸 내 머릿속에서 국수거리와 오버랩되는 신촌의 명물거리도 마찬가지다.
공릉동 국수거리는 골목에 자연스레 생겨난 다양한 가게들을 무리하게 하나로 엮어 획일화시키려다 오히려 고유의 친근하고 서민적인 생기(生氣)마저 잃어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게 한다. 신촌의 명물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찾을 수 있는 소중한 동네 유산들이 많음에도 오직 겉 포장에만 급급하여 실체도 없고 역사성도 없는 거리명을 붙인 것 같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두 곳 모두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민감한 ‘관(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이 유감스럽다.
폴(Paul)의 어머니 이름은 매리(Mary)였다. 어머니는 폴이 열네 살 때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성인이 되어 폴은 자기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로 위기에 빠지게 된다. 힘들어하던 폴에게 어느 날 꿈속에서 어머니가 찾아와 지혜로운 조언을 한마디 건넨다. “그냥 순리대로 놓아두려무나.”
비틀즈의 명곡 <Let it be>의 탄생 스토리다. 폴은 ‘폴 매카트니’고 매리는 그의 어머니 ‘매리 패트리샤 매카트니’다. 가사에 나오는 ‘Mother Mary’를 ‘성모 마리아’로 번역하면 오역이란다. 공릉동의 국수거리는 자동으로 신촌의 명물거리로 이어지고 재미없는 이 두 거리가 떠오를 때면 영락없이 내 머릿속에서 비틀스의 노래 <Let it be>가 반복 재생된다.
공릉역 2번 출구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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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취한 견주 맹견 풀어 주민들 위협…2명 부상 - 부산일보 (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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