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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에 금지된 필러 주입해 실명···4억원 배상
미성년자에 금지된 필러 주입해 실명···4억원 배상
  • 조준경 기자
  • 승인 2022.02.17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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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기록부에 설명사항 및 서명있어도 주의의무 위반
"설명 시에도 실명 등 부작용 관련 안내는 전혀 없어"

미성년자에게 금지된 필러 물질을 사용하다 흉터, 괴사, 실명이 발생해 수억원의 손해배상을 물어주게 된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제5민사부(재판장 민성철)은 지난해 11월 “피고는 원고에 4억여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피고 B씨는 강남구 소재 성형외과의원의 운영자로 원고 A씨에 대해 코 필러 주입술 등을 한 성형외과 의사이다. A씨는 지난 2016년 1월16일 피고병원에서 쌍거풀 수술 과 코 필러 주입술을 받았고, 이후 2017년 2월17일 쌍커풀 교정수술과 코필러 추가 시술 상담을 위해 피고병원에 내원했다. 병원 의료진은 A씨의 왼쪽 눈의 선이 풀리고 우측 눈 쌍거풀 선의 대칭이 맞지 않아 이를 재조정하는 비절개 쌍거풀 재교정 수술과 코 필러 주입술을 계획했다.

B씨는 2월22일 A씨(당시 만17세)에게 수면 마취 하에 코 끝에 23G 캐뉼라(canulla)를 삽입하고 히알루론산과 완충액을 구성성분으로 하는 필러물질 0.7cc를 기존 필러가 일부 흡수돼 존재하지 아니하는 부분에 추가로 주입하는 코 필러 주입술과 비절개 쌍꺼풀 재교정 수술을 시행했다.

A씨는 2월25일 코 부분의 피부색 변화 및 염증과 우안 시력저하를 호소하면서 피고 병원에 다시 내원했다. 이에 피고 병원 의료진은 필러를 녹이기 위해 히알루로니다제(히알루론산을 가수분해하는 효소를 말한다)를 주사기로 투입하고, 혈관확장제, 항생제 및 혈전형성 억제제를 투약했다. 의료진은 2월27일 상처 재생을 위한 줄기세포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 A씨의 복부지방을 채취했다.

A씨는 2월27일 새벽에 G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G병원 의료진은 원고 A에 대한 안과 검사 결과 망막부종 및 맥락막혈관얼기의 손상, 망막혈관폐쇄 등을 확인했다. G병원 의료진은 A씨에 대해 고압산소치료, 스테로이드 집중치료 등을 시행하여 부종은 호전됐으나, 시력은 개선되지 않았다. G병원 소속 의사는 A씨에 대해 2018년 8월30일 오른쪽 눈이 망막혈관폐쇄로 인한 시신경병증으로 교정이 불가한 안전수동(눈 앞에서 손을 흔드는 경우 그 손의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는 시력 상태를 말함) 없는 상태라는 등 내용의 장애진단을 했고, 2019년 7월1일 오른쪽 눈의 시력이 광각무로 측정되며 향후 시력 호전 가능성이 없다는 내용을 포함해, 오른쪽 눈의 망막혈관폐쇄로 인한 시신경병증, 우측 감각 외사시라는 내용의 임상적 추정 진단을 했다.

A씨는 병원 측의 주의의무 위반 및 설명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 소를 제기했다. 병원이 사용한 필러 물질이 미성년자에 대한 사용이 금지돼 있는 점과 정확한 코 상태, 필러 주입술의 필요성, 수술 및 시술의 장단점, 급성 부작용 등에 대한 사항을 설명되지 않아 A씨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는 주장이다.

코 필러 주입술은 콧대를 높이거나 코 끝을 올리는 등 미용적인 목적으로 코에 필러 물질을 주입하는 성형술이다. 일반적인 코 필러 주입술 후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으로는 주로 혈관과 관련된 합 병증이 많다. 가장 심각한 합병증은 필러 물질이 동맥 내로 주입되어, 안각동맥, 비배부혈관 등을 거쳐 안혈관까지 역행하여 중심망막혈관을 막아 실명이 발생하는 경우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성형용 필러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은 성형용 필러 제품의 '사용시 주의사항'에 “혈관폐쇄(이로 인한 조직괴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혈관에의 사용을 피한다. 혈관 내에 주입된 경우 실명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피부가 얇고 혈관에 주입될 가능성이 높은 미간 등 눈 주변 사용 금지를 권장하며, 시술시 특히 주의할 것”과 “미성년자에게 사용을 금지한다”라는 문구를 필수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안전평가원의 2015년 4월 성형용 필러 안전사용을 위한 안내서에는 “임상연구시 피험자에서 제외된 임신 중이거나 모유를 수유중인 환자 및 18세 이하의 환자에 대한 안전성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라고 기재돼 있다. B씨가 사용한 필러 제품의 사용시 주의사항 부분에도 '미성년자에게 사용을 금한다'라고 기재돼 있다.

병원의 A씨에 대한 진료기록에는 이 사건 필러 주입술에 관해 설명사항과 “본인은 치료 및 수술과 관련되는 사항 및 수술 이후에 발생할 우려가 있는 후유증 및 합병증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었습니다”라고 기재된 부분에 대한 A씨의 서명이 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만 17세 미성년자인 A씨에게 사용이 금지된 필러 물질을 사용한 것 자체가 주의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수술과정에서 원고와 그 보호자의 동의를 받았다 하더라도, 미성년자에 대하여 이 사건 필러 물질 사용이 금지돼 있다는 점과 이 사건 필러 주입술로 인해 망막혈관폐쇄 등으로 인한 실명, 사시 등의 중대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설명을 아니하여 원고 A씨가 이 사건 필러 주입술을 받을 것인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한 과실이 인정된다고 봐야 한다”며 “주입술을 시행한 것 자체가 주의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 병원이 A씨에게 설명한 내용에 대해서도 “이 사건 필러물질을 미성년자에게 사용하는 것이 금기사항이라거나 또는 이로 인해 망막혈관폐쇄 및 발생할 수 있는 실명 및 사시 증상 가능성 사항은 전혀 포함돼 있지 아니하다”며 A씨가 충분한 설명을 제공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따라서 주입술을 시행한 피고는 원고에게 진료계약상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기하여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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